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한 지 지난 9일로 10년이 됐습니다. 저희 VOA는 북한의 핵실험 10년을 맞아 북한의 핵 개발 상황과 국제사회의 대응 등을 살펴 보는 다섯 차례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북한의 다섯 차례 핵실험과 그 배경을 살펴봅니다. 보도에 이연철 기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10월9일, 북한은 사상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95,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은 풀루토늄을 원료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실시됐습니다.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지진 규모는 3.9에서 4.3, 폭발력은 1945년에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의 15분의 1에 불과한 1kt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사상 첫 핵실험은 사실상 핵 장치 실험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당시는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특히, 2005년 9월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돼 문제 해결의 기대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 북한 간 입장 차이로 북 핵 협상은 교착됐습니다. 북한은 2006년 7월 5일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에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서자 북한은 첫 번째 핵실험 강행으로 맞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과 별도로 북한과의 협상도 계속해, ‘2.13 합의’와 ‘10.3합의’ 등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서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은 2008년, 북 핵 문제의 상징인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시키는 전시성 행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합의들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미-북 관계는 다시 악화됐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2009년 4월 5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공화국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주체 98년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북한은 특히 이 핵실험으로 과학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돼 핵무기의 위력이 한층 강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인공지진 규모는 4.5-4.7로 1차 때 보다 위력이 커졌고, 폭발력도 더 강력해진 3kt-4kt으로 분석됐습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뒤 북한의 핵 계획은 더 가속화됐습니다. 특히 2012년 4월 3일에는 핵 보유를 헌법 전문에 명기했습니다.
이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2년 12월12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어 두 달 만인 2013년 2월 12일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당시 한국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입니다.
[녹취: 김민석 대변인] “오늘 오전 11시 57분경에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5.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관측됐습니다”
3차 핵실험의 폭발 위력은 6kt-7kt으로 더 커졌습니다. 특히 북한은 3차 핵실험에서 이전 보다 폭발력이 크면서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해, 원료가 플루토늄이 아닌 고농축 우라늄(HEU)임을 시사했습니다.
우라늄은 플루토늄보다 파괴력이 크면서도 핵무기를 소규모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주목됐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이후 3년이 채 안 된 올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폭발 위력은 6kt 정도, 인공지진 규모는 4.8에서 5.1로 3차 때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4차 핵실험은 앞선 세 차례 핵실험과 달리 수소탄 핵실험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북한은 수소폭탄까지 보유한 핵 보유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역사에 특기할 수소탄 시험이 가장 완벽하게 성공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 보유국 전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었으며…….”
수소폭탄은 수소의 원자핵이 융합해 헬륨의 원자핵을 만들 때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으로 원자폭탄의 수 백 배 위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수소탄 가능성을 일축했고, 한국 당국도 수소폭탄 재료인 삼중수소를 소량 이용한 증폭핵분열탄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도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VOA'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견해를 보였습니다.
[녹취: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북한이 수소폭탄으로 가는 중간단계인 증폭 핵분열탄 실험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강력한 대북 압박에 나섰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이 잇따라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9월 9일 기습적으로 5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 핵무기연구소 과학자, 기술자들은 북부핵시험장에서 새로 연구 제작한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하였다”
5차 핵실험은 지금까지 북한이 감행한 핵실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위력은 4차 때의 2배인 10kt으로 추정됐습니다.
북한은 또,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실험의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약 3년 주기로 이뤄졌던 핵실험이 이번에 불과 8개월만에 단행된 것은 핵 물질 생산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한 지 10년 만에 폭발 위력을 10배나 끌어올리는 등 핵 능력 고도화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은 5차 핵실험에 앞서 노동미사일과 무수단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등을 잇달아 시험발사 하는 등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운반체 기술의 성능 개선과 다양화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북한 핵실험 10년 기획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두 번째 순서로 북한 핵무기 보유와 기술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