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미-북 고위급 접촉 사례

  • 최원기

지난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왼쪽)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왼쪽)과 만났다. 김일성 주석은 그 후 불과 몇 주 후에 사망했다.

매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주목됩니다. 미국과 북한은 과거 핵 문제나 미국인 억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을 때 고위급 접촉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 적이 있는데요, 지난 25년 간 미-북 간 어떤 고위급 접촉이 있었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과 북한 간 최초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진 것은 1994년 6월입니다. 당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를 탈퇴하고 영변의 핵 연료봉을 무단 교체하자 미국은 핵 시설에 대한 폭격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제재는 곧 ‘선전포고’라며 위협하면서 한반도에 위기가 격화됐습니다. 당시 한국 방송 내용입니다.

[녹취: 1994년 한국 방송 뉴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군사전문가들은 이 악몽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판문점을 거쳐 6월 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녹취: 카터 ] "I personally believe the crisis is over..."

카터 전 대통령은 평양에서의 회견을 통해 김일성 주석과 핵 시설 동결과 핵 사찰 재개,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미-북 고위급 회담 재개 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 주석도 자신이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제재를 풀고 핵 위기를 해결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 전 밝힌 내용입니다.

[녹취: 김일성] "카터더러 제재하려면 제재하라고 했어. 이태(이제)까지 우린 제재 받고 살았지 안 받고 산 적 없어. 제재 받고도 이만큼 사는데 제재하려면 똑똑히 하라우. 우리가 못 살게 뭐이가, 그랬더니 제재를 취소하겠다고 그래. 내가 취소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우리가 못 사는가 보라. 우린 더 잘 산다고 했지.”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은 한반도 핵 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그 해 8월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재개한 데 이어 10월 21일 스위스에서 미-북 제네바기본합의가 체결되면서 1차 북 핵 위기는 해소됐습니다.
2000년 10월에는 북한의 조명록 인민군 차수가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당시 조명록은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서 공식적으로 6.25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조-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습니다. 조명록은 6.25 전쟁 이후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였습니다.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열흘 뒤인 2000년 10월23일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차례 만나 미-북 정상회담 문제와 함께 핵과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했었습니다.

평양을 방문한 최초의 미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습니다. 워싱턴에 돌아온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대화 상대이며, 실용주의적이고 상당한 유머 감각이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평양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 미-북 정상회담을 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던 클린턴 대통령은 결국 12월21일 “평양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추진되던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9년 뒤인 2009년 8월, 클린턴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합니다. 당시 북한에는 유나 리와 로라 링 등 미국 기자 2명이 억류돼 있었는데,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겁니다.

방북을 마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북 양국이 이제부터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클린턴]”I wanna believe our two countries ability to decide…”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평양 당국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백악관으로부터 엄격한 지침을 받고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지 않아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또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7년에는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의 핵 신고를 위해 6월과 12월 북한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뒤로도 미국과 북한 간에는 인질 석방을 위해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2010년 8월에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 석방을 위해 카터 전대통령이 또다시 방북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난 뒤 곰즈 씨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2010년 11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에디 전 씨가 북한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전 씨는 이듬해 5월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평양을 방문해 유감 표시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석방됐습니다. 비록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미 정부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북한인권특사의 첫 방북이었습니다.

2014년 11월에는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와 매트 토드 밀러 씨 석방을 위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년만에 석방된 케네스 배 씨는 미국과 북한 정부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녹취: 케네스 배]”I just wanna thank you all for supporting me…”

클래퍼 국장은 당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내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북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북 핵 문제에 돌파구를 열고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