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북한 5차 핵실험 발표, '핵탄두 표준화 규격화' 주목

북한은 9일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핵시험에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장비한 전략탄도로켓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 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5차 핵실험 직후 언급한 ‘핵탄두 표준화와 규격화’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핵 물질의 손실률을 낮춰 같은 양으로도 이전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안에 핵 무력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한국의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교수입니다.

[녹취: 남성욱 교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G20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됨에 따라 북한으로선 이를 무력화시킬 초강수를 둘 필요를 느꼈고, 자신들의 핵 보유국 지위 공고화를 위한 소형화, 경량화를 보여주기 위해 핵실험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G20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제재를 서두르고 있는 한-미-일 3국과 이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 중국을 향해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차원의 5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북한은 5차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의 제재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며 핵 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선언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과거 4차례 핵실험에 비해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과거보다 핵 폭발 위력이 커졌습니다. 5차 핵실험의 위력은 4차 때의 2배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5차 핵실험의 폭발력이 10kt 정도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에 거의 근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13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축하하는 평양시군민경축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핵실험의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약 3년 주기로 이뤄졌던 핵실험이 이번에 불과 8개월만에 단행된 것은 핵 물질 생산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국 정부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이번 핵실험을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 폭발 시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 직후 ‘핵탄두 폭발'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차두현 초청연구위원] “핵 폭발은 이론적으로 핵 분열이든 융합이든 폭발이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단계이고 핵탄두 폭발시험은 탄도미사일에 탑재해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핵탄두를 완성했다는 것으로 사실상 무기화할 수 있고 소형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북한이 5차 핵실험 직후 핵무기연구소 명의의 성명에서 언급한 ‘핵탄두의 표준화와 규격화’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핵 물질의 손실률을 북한이 원하는 수준까지 낮췄다는 것으로, 같은 양의 핵 물질로도 이전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석했습니다.

[녹취: 정성윤 연구위원] “핵 물질의 손실률이 높을수록 같은 폭탄을 만드는데 더 많은 핵 물질을 넣어야 합니다.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의 경우 매년 생산량이 정해져 있어 핵무기의 수량을 늘리기 위해선 손실률을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손실률을 낮췄다는 것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게 됐다는 것으로, 소형화와 경량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자 핵 물질을 적게 쓴 다양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다종화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이는 핵탄두의 제조 기술 수준을 높임으로써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 절하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정 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4차 핵실험 직후 ‘수소탄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이 수소탄 실험이 아닌 증폭핵분열탄 시험을 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상반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을 비롯한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이번 5차 핵실험을 통해 핵 미사일의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로써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박창권 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녹취: 박창권 연구위원] “핵 군축 협상은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핵무기를 감축한다기보다 ‘이만큼 핵을 갖겠으니 더 이상은 핵을 갖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핵 보유국 지위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겠다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대북 제재를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죠.”

북한은 이와 함께 이번 핵실험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현상이 없었고 주위 생태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밝힘으로써 핵실험 자체에 대한 통제능력도 갖췄음을 과시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정성윤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정성윤 연구위원] “북한이 이 같은 언급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동안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부정적 파급영향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핵실험통제 능력이 개선됐다면 향후 한국과 미국의 핵실험 화학물질 포집 결과에 대한 과학적 신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높이는 효과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을 또 다시 감행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한동안 긴장 국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한-미-일 중심의 대북 제재, 압박 강화와 북한의 추가 도발 위협이 팽팽하게 맞서는 강대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향후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의 경우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를 보완 또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에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 시 자동으로 추가적인 중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 ‘트리거(trigger)’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입니다.

[녹취: 남성욱 소장] “개별국가의 무력 수단을 사용하는 압박은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 말인 상황을 감안할 때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에서 제외됐던 부분, 즉 예외로 인정했던 민생 부문에 대해 중-러를 설득해 예외를 없애는 방식으로 제재 논의가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안보리 대북 제재에 중국이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미국 정부가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등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겠다고 압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관건은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 여부입니다.

단국대 이동민 교수는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 핵 문제를 미국과의 냉전구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이전보다 촘촘한 대북 제재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일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