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비어 전 부차관보] “종전선언, 주한미군 근간 흔들어…미북 협상, 군축 전환 우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미-한 동맹과 주한미군의 근간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가 지적했습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17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건 지렛대를 약화시키고 제재 위반 사유가 될 수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미국의 군사 행동과 최대 압박은 이미 동력을 잃었다며, 북한과의 군축 협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다시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번 방북의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폼페오 장관의 이번 방북 목적은 지난번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비핵화에 대해 공통의 생각을 갖고 합의를 맺는 데 있다고 봅니다. 미-북 정상회담에는 큰 허점이 있는데요. 양측 모두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지만 비핵화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폼페오 장관은 지난 번 방북에서 미국의 목표를 명확하게 발표했지만 북한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오 장관이 다시 북한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과 여러 차례 협상에 나선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양국이 간극을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보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지금 어떤 협상도 이뤄지지 않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근본적인 목표를 두고 계속 대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관계를 개선해 (역내) 미군 역량을 줄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를 원하고요. 이에 따른 대가로 비핵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는 미국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기자)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최근 한 언론에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종전 선언을 교환하는 “신고 대 선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핵심 목표는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을 이뤄낸 다음 궁극적으로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미-한 동맹과 주한미군의 근간을 약화시키는 목적인데요. 만약 평화가 이뤄진다면 미-한 동맹이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평화 협정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 협정을 맺는 것은 재앙이 될 겁니다.

기자) 미국이나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종전 선언을 채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평화 협정 체결의 핵심은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당사국들이 전쟁의 종료를 원한다는 점에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울러 전쟁 종료 이후 한반도가 어떤 상황이 돼야 하는지에 합의해야 합니다. 관련국들이 군대나 동맹 체계, 그리고 정치적 관계 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죠. 미국과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주요한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이들이 배제되는 협정은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기자) 일각에서는 한국이 1970년대 베트남과 같이 평화 협정 체결 이후 공산 정권 하에 통일되는 시나리오를 우려하는데요.

리비어 전 부차관보) 당시 베트남과 현재 남북한의 상황은 다릅니다. 베트남에서는 평화 협정 체결 이후에도 계속 분쟁이 이어지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하에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북한은 오랫동안 종전 선언을 통해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미-한 동맹의 정당성을 제거하려 해왔습니다.

기자) 한국 정부는 남북간 철도 사업 등 여러 경제 협력 구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나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사업 구상이 나오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경제 협력 사업은 어떤 식으로든 제재 위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재 이행의 취약성을 보여줄 수도 있고 미국이 제재를 통해 북한에 갖고 있는 지렛대를 약화할 수도 있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했고 이는 국제사회가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자초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기자)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되면 미국에 남아있는 옵션은 무엇이 있다고 보십니까?

리비어 전 부차관보) 지금 벌써 장기화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악화되기만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미국에 남아 있는 옵션 중 하나는 군사력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두 번째로는 최대 압박 정책이 있는데 미국은 비핵화에 이미 너무 낙관적인 입장을 밝혀옴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마지막 옵션은 가장 우려되는 옵션인데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법입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 다음에 군축이나 제한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죠. 제가 우려하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자) 그렇게 보시는 이유가 뭔가요?

리비어 전 부차관보) 우선 군사옵션과 압박 정책은 옵션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계속 원해왔던 핵무기를 가진 정상국가가 되는 것만 남은 겁니다. 이게 현실이죠. 저는 미국이 큰 정책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핵화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북한의 핵 역량에 대한 신고서를 받아내는 건데요. 또한 적극적인 협상에 참여해 비핵화에 대한 일정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이미 이뤄지고 있어야 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한이 비핵화에 약속했다”는 환상에 너무 빠지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죠.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북한의 핵 역량 신고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정직한 신고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리비어 전 부차관보) 우선 북한이 자신들의 핵 역량과 우라늄, 무기, 플루토늄 보유 현황 등을 문서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또한 어떤 핵 관련 시설을 갖고 있는지도 신고해야 합니다. 북한에는 미국이 알고 있지만 북한이 미국이 알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시설들이 있습니다. 신고는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로부터 폼페오 국무장관의 방북 목적과 북한 비핵화 협상 전반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