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군 전쟁포로,실종자 가족연합회장] “북한, 미군유해 뒤섞어 신원 확인 어려워…미군 법인류학자 방북”

한국전쟁 공습 임무 중 실종된 아버지의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지난 2016년 평양을 찾은 '전미 전쟁포로,실종자 가족연합'의 리처드 다운스 회장이 아버지의 공군기가 추락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지역에 도착한 후 강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리처드 다운스 회장.

북한이 미군 유해를 파냈다가 다시 묻으면서 여러 사람의 뼈가 뒤섞여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미 전쟁포로,실종자 가족연합의 리처드 다운스 회장이 밝혔습니다. 다운스 회장은 22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송환 과정 중에도 유해가 섞일 가능성이 있어 미군 소속 법인류학자가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거 미국 정부가 유해 송환을 인도적 제스처로 인정해 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해 송환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운스 회장을 이조은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실종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다운스 회장) 공군이었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예비군으로 복무하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해 가족을 꾸리셨고, 대학도 졸업하셨죠. 그리고 처음 얻은 직장에 출근한 첫 날, 어머니로부터 군대에 소집됐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전에 나가셨습니다. 1951년 봄이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1952년 1월 13일, 공습 임무 중 공군기 추락으로 실종되셨습니다. 저는 세 살배기였습니다.

기자) 북한이 미-북 회담에서 미군 유해 송환을 약속했는데요.

다운스 회장) 6.25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가운데 약 5300명의 유해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북한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농업,산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찾아낸 유해는 약 200구 정도로 추산됩니다. 북한에는 미군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군인들의 유해들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유해들을 지난 23년 동안 모아왔습니다. 북한은 2007년 북한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미군 유해가 담긴 6개의 상자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7구의 미군 유해로 판명되긴 했지만요.

지난 1951년 리처드 다운스 회장의 아버지가 해외로 나가기 직전 캘리포니아에서 찍은 사진. 사진제공=리처드 다운스 회장.

기자) 2016년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해 북한에 방문하셨는데요.

다운스 회장) 그렇습니다. 리처드 전 주지시가 이끄는 ‘리처드슨 센터 포 인게이지먼트’ 측과 함께 평양에 갔습니다. 정부와는 무관한 민간 성격의 방북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만났는데요, 유해 송환을 요청하니 그러겠다고 하면서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하더군요. 백악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유해 송환이 북한의 인도적 제스처임을 인정해주는 식의 노트를 받아온다면 유해를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런 노트를 써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북한이 핵 관련 이견을 조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유해 송환 문제를 정치화 하는 이상 미국은 북한의 이런 요구에 반응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매우 실망스러웠죠.

기자) 북한은 유해 송환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까?

다운스 회장) 그렇습니다. 정확히 몇 구일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유해 송환이 인도적 제스처임을 인정하는 식의 노트를 보내야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거절한 것이고요. 북한이 요구한 것은 이런 노트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기자) 유해 문제와 관련해 추가 방북 계획이 있으십니까?

다운스 회장) 그러고 싶지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2016년 방북도 리처든스 센터의 협상을 통해 성사된 것이었습니다. 저에겐 매우 특별한 기회였죠. 당시 타고 있던 비행기가 평양 공항에 가까워지면서 아버지의 공군기가 추락했던 지점을 지났는데, 그 순간은 정말 제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세 살 이후 아버지와 가장 가까워진 순간이었으니까요.

기자) 미-북 정상 간 합의 이후 22일 현재, 유해 송환 절차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고 계십니까?

다운스 회장) 어제(21일) 아침까지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 따르면 유해 인도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미국 측 관계자 두 명이 현재 북한에 파견돼 있습니다. 인도 절차를 조율하는 담당자와 법인류학자, 이렇게 두 명입니다. 그런데 유해 인도 작업을 개시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직 국무부나 국방부 등 행정부로부터 절차를 시작해도 된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자) 유해가 송환되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됩니까?

다운스 회장)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먼저 비무장지대(DMZ)로 옮겨질 것으로 추축됩니다. 현재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도, 북한이 몇 구를 인도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에 큰 규모로 인도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미국 측이 직접 북한에 들어가 유해를 인도 받고 바로 하와이로 수송할 수도 있는데 이번엔 그럴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먼저 DMZ로 지상 이동시킨 뒤 유엔 사령부로 넘기고, 이어 주한미군에게 인도하는 기념 행사가 치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엔 하와이에 있는 신원확인 시설로 옮겨질 것 같습니다. 만약 유해가 200구 정도로 큰 규모라면 일부는 네브라스카에 있는 감식소로 옮겨질 수도 있습니다.

