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20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를 대표하는 40개 인권단체들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27일 열릴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해 달라는 요구를 담았습니다. 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 사안에 너무 관심이 적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40개 인권단체들은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남북정상회담뿐 아니라 앞으로 북한과 진행하는 모든 회담에 북한인권 문제가 반드시 의제로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북한 사안이 의제에 포함되도록 북한 정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브래드 아담스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지부장은 서한에서 “남북한 대화의 재개를 환영하지만 이 대화가 북한 내 열악한 인권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져야만 북한 주민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공동서한에 서명한 단체들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20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들을 대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담스 지부장은 “유엔안보리도 인식했듯이 북한인권 침해와 국제 평화 및 안보에 대한 위협은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한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유엔의 인권 개선 권고 사안을 시급히 이행하고 남북인권대화 추진, 정보교환 등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에 협력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또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남북 민간인 접촉도 늘릴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아담스 지부장은 이어 최근 북한이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위협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북한의 엄포와 인권침해 위협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내 인권단체들도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너무 관심이 적다며 우려를 나타냈었습니다.
[녹취: 시위 소리]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인권 문제를 관철하라 관철하라 해결하라~”
한국 내 30여 개 인권단체는 지난달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진 시위에서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정작 북한 인권에는 너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27일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반드시 제기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녹취: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 “진정한 우리 한반도의 한민족이 자유와 평등과 질서 있는 사회에서 사람다운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인권 문제가 반드시 제기돼야 합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이 명시한 북한인권재단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출범조차 못 하고 있고 외교부의 북한인권대사는 계속 공석입니다. 재정 지원이 끊긴 일부 대북 인권단체들은 활동을 중단했고 북한인권시민연합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인권단체들은 미 정부와 외국인들의 지원 없이는 활동이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휴먼 라이츠 워치도 올해 국제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이 지난 2016년 북한인권법 채택해 북한 인권 단체들을 지원하는 재단 설립을 요구했지만, 아직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상황의 열악함을 인정하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도 찬성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개선 의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와 협력을 하겠다는 입장은 확고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북 대화에 인권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녹취: 강경화 장관] “(북한 인권 문제를) 남북대화에 포함시킨다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정부 차원에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VOA’에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체제 안전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인권 문제 제기는 북한 정권의 체제에 위협을 가하고 관계 개선에도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청와대 관리들은 북한 인권 사안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나 비난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에 있는 과거 학생 운동권 출신 관리들이 탈북민 등 인권 문제 제기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일부 동료들이 과거 의원 시절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발해 항의서한을 서울의 미 대사관에 전달한 사례를 지적합니다.
당시 서한을 보면 “(북한인권법 제정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항의서한에 서명했던 우원식 의원은 현재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됐고 임종석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습니다.
또 현 정부에 진출한 민간 참여연대 출신 관리들은 과거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 운동에 우려를 나타내며 유엔 인권기구에 반대 의견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습니다.
지난 2005년에 집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우려를 나타냈던 임종석 의원과 당시 북한인권법을 첫 발의했던 김문수 의원의 토론회 대화를 보면 북한 인권에 관한 한국 내 진보와 보수의 분명한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녹취: 임종석 당시 의원] “(인권 문제 제기보다는) 시장을 통해서 변해가도록. 그들 스스로 체제 안전 또는 국가적 안전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시장의 힘을 빌려서 개혁해 나가도록 와주는 것이 우리로서는 가장 안정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김문수 의원] “먹을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해서 총살하거나 수용소에 가두는 이런 체제가 시장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시장이란 것은 상당한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근본적 자유도 없고 그 체제 유지를 위해 자유를 (주민들에게) 줬을 때는 그 체제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사실 개혁을 못 하고 있습니다.”
당시 집권당의 일부 의원들은 국정 감사 때 북한인권법이 “탈북자의 급속한 증가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며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의 하위의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그 해 가을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때 기권해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자문을 하는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북한 인권 관련 사안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탠튼 변호사] “I have concerned. I have sort of wait..”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차석대사가 침묵하고 있는 배경,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한국에 망명한 전 중국의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진상규명을 한다며 신상 압박을 하는 것 등 우려스러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를 과거처럼 뒤로 밀어 놓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럽고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It is a tremendous disappointment and very short sighted”
코헨 전 부차관보는 한국이 북한 주민의 민생을 지원하고 북한 정권은 자국민을 위해 써야 할 국가예산을 핵·미사일에 허비하는 행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핵 문제와 관계 개선, 인권 문제를 동등하게 다룰 수 있도록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정부 안에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앞서 ‘VOA’에 북한 인권 개선이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고 정부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지원 움직임은 없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입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 인권 사안을 포함할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인권 문제 제기를 내정 간섭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정상회담은 정상 간 신뢰 구축과 비핵화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