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어제(20일) 스웨덴과의 경기를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에 남을 한 페이지를 장식한 단일팀의 구성부터 마무리까지 서울에서 김현진 특파원이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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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 머리 감독이 이끈 남북 단일팀이 27일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조별리그 3경기와 순위결정전 2경기 등 모두 5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남북이 하나 돼 투혼을 발휘한 모습에 한국민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남북 단일팀이 결정된 것은 지난달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와 남북 대표단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일 만에 한국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하며 총 35명으로 올림픽 사상 첫 남북단일팀이 구성됐습니다.
올림픽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팀이 결성됐다는 소식에 한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녹취: 조남양 씨, 73세] “젊은 선수들이 피땀 흘려 몇 년 동안 고생했는데,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인권 유린이죠.”
[녹취: 서울 시민] “같이 하면 좋죠. 이게 어차피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같이 하는 게 중요하죠.”
새라 머리 감독을 비롯해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올림픽이 임박한 상황에서 단일팀이 결정돼 충격적이란 반응이었습니다.
[녹취: 새라 머리 감독] “The whole situation is out of our control, so we’re trying to get best out of it….”
머리 감독은 하지만 지난 4일 스웨덴과의 평가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단일팀이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팀 주장인 박종아 선수도 북한 선수들과 언어 차이 등 어려움이 있지만 노력해서 잘 극복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녹취: 박종아 선수] “아무래도 저희랑 한 번도 맞춰보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운동 중에 저희도 모르게 나오는 얘기들을 북한 선수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북한 선수들이 하는 얘기를 저희가 알아듣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시간 많이 걸리고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남북 단일팀은 손발을 맞춘 지 불과 16일 만에 올림픽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경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조별 리그 첫 두 경기에서 스위스와 스웨덴에 모두 0대 8로 패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력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14일 일본팀과의 예선에서 사상 첫 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랜디 희수 그리핀 선수가 이날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조별리그 3차전에서 일본에 0-2로 끌려가던 2피리어드 9분 31초에 만회 골을 터트린 겁니다.
경기장은 북한 응원단을 포함해 관중들의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단일팀도 일본전에서 올림픽 첫 골이 터지자 남북 선수 가릴 것 없이 부둥켜안았습니다.
관중들도 단일팀을 격려하며 선전을 기대했습니다.
[녹취: 박윤웅, 17살] “최선을 다한 것 같아 후회가 없는 것 같아요.”
[녹취: 김소희, 25살] “졌지만 우리나라와 남북한 하나가 된 모습이 인상 깊었고 앞으로 화이팅 했으면 좋겠어요.”
남북 단일팀은 이어 18일 스위스를 상대로 열린 순위결정전에서 0대 2로 패했습니다. 앞서 조별예선에서 스위스에 0대 8로 대패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좋은 기량을 선보인 겁니다.
이어 20일 스웨덴을 상대로 한 7~8위 순위결정전에서 단일팀은 2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한수진 선수가 0-1로 뒤진 1피리어드 6분 21초에 동점 골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스웨덴에 1대6으로 패했습니다.
단일팀은 이로써 5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2득점에 28실점으로 득실차는 -26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올림픽 출전을 고려하면 선전이었습니다. 일본은 1998년 나가도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는데 결과는 5전 전패에 2득점, 45실점이었습니다.
북한에서 12살 때부터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다가 1997년 탈북해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황보영 고양시 슬레지하키팀 감독은 21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단일팀이 올림픽에서 예상 외로 매우 선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황보영 고양시 슬레지하키팀 감독] “경기는 전체적으로 잘한 것 같아요. 애초 생각했던 것 보다. 처음 올림픽 열린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모든 게임에 두 자릿 수 차이가 날 것 같았는데요, 전패는 했지만 생각보다 잘했던 것 같아요. 특히 스위스전에 0대2 는 잘한 것 같아요.”
특히 경기에 참가했던 북한 선수들이 남한 선수 못지않게 큰 활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황보영 고양시 슬레지하키팀 감독] “아시다시피 뛰는 사람만 뛰었잖아요. 나머지 선수들은 아예 얼음판에 들어오지도 못했잖아요. 그래도 그 3명은 새라 감독이 봤을 때 최고로 좋은 선수를 썼으니까 한국 선수보다 나은 선수도 있었고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뛴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 경기에는 북한 선수 정수현과 려송희, 김은향, 황충금 선수 등이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새라 머리 감독도 짧은 기간에 남북 선수들이 하나가 돼 좋은 호흡을 맞췄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들과 함께 한 과정은 무척 즐거웠다”며 “앞으로도 북한 선수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친선 교류전에 관해 논의 중이며, 계속해서 끈을 유지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선수들도 올림픽 경기를 통해 정도 쌓이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며 좋았다는 반응입니다.
스웨덴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한수진 선수는 “북측 선수들이 대회 끝나고 돌아가면 많이 생각나고 아쉬울 것 같다”며 “초반에는 서로 서먹서먹했고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 북측 선수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재미있게 훈련을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1991년 탁구와 축구 남북 단일팀에 이어 올림픽 사상 첫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킨 여자아이스하키는 이번 올림픽에서 역사에 남을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단일팀은 27일 간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오는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해산합니다.
VOA 뉴스 김현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