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잇단 고강도 대북 발언 의미와 배경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지난 1일 계룡대에서 열린 제 68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하는 대북정책을 본격화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북한의 정권교체까지 상정한 대북 압박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돌아선 것은 올해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박근혜 한국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지난 2월 16일 국회 연설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를 목표로 사실상 대북·외교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겁니다.

여기에는 북한의 핵 실전배치가 임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이를 막지 못하면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반영됐다는 게 한국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7차 당 대회에서 경제-핵 병진 노선을 항구적 전략 노선으로 천명하며 향후 핵 보유국으로서 협상에 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이는 한국의 비핵화 원칙에 어긋나는 겁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고강도의 압박 정책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북한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비핵화 협상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박근혜 한국 대통령의 고강도 대북 압박 기조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다 구체화됐습니다.

북한 주민을 향해서는 포용 메시지를,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북한 당국과 주민의 분리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겁니다.

특히 올해 광복절에는 과거 경축사 때마다 등장하던 이산가족 상봉 제의와 같은 구체적인 대북 제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사실상 폐기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은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대화와 협력’의 병행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 무력 고도화를 위한 전략적 도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현 정부 임기 내에 의미 있는 당국 간 대화나 협력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사실상 북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서강대학교 정영철 교수입니다.

[녹취: 정영철 교수] “현재 한국 정부는 소위 북한의 도발을 명분으로 북한 체제를 궁극적으로 붕괴시킬 것까지 상정하는 대북 제재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북한의 지도층과 주민들을 분리해 북한 내부의 균열을 확대시키는 발언이 계속해서 나올 가능성이 높고 향후 현 정부의 정책 전환이 없다고 한다면 이 같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을 향해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직접 밝힌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합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북한 정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자 민생을 외면한 채 핵 개발에만 집착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고강도 압박의 일환이라는 분석입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책임연구원입니다.

[녹취: 장용석 책임연구원] “국가의 핵심 구성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 가운데 핵심 요소인 국민을 한국으로 오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은 북한이라는 주권국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나아가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잇단 ‘북한 정권 붕괴’ 발언의 배경으로는 ‘공포정치’로 인한 내부 동요와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를 비롯한 북한 엘리트 계층의 이탈과 탈북자 증가, 대북 제재에 따른 북한의 고립 심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올 한 해 한국 입국 탈북자 수는 김정은 집권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올 들어 지난 달 말까지 입국한 탈북자는 1천 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증가했습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생계형 탈북이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하는 엘리트층의 탈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태영호 공사 등 북한 고위 외교관의 망명을 비롯해 올 한 해 한국 입국 탈북자가 증가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의 효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압박을 통한 북한의 정권교체만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한국 내에서 가시화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청와대는 그러나 북한의 정권교체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려는 한국과 이에 맞서는 북한의 ‘강 대 강’ 대결 구도가 지속되면서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입니다.

[녹취: 진희관 교수] “과거 남북은 비공식 접촉을 통해 위기를 조절해왔는데 지금은 공식, 비공식 채널이 전무한 상태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한국은 대북 압박을 지속하는 상황이어서 남북 간에 약간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큰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위기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남북관계가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만으로 비핵화를 비롯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정치,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입니다.

[녹취: 장용석 책임연구원] “북한의 WMD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하고 촘촘한 제재도 필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북한과의 교류 협력이나 접촉을 통해 북한 내부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재만으로는 북한 내부를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깨닫고 북한을 포괄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 변동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강구했으면 합니다.”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북한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에 바탕을 둔 압박과 제재 위주의 대북정책만을 고수하는 것은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