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1800년대 중반, 미국은 서부개척시대를 맞았습니다. 미 대륙 동부지역에 살았던 주민들이 서부에서 나는 금을 차지하기 위해 황량한 사막을 건너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Wild West’라고 하는 거친 서부 개척 문화를 형성하게 됐죠. 챙이 큰 모자에, 허리춤엔 총을 차고,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들. 또 금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모였던 술집은 옛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단골 배경이기도 합니다. 미 서부 애리조나주의 광산마을 ‘오트먼’ 역시 그런 서부개척 시대의 주요 거점이었는데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금이 아닌 역사를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고 합니다.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첫 번째 이야기, 서부개척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애리조나 오트먼”
[현장음:오트먼 재연 배우들]
황량한 서부의 광산 마을. 오래된 술집들과 당나귀가 오가는 거리는 꼭 과거로 돌아간 듯합니다. 이곳에선 지금도 카우보이들의 총 싸움이 벌어지는데요. 물론, 실제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건 아니고요. 배우들이 서부 시대 총잡이를 재연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 금을 훔치려는 무법자들이 활개 했던 오트먼엔 이제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탄성이 가득합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1주일에 몇 차례 서부 재연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험악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모습에 관광객들은 눈을 떼지 못합니다.
서부시대를 재연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오트먼 사진관’의 주인 린다 우다드 씨는 오트먼 마을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린다 우다드]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역사가 짧습니다. 하지만 독특한 서부 개척 시대 문화가 있고요. 미국인은 여기에 열광하죠. 카우보이나 광산 등 서부개척 시대상을 보는 걸 매우 좋아하는데요. 바로 이곳 오트먼이 과거에 금광 마을이었습니다.”
애리조나주에서 처음 금이 발견된 건 180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오트먼에서도 금광이 발견되면서 한때는 인구가 1만 명에 달하는,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을 형성했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광부들이 다른 일을 찾아 마을을 떠나면서 인구는 3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이후 오트먼은 한때는 번창했지만 지금은 텅 비어버린 일명 ‘고스트타운(Ghost Town)’, ‘유령의 마을’이 됐습니다.
하지만 약 40년 전부터 오트먼은 관광지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요. 빅 마이크 폭스 씨는 1980년대 오트먼으로 이주한 후 재연 배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빅 마이크 폭스] “오트먼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결정대로, 내 방식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한테 뭔가를 강요할 수 없어요. 이걸 해야 한다, 저걸 해야 한다, 보험을 들어야 한다,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예요.”
폭스 씨의 자유로운 삶. 과거 서부시대, 무법자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죠?
지질학자들은 지금도 이곳 오트먼에 약 2천t의 금이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마을을 먹여 살리는 건 금이 아니라 관광산업이죠. 오트먼에는 과거 금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가 하면, 자유롭게 다니는 당나귀도 쉽게 볼 수 있고, 과거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신혼여행을 했던 호텔도 보존돼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스트타운’ 답게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데요. 이렇듯 오트먼에는 황량한 서부 개척시대의 모습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난민 출신 화가가 그리는 미국, 이라크 난민의 아메리칸 드림”
전쟁과 폭력, 굶주림과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오게 된 난민들. 이들 대부분은 거의 빈손으로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손에 들린 것이라곤 옷 가지 몇 개가 전부인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들에겐 숨겨진 재능과 기술도 많다는데요.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난민들도 있습니다.
[현장음: 리버데일 아파트]
메릴랜드주 리버데일의 한 아파트 단지. 아파트 시설 관리 일을 하는 아흐매드 알카키 씨가 고장 난 전등을 고치고 있습니다. 알카키 씨는 주중엔 이렇게 아파트 수리를 하지만 퇴근 후나 주말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 앞에 앉습니다.
[녹취: 아흐매드 알카키] “제게 있어 그림은 음악과 같습니다. 음악을 연주하듯 그림을 그려요. 캔버스 위에서 여러 색과 춤을 춘다는 생각으로 붓을 잡습니다.”
알카키 씨는 바그다드 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라크에선 꽤 유명한 화가였죠. 하지만 2006년, 군사정권을 피해 시리아로 탈출했는데요. 시리아에서도 전쟁이 시작되면서 3년 후 아내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면서 알카키 씨의 예술 세계도 변화를 맞게 됐다고 하네요.
[녹취: 아흐매드 알카키] “이라크에서는 채색이 단순했습니다. 회색 아니면 갈색이었죠. 하지만 미국에 와보니 4계절이 뚜렷하더군요. 자연에서 정말 다양한 색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그림을 그릴 때도 더 다양한 색을 쓰게 됐습니다.”
알카키 씨는 최근 다른 5명의 난민 출신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샌디 스프링 미술관’의 앨리슨 와이스 관장은 이라크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난민들이 실력을 뽐냈다고 했습니다.
[녹취: 앨리슨 와이스] “요즘 언론을 보면 난민 관련 뉴스가 많이 나오죠. 얼마나 많은 난민을 미국이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민들이 미국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 전하고 있는데요. 이번 전시회는 뉴스에서 듣지 못했던, 난민들 개개인이 가진 재능을 확인할 기회입니다.”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을 보면 난민 출신 화가들의 꿈과 그들이 살아온 여정,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새로운 땅 미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변화들을 담고 있습니다.
[녹취: 아흐매드 알카키] “이 그림은 제 고향을 그린 풍경화입니다. 저는 미국인들에게 제 고향 이라크의 좋은 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라크라고 하면 전쟁만 떠올리지만, 실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있어요.”
알카키 씨의 또 다른 작품인 ‘Colorful Horses’, ‘다채로운 말들’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난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아흐매드 알카키] “여기 다양한 색깔을 한 역동적인 말들은 난민들을 표현한 겁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난민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왔지만, 이곳 미국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 10년 또는 20년 후가 되면 다들 ‘나는 미국인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거예요. 그리고 미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알카키 씨는 그림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한 미국에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아흐매드 알카키] “미국은 난민들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했어요. 저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알카키 씨는 고향 이라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미국에서도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