기자) 북한이 유해를 파낸 뒤 다시 묻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요.

다운스 회장)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0년대 초 북한이 일방적으로 208개의 상자를 돌려줬을 당시에도 알고 보니 그 안에 총 400구의 유해가 모아져 있던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가령 한 개의 관에서 왼쪽 대퇴골이 두 개씩이나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부 유해들은 상당히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개의 뼈만 남아있을 수도 있고요.

기자) 뼈가 섞여 신원확인이 어려운 데 대한 우려는 없습니까?

다운스 회장) 뼈들이 어느 정도는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땅에 묻힐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묻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 한 곳에 한 명만 묻힐 수도 있지만 3~4명 이상이 함께 묻혀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북한이 서 너 명의 유해를 한 곳에 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법인류학자가 그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유해 발굴 작업을 북한에서 직접 하고 싶어했던 것도 같은 이유고요.

기자) 신원확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던데, 기술 개발로 속도가 어느 정도 개선됐나요?

다운스 회장) ‘K208 프로젝트’ (DPAA의 6.25전 참전 미군 유해 감식 작업)도 20년에 걸쳐 진행됐는데요, 당시에는 유해들을 늘어놓고 감식할 적절한 시설들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네브라스카에 이어 하와이에 새 연구소가 생겨 유해를 늘어놓고 감식할 역량이 늘었습니다. 또 방사능을 통한 신원확인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돼 당시 일부 미군들에게 의무화된 엑스레이 검사 자료와 비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최근 들어선 이 방사능 기술이 주로 이용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엑스레이, 치아, 의료 기록, 가족 DNA 등 모두 요소들이 종합돼 사용됩니다. 유해 감식을 위한 기술 역량은 과거보다 훨씬 늘었습니다. 과거 의료 기록이나 유해 훼손 정도 등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일부 유해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신원확인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기자) 미 국방 당국으로부터는 그 동안 어떤 약속과 협조를 받아오셨습니까?

다운스 회장) 전쟁포로,실종자 관련 부서는 그 동안 두 곳이 있었는데요. 과거 국방부 산하 DPMO는 투명하지 않고 체계가 형편없었습니다. 한 곳에서 총괄자들이 겹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2015년 DPMO가 개편되며 현재의 DPAA가 생겼는데, 총괄자는 한 명으로 통일돼 체계가 개선됐습니다. 또 과거 DPMO는 안 될 이유만 찾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현재 DPAA는 훨씬 투명하고 협조적입니다.

기자) 정부 협조와 관련해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까?

다운스 회장) 현재 정부는 참전 미군에 관한 기록들을 갖고 있으나 전쟁 이후 기밀 자료로 분류했습니다. 일부 기록을 공개해 각종 조사의 참고 자료로 사용됐으면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참전 당시 동료 미군들에 관한 얘기를 한 기록이 있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다른 분이 실종된 저희 아버지를 봤다고 얘기한 기록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런 기록들을 일부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도 상정돼 있습니다. 저희가 정부에 여러 차례 요구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정부는 어떤 기록들을 공개할 것인지 분류하기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자) 아버지 유해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어느 정도 갖고 계신가요?

다운스 회장) 저희 아버지의 경우 공습 임무 중 실종됐기 때문에 유해가 넓은 지역에 걸쳐 흩어져 있다는 점이 그 동안 문제였습니다. 유해 발굴은 보통 주요 전투 지역에 집중하기 때문에 저희 아버지가 실종된 지역 주위로 갈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인도할 유해는 여러 지역에 걸쳐 모아진 것이기 때문에 저희 아버지 유해도 섞여 있을 가능성이 아주 낮진 않아 다소 희망적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 당국에는 어떤 요구를 하고 싶으신가요?

다운스 회장) 미국 측 소규모 조사단이 외곽 지역부터 당시 공군기 추락 지역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조사단이 그곳에 들어가 현지 주민들로부터 전사자들이 어디에 묻혀 있고 지역 묘지가 어디 있는지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는 포로 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에게 무언가 들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북한 당국이 이를 허용해 준다면 저희에겐 매우 특별한 일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6.25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아 리처드 다운스 전미 전쟁포로,실종자 가족연합 회장으로부터 미군 유해 송환에 관한 우려와 기대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