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현직 고위 관리들은 북한 문제를 안보 차원만이 아닌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 내제된 모순에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통일정책을 중요한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를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백악관과 국무부 등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뤘던 전현직 당국자들은 북한 문제를 핵과 미사일 위협에 국한시키는 단편적 시각을 경계했습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9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안보에 무게 중심이 쏠려 인권 문제가 뒤로 밀리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녹취: 커트 캠벨 전 차관보]
오바마 행정부 전반 4년 간 한반도 정책을 총괄했던 캠벨 전 차관보는 북한에 대한 우려는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보다 종합적 성격이라는 사실을 거듭 상기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어 화해를 논하는 시기와 장소가 따로 있을지라도 현재 북한과 그럴 상황이 아니며, 대신 인권 유린에 연루된 이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커트 캠벨 전 차관보]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 겸 일본석좌 역시 인권 유린에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북한 관리들에게) 강력한 억지력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그린 부소장]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그린 부소장은 따라서 이런 압박이 대북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특히 이런 접근법을 김정은 정권이 수 년 안에 내부 소요를 겪으며 현재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대비로 연결 지었습니다.
그린 부소장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가 널리 확산된 것을 매우 중요한 변화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백악관에 몸담고 있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이 문제에 주변국들이 매우 소극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인권 실태를 의제로 올리는 문제를 놓고 당시 한국 김대중 행정부와 격론을 벌였다며 북한의 인권 문제를 비난할 경우 전쟁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측 논리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그린 부소장]
참석자들은 북한의 인권 개선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이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압박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 특사는 인권을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휘두르는 회초리로 보는 대신 그 자체로서 추진해야 할 가치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특사]
핵과 관련한 안보 우려를 일으키는 나라들이 인권 문제 또한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 두 사안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캠벨 전 차관보는 최근 발효된 미국의 대북제재법을 전례 없이 강력한 압박으로 묘사하면서, 북한의 행동에 반대한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폭넓은 인식이 형성됐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녹취: 커트 캠벨 전 차관보]
특히 이 과정에 중국 기업들이 연루될 수 밖에 없다며, 중국의 일부 행동들이 미국의 이해와 지극히 상반된다는 신호 역시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캠벨 전 차관보는 그러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중국의 대북정책이 극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갖고 있고 그런 사실을 더 이상 숨기지도 않지만 이를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 중국이 장기적으로는 다른 사안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데 북한 문제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강화해 은밀히 북한을 압박하고 한국과의 관계 또한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린 부소장은 이에 대해 중국의 대북 전략이 바뀌진 않겠지만 한반도 정국의 변화에 따라 전술적 행동을 달리할 수 있다며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습니다.
[녹취: 마이클 그린 부소장]
그러면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비협조로 일관했던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이 높아지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린 부소장은 이처럼 한국이 중국의 협조를 직접 구하는 대신 스스로 방어 강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중국의 전술을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전현직 관리들은 수십 년간 누적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통일정책의 이점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북한 정권 교체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소개했습니다.
시드니 사일러 국가정보국 선임보좌관은 미국 정부가 핵무기와 전쟁이 없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갖춘 동시에 인권을 존중하는 한반도를 희망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신뢰할 만한 길은 이 같은 가치와 결과에 초점을 맞춰 이를 ‘출구표시’로 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북한 정권이 옳은 전략적 결정을 내려 현재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진정한 외교 관계를 형성해 다자간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일러 보좌관은 이런 비전을 추진하는 것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퍼져있는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 인권존중 등의 기준에 뒤쳐져있는 북한 주민 2천5백 만 명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시드니 사일러 보좌관]
캠벨 전 차관보의 한반도 통일 담론은 더욱 적극적입니다. 우선 안보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과거 미국 정부 내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상반된 정서가 존재했던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제 통일 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데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커트 캠벨 전 차관보]
캠벨 전 차관보는 현재 ‘하나의 한국’이라는 개념이 널리 인정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를 집중 강조하고 있다며 여기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린 부소장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과 관련해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할 버튼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역시 통일정책에 대한 적극적 지지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그린 부소장]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통일정책은 적극적인 북한 정권 교체 성격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정책 실행 비용을 높이는 전략이라는 지적입니다.
아울러 더 많은 나라들이 언급하게 된 한반도 통일에 ‘한국 주도’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