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자동차 회사가 탈북민의 자립을 위한 지 원사업을 펼치고 있는데요, 이 사업을 통해 첫 탈북민 사장이 탄생했습니다. 한반도 통일과 북한, 탈북민들과 관련한 한국 내 움직임을 살펴보는 ‘헬로 서울’,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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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현장음]
서울 문래동에 작은 일본식 라멘집이 생겼습니다. 점심시간을 넘겼지만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데요, 직원이 적다 보니 젊은 사장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녹취: 현장음]
이 라멘집의 사장은 11년 전 북한에서 한국으로 온 이성진 씨. 이성진 사장은 북한에 있을 때 굶주림으로 어린 여동생을 잃은 후, 제사상에나마 동생을 위한 맛있는 음식을 올려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와서 꾸준히 요리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다가 얼마 전에는 한 자동차 회사의 지원으로 이렇게 어엿한 가게의 사장이 됐는데요, 이성진 사장입니다.
[녹취: 이성진, 탈북민] “저희 ‘이야기를 담은 라멘’은 탈북민들이 자립을 할 수 있게끔 하는 프로젝트예요. 그 중에서 총 100개의 매장을 내겠다, 백 사장을 만들겠다,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제가 이번에 1호로, 매장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특별히 요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은, 제가 7살 때 북한에서 동생을 잃었어요, 북한에서. 동생이 죽었는데, 그 동생은 저 때문에 같이 굶주리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과수원에 갔거든요. 그 과수원에서 배가 언 것을 먹고 그날 저녁에 동생이 죽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참 슬펐던 게, 동생이 죽어서 다음날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이라는 게, ‘상돌’이라 그래 갖고, 묘비에 보면 앞에 상 같은 게 있잖아요. 거기에 올라가 있는 게 옥수수 하나만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이 좋아하는 게, 물고기도 많고, 고기도 있는데, 반찬도 많은데. ‘왜 저거만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저 때문에 죽었으니까, 나중에 동생한테 밥 한 번 해 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요리에 대한 생각은 났어요, 조금씩. 북한은 요리사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 와서, 자기가 하는 것만큼 얻을 수 있으니까, 선택의 폭이 넓잖아요, 상당히. 그래서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 때부터 요리를 하게 됐어요.”
개업한 지 이제 2주가 됐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려면 요리 뿐아니라 고객 응대와 매장 관리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녹취: 이성진, 탈북민] “요리는 쉬웠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사장이라는 게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다 알아야 하잖아요. 전체적인 것을 다 봐야 되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교육 때도 많은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교육은 교육이고, 나와서 해 보면, 실제로 부딪히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다를 수 가 있잖아요. 얼마 전에도 손님 한 분이 계산하시면서, 뭔가 사투리가 공격적이어서, 물이 먹고 싶어도 시키지를 못하겠다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 저희가 북한에서 와서 말은 그렇게 세지만, 마인드는 그게 아니다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이런데, 일하는 직원들은 교육을 다시 시켰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고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잘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다시 오시는 거예요, 다행히도. 저희가 서비스업이잖아요. 주변에서 이래요. ‘탈북자들한테는 창업을 시켜줘서는 안돼.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도 창업을 해서 망하는데, 그들이 할 수 있을까?’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더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북한 사람이라고 안 되는 게 어디 있고,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이성진 사장과 직원 한 명, 아르바이트생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는데요, 함께 일하는 직원인 김명준 씨 역시 탈북민입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함께 일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요,
[녹취: 김명준, 탈북민] “같은 동네에 이사를 왔어요, 이 친구가. 그 때 만나서 친해지게 되고, 제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16살 때 시작했어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일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전단지가. 그 때 돈 버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후에 했던 게,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성인돼서. 이 친구랑, 용돈 없으면 서로 챙겨주는 그런 사이로 지냈었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고민을 좀 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쉽지 않은 길을 같이 가자고 하는데,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는 결혼도 했는데. 처음에 가 개업을 하고 나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가 다리가 아파요. 어렸을 때 북한에서 의료 사고를 당해서, 소아마비거든요. 여기 와서 장애 판정도 받고, 신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그만 하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심각하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러면 해 보자, 그러고 나서 우리가 수익이 나면, 지역 사회봉사 활동을 같이 하기로 했어요. 그런 것들이 목표가 생기고 나니까, 일하는 게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이제 개업한 지 2주 된 식당이지만, 맛으로, 분위기로, 벌써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이성진 사장은 가게를 잘 꾸려나가면서 찾아준 손님들과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꿈이 있는데요, 일본음식을 판매하는 가게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손님들에게 북한의 음식도 조금씩 소개하고 싶습니다.
[녹취: 이성진, 탈북민] “사회복지센터 가서,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분들 계시면, 저희가 일요일마다 쉬거든요. 그래서 토요일까지 장사를 하고, 일요일에 점심을 같이 한 번 제공을 해 보자고 같이 얘기를 나눴거든요. 어제도 같이 회의한 게. 그 돈을 어떻게 하느냐, 여기 가게 돈이 아니라 월급에서 한 달에 10만원씩 모으기로 했어요, 둘이서. 그러면 3월달로 저희가 계획을 하고 있거든요. 3월에, 봄에 하려고요. 그러면 그 때 되면 한 6~70만원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소를 여기서 해서, 식사를 한 번씩 제공해주고, 하면서 사람들이 왔을 때, ‘탈북자들도 이렇게 생각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도 보면, 주변에 친구들도 마음상한 친구들이 되게 많은데, 탈북자라고 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솔직히 얘기하면, 그런데 그런 것을 깨고 싶은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녹취: 현장음]
서울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