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북한 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 시간입니다. 사진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30대 미국인 여성이 이색적인 방법으로 이산가족 사진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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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의 하얀 벽을 연상케 하는 흰색 칠을 한 트럭. 이 트럭의 좌우 측면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들이 커다랗게 실려 있습니다.
길을 가다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얼굴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을 일생 동안 품고 살았던 한인 이산가족입니다.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는 10명의 이산가족 얼굴 사진과 각 인물의 짧은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아래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고 고유번호를 입력하면 사진의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녹취: 김순자] “우리 아버지는 폭격에 돌아가셨어. 우리는 여기서 잘 살고 있지만.. 지금도 이야기 들어보면 솔 껍질도 못 먹고 지낸다고 하는데.. 너무 가고 싶어 너무. 통일이 돼서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가고 싶어.”
목소리의 주인공인 78세 김순자 할머니는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었고, 고모와 조부모를 북에 남기고 어머니와 형제자매와 함께 피난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산소와 고향이 너무 너무 가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쟁통에 곧 돌아오마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이별이 이리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잠시 헤어졌던 형제와 자매. 어떤 이들은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로 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로라 엘리자베스 폴 작가의 사진전 ‘오랜 이별’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가족과 헤어진 후 홀로 백발 노인이 되어버린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폴 작가는 만나본 이산가족 모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는데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사진작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한국인 어머니를 둔 폴 작가는 자신의 큰 삼촌이 생전에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묻고 살았던 큰 삼촌이 계기가 돼 사진 전시 인터뷰을 시작했고, 삼촌을 첫 대상자로 삼았는데 인터뷰를 마친고 7개월 후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큰 삼촌의 죽음을 말하는 폴 작가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습니다.
[녹취: 로라 폴] ”He died when he was 90 and he never knew what happened to his younger sister or to his parents and he was the oldest son..”
큰 삼촌이 90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큰 아들이었던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폴 작가는 큰 삼촌이 2000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매번 했었지만 한번도 상봉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자신의 큰 삼촌이 오랜 이별 끝에 가족의 소식도 모른 채 죽었던 것처럼 지금도 이산가족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이것은 그들의 역사를 잃어가고 있는 의미라고 강조했습니다.
10명 가운데 최고령자인 94세 강능환 할아버지는 2014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당시 북한에 사는 아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강 할아버지의 사연에 대해 폴 작가는 이런 설명을 붙였습니다.
[녹취: 로라 폴] “He didn’t know he had a son so when he left the north he came south like work and it was just going to be for short..”
강 할아버지는 남한에 넘어올 당시 아내가 임신한 걸 몰랐기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아들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강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 당시 느낌으로 아들임을 알았다며,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조장금 할머니는 82세로 2015년 10월 이산가족 상봉에 선정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적혔습니다.
폴 작가는 인터뷰 대상자로 만났던 30여명의 이산가족들 중 조 할머니에 대해 “이 사진을 찍기 몇 시간 전에 2015년 10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선정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고 소개했습니다. 로라 폴 작가는 조 할머니를 만났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녹취: 로라 폴] “we showed up and it just happened to ne the day that it was announced who was going to the union….”
사진촬영을 약속한 당일 할머니 댁을 찾았는데 할머니가 자신이 상봉자 명단에 없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고,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로라 씨는 당시 조 할머니와 택시를 타고 적십자 본부로 달려갔던 일을 떠올리며, 상봉 신청자 10만명 이상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가족을 만나본 사람, 상봉자 명단에서 제외된 아픔이 있는 이산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얼굴을 기억조차 못하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미 동부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82세 데이비드 박 할아버지는 `VOA'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며, 이런 비극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박] “사진도 없고 하니까 어머니 동생 얼굴을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안되요. 비극이죠..”
본명이 박정도인 이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의 생사에 대해 한번도 들을 적이 없다며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고 동생은 이름만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으로서 상봉에 희망을 걸어본 적이 없다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박] 평생 통일이 되길 희망하고 고향에 가볼 생각을 갖고 .. 그런데, 어머님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니까, 어머니 묘도 찾을 수 없을지 몰라요. 어머님이 목사의 딸이었기 때문에 생애가 순탄하지 못했을 거예요. 비참하게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이 되요.. 그 생각을 하면 내가 불효자다.. (흐느낌) 철들어 어머니를 봉양하고 그래야 되는데.. 불효자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로라 엘리자베스 폴 작가는 이 전시를 위해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쳤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30여명의 이산가족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전시를 위해 트럭 전시차량을 제작한 폴 작가는 ‘오랜 이별’이라는 제목을 단 전시차량으로 어디든 달려갑니다.
장소가 어디든 가는 곳 마다 한국전쟁이 빚은 이산가족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끌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폴 작가는 8월 15일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앞둔 시점인 만큼 향후 전시 기간과 장소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미 동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워싱턴DC, 뉴저지, 매사츄세츠 주 8개 도시에서 9일 간 진행했던 1차 전시를 시작으로 서부까지 염두하고 있습니다.
트럭 제작에서부터 진행까지 사비로 충당하는 만큼 미국 전역으로 전시를 확대할 지원이 필요한데요, 미 주류사회는 물론 한인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