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 이후 공개 활동이 뜸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경제 행보에 나섰습니다. 북-중 접경지대인 신의주 일대 공장들을 돌아봤는데요. 이번 현지 지도의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공개 활동이 뜸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말 평안북도 신도를 방문했습니다. 북한에서 ‘비단섬’으로 불리는 신도는 압록강 하구에 있는 섬으로, 유명한 갈대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조그만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간 김정은 위원장은 갈대를 활용해 화학섬유를 생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녹취: 중방] “신도군을 주체적인 화학섬유 원료 기지로 튼튼히 꾸리고 갈(갈대)생산을 늘이는 것은 우리나라 화학공업의 자립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신도는 중국의 국경도시 단둥과 지척에 있어 북한이 1990년대부터 경제개발 특구로 주목해 온 곳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인 2011년에는 북한과 중국이 신도 근처인 황금평과 위화도 지역을 북-중 합작경제특구로 개발하기로 하고 성대한 착공식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2013년 이 사업을 책임졌던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북-중 합작 계획은 무산되고 황금평을 비롯한 이 지역은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3차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첫 현지 지도 장소로 신도를 선택한 것은 중국의 투자 유치와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라고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전 장관] ”나는 황금평, 위화도 일대를 서너번 답사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지역이야말로 북한과 중국 간 경제협력에 가장 좋은 곳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런 방향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또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조그만 배를 타고 신도에 도착하는 모습과 현지에서 작고 낡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등을 방영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녹취: 중방]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물결 사나운 배길과 험한 감탕(진흙)길을 헤치시며 신도에 오르신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를…”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이런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경제를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소탈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해서라고 강인덕 전 장관은 말했습니다.
[녹취:강인덕 전 장관] ”나는 경제를 위해 할아버지가 말한대로 이밥에 기와집 이런 것을 보장해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신의주에 있는 화장품 공장을 시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 씨와 함께 남신의주에 있는 화장품 공장을 둘러본 뒤 생산과 경영 활동을 잘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신의주방직공장과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잇따라 방문해 관계자들을 크게 질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공장 건물이 낡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나무랐습니다.
[녹취: 중방] “이 공장에서는 보수도 하지 않은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건물보수를 땜때기식으로 하고 있으며…”
신의주방직공장에서도 김 위원장의 질책은 이어졌습니다. 공장의 일꾼들과 노동계급이 난관 앞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지 지도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 시찰은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후 후속 비핵화 협상을 위해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조율하던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이는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고 강인덕 전 장관은 말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전 장관] ”우리를 도우라, 우리에 대한 제재를 풀어야 우리도 거기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겠다는 거지요. 행동 대 행동 원칙, 이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앞서 북한은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지만 제재로 인해 여기저기서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수출길이 막혀 돈줄이 끊겼습니다. 북한은 ‘석탄으로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광물을 수출해 연간 10억 달러 가량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2월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석탄 수출이 중단되자 돈이 돌지 않아 국영기업과 돈주는 물론 군부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 출신 탈북민 장진성 씨는 말합니다.
[녹취: 장진성] ”군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왜냐면 군에 석탄독점권을 줬는데, 석탄을 팔아야 외화로 군복이나 군수물품을 사올 수 있는데, 이게 끊기니까, 군 경제가 망가졌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에너지 사정도 심각합니다. 지난해 4월 평양의 휘발유 가격은 kg당 6천원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내부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6월 현재 휘발유는 1만1천원 선입니다. 겨울철에 비해서는 떨어졌지만 지난해 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오른 겁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통해 휘발유 등 정제품 공급을 50만 배럴로 묶어 전보다 75%를 줄였습니다.
기름 수입이 여의치 않자 북한은 유조선을 동원해 해상에서 다른 선박으로부터 몰래 석유를 옮겨 싣는 ‘환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일본 방위성은 최근 북한 유조선 ‘안산 1호’가 동중국해 해상에서 다른 선박을 호스로 연결해 기름을 옮겨 싣는 환적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북한의 8번째 석유 환적 사례입니다.
외화난, 에너지난, 물자난 등 3중고를 겪는 북한이 어떻게 대북 제재를 풀고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