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북한 해외주재원들 잇단 탈북, 배경과 파장

북한의 한 해외 공관에 인공기가 걸려있다. (자료사진)

올 들어 해외 파견 북한 인사들의 탈북이 잇따르면서 그 배경과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한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 변화와 국제사회의 제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당국에 따르면 올 한 해 한국에 입국한 해외 파견 북한 인력은 수 십 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해외에 체류하며 외부 세계를 접한 해외 주재 북한 인사들이 자유롭고 발전된 나라를 동경해 탈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교수입니다.

[녹취: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위급 외교관들의 탈북은 과거 생계형 탈북과는 다른 주로 이민형 탈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탈북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 자녀들이 평양으로 돌아갔을 때의 적응 문제 등 본인과 본인의 다음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선 평양은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이것이 망명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통일부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한국 망명 동기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태 공사를 비롯한 해외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은 북한 내 권력 교체와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입니다.

한국으로 망명한 사실이 확인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공사(오른쪽)가 지난해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이 영국 가수 에릭 클랩튼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에스코트하던 모습. 일본 TBS 방송화면 캡처.

한국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 엘리트층의 동요는 권력 교체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새로운 지도자 밑에서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할 경우 탈북을 결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기존 권력층의 실세를 숙청하는 이른바 ‘공포정치’를 통해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처형된 간부는 지난 해 말까지 130여 명으로 한국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해외 파견 북한 인사들의 탈북 요인으로 꼽힙니다. 제재 국면에서 본국으로부터 가중되는 상납 압박이 탈북의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대외보험총국 출신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김광진 박사] “농사에서 날씨가 굉장히 중요하듯 대외무역이나 외화벌이에서 대북 제재를 비롯한 대외 관계는 날씨와도 같습니다. 즉 제재 국면에서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압박이나 상납 요구, 해외에서의 어려움, 주재원들의 무리 등이 뒤따르면서 사고가 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탈북 등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죠.”

한국 정부는 태영호 공사 등 북한 고위 외교관의 망명을 비롯해 올 한 해 한국 입국 탈북자가 증가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의 효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앞으로 외교관 등 해외 주재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더욱 강화돼 이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입니다.

[녹취: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북한 당국은 전세계 공관을 통해 사상점검을 강화하고 해외에 자제들을 동반하지 못하도록 외교관들의 자제를 평양에 한 명씩 붙들어두는 이른바 볼모 시스템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중 국경지역에 대한 단속과 함께 추가 탈북을 막기 위한 내부 통제도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내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한국 민간단체 관계자입니다.

[녹취: 민간단체 관계자] “접경지역을 쉽게 넘나들던 외화벌이 일꾼이나 당 간부들에 대한 검열과 감시가 크게 강화됐다고 합니다. 전화통화나 손 전화기에 대한 검열이 크게 강화되고,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일일이 기록을 남겨야 하는 등 간부들에 대한 감독과 감시가 대폭 강화됐고 이로 인해 외화벌이 활동 역시 이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은 ‘상반기 북한정세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서 해외 식당 종업원들의 탈북 이후 당과 행정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탈북 방지 강연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내부 정보 유출자를 ‘간첩’으로 규정해 총살한다는 내용의 지시문을 일반 가정에 배포하는 등 탈북을 막기 위한 사회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체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통일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강력한 대북 제재와 공포정치 등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탈북 요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해외 파견 인사들의 경우 북한 정권과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대북 제재 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이들의 이탈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통일연구원 정성윤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정성윤 연구위원] “북한 당국에 상납금을 바쳐야 하는 북한 내 계층은 크게 외화를 벌어들이는 국영기업과 외교관, 북-중 무역을 하는 돈주 등 이 세 계층으로, 현재 제재 국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상납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향후 대북 제재가 강화될 경우 여러 요인들과 결합돼 이들 계층의 탈북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태 공사를 비롯한 해외주재 북한 인사들의 잇단 망명을 북한 체제 붕괴와 직접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고위급 엘리트가 몇 명 탈북했다고 김정은 정권이 흔들린다고 보는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에선 여전히 소규모의 조직화된 시위도 불가능할 정도로 공안기관과 같은 억압기구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 지난 1997년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지만 북한 정권은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정일-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이뤄졌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태 공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잇단 탈북에 따른 내부 동요를 차단하고 추가 탈북을 막기 위해 사이버 테러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