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사이드] 북한 영변 핵시설 재가동 움직임

지난 2008년 6월 냉각탑(오른쪽) 폭파를 앞두고 촬영한 북한 영변 핵 시설의 모습. (자료사진)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입니다. 최근 로이터 통신이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2008년 한때 불능화된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다시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는 걸까요?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에 자리한 영변 핵단지의 5메가와트급 원자로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핵시설입니다. 플루토늄은 고농축 우라늄과 함께 주요한 핵무기 원료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압박과 협상 속에서 영변 원자로의 봉인과 재가동을 반복해 왔습니다.

영변 5메가와트급 원자로의 존재가 처음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1985년 12월 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 회원국이었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에 가입하면서 이를 통보한 겁니다.

하지만 1993년 3 월 북한은 사찰 문제로 대립하면서 IAEA를 탈퇴합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를 놓고 협상을 시작했고 이듬해 10월 미-북 ‘제네바 합의’를 도출합니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미국은 경제지원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원자로를 폐쇄합니다.

하지만 2002년 이른바 ‘2차 핵위기’ 당시 북한은 합의를 번복하고,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 시켰습니다. 그 이듬해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마저 탈퇴하면서 한반도에 핵위기가 고조됐습니다. 이렇게 다시 불거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 회담이 가동됩니다. 2003년 8월 열린 첫 6자 회담에서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는 합의를 했습니다.

이어 2005년 9월, 6자 회담의 최대 성과물로 꼽히는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 냈습니다. 모두 6개항으로 이루어진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 핵계획 포기와 IAEA, NPT 조약 복귀를 약속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사국들은 안보 공약 및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도 열어놨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고, 북한이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6자 회담은 파행됐습니다. 급기야 2006년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바로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했습니다.

이후 6자회담이 파행과 재개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1월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양자 접촉을 갖습니다. 그 결과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조치를 담은 '2.13 합의'와 '10.3 합의'가 도출됐습니다.

북한은 이에 따라 2007년 11월 불능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미국 전문가들이 영변에 들어가 실사를 하고 불능화 조치 대상 11개를 결정했습니다. 2008년 6월 26일에는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량 등을 적시한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다음날인 27일 북한은 CNN 등 외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냉각탑 폭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냉각탑은 약 30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핵분열 때 발생하는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장치입니다. 냉각탑 폭파는 불능화 11개 조치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냉각탑 폭파는 불능화를 위한 걸음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역시 “비핵화에는 아직도 멀고 먼 길이 남아있다”면서 완전한 비핵화 이행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됐습니다.

검증 문제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를 놓고 북한과 참가국들이 갈등을 겪으면서 2008년 12월을 기해 6자회담은 다시 파행됐습니다. 2009년 4월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다음달 2차 핵실험까지 감행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에 대응해 비난 성명 등을 채택하며 제재를 가하면서 다시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재처리 재개’를 선언하고 8월말 폐연료봉 8000여개의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추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 북한은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도발 사건을 일으키는 등 적대행위를 지속했습니다. 또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핵 위기를 더 고조시켰습니다.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데 이어,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이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또, 4월 북한 원자력총국 대변인은 영변의 모든 핵 시설들과 5메가와트급 흑연 감속로를 재정비해 다시 가동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후 ‘38노스’를 비롯해 미국의 여러 민간연구소 등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해 풀루토늄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혹을 끊임 없이 제기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 미국 국가정보국 제임스 클래퍼 국장도 “북한이 2013년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한 이래 핵 농축시설을 확장하고 풀루토늄 생산 원자로 가동도 재개해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주 또는 수개월안에 플루토늄을 재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오랜기간 이를 운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로이터 통신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재개 소식을 보도한 뒤 미국 국무부는 이런 정황이 보인다는데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위성 사진이나 첩보를 통해 플루토늄과 관련한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확인 한 것인지, 또 북한이 이런 절차를 거쳐서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규모에 대해서는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실제로 원자로를 재가동했다기 보다는 핵능력이 증강됐음을 보여줌으로써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소극적인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압박의 성격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입니다.

[녹취 : 김용현 교수]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전 방위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자신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변 핵시설 재가동 문제를 이슈화 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플루토늄 생산 과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추가 핵실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8년만에 다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영변 핵시설이 또다른 핵위기로 이어질지 아니면 미-북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VOA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