북한을 다룬 기록영화가 최근 국제영화제에 출품됐습니다. 러시아 감독이 1년 간 북한에서 찍은 이 영화가 공개되자 북한 당국은 물론 러시아 당국과 정치인들도 영화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처음 공개된 북한을 다룬 기록영화 ‘언더 더 선’이 북한과 러시아 당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 신문이 2일 보도했습니다.
[녹취: 영화 예고편]
러시아의 저명한 기록영화 제작자인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1시간 46분 길이로, 지난달 제 19회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나이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만스키 감독은 평양에 사는 한 소녀와 그의 가족들, 친구들을 1년 간 촬영했습니다. 이 소녀가 소년단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주요 내용입니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 당국과 이 영화를 공동제작하면서 북한 측이 대본을 자유롭게 고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영화 장면이 촬영되는 사전준비 작업까지 카메라에 담아 영화에 포함시키면서, 북한 당국이 어떻게 정보를 왜곡하고 선전활동을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줬습니다.
기록영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야 하는데, 북한 당국자들은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대사를 할지, 어떻게 앉을지, 어떻게 미소 지을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입니다.
`가디언' 신문에 따르면 북한 당국자들은 주인공이 김치의 효능을 홍보할 때 열정이 부족하다며 계속 재촬영하고, 공장 일꾼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찍는 장면에서는 일꾼들에게 더 열렬히 호응할 것을 촉구합니다.
주인공 아버지의 직업도 실제는 신문기자이지만 영화에서는 의류공장 노동자로 소개됩니다.
영화의 실체가 드러나자 영화 제작을 지원했던 러시아 당국과 정치인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미하일 슈비드코이 전 문화장관은 영화가 공개된 직후 관영잡지인 `로씨스카야 가제타'에 감독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당초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요청할 땐 이 영화가 북한과 우호적인 합작품인 것으로 꾸몄다는 것입니다.
만스키 감독은 영화 공개 이후 러시아 정부가 영화 지지를 철회했고, 러시아 정치인들은 겁을 내며 거리를 뒀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슈비드코이 전 장관은 영화 제작진이 북한에 거짓말을 한 점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제작에 관여한 북한인들은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만스키 감독은 전했습니다.
탈린 영화제 측은 북한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이 있었다고 `가디언' 신문에 밝혔습니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고, 간단한 의사결정을 할 자유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옛 소련에서도 사람들은 자유가 없었지만,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는 있었다”며 “북한에서는 그런 자유도 없다는 점이 비극이고 북한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