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이산가족들 “북한, 이산가족 정치적 수단 활용 말아야”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한신자(99) 씨가 북한에서 살고 있는 딸 김경실(72), 경영(71) 씨와 재회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년 10개월만에 열린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미국 내 이산가족들은 착잡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60여년의 기나긴 기다림 속에 지친 이들의 반응을 김영권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오빠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철부지 11살에 헤어진 오빠의 소식을 머리가 다 희어진 인생 말년에야 알게 되다니. 너무도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앞을 막아 어떻게 펜을 옮겨야 할지 이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에 사는 이산가족 김형서 할아버지가(85세) 13년 전 북한에 있는 여동생에게서 받은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할아버지가 5년 이상 중국의 중개인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주고받았다며 7년 전 VOA 보내온 여러 편지를 보면 기대와 원망, 회한과 금전적 지원을 기대하는 복잡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VOA는 금강산에서 20일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생각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아주 위독한 상태라 전화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미이산가족상봉위원회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20일 VOA에 이제 인터뷰할 이산가족 당사자가 거의 없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녹취: 이차희 총장] “인터뷰할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거의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한테 참 가슴 아픈 분이 아이 세 명을 (북한에) 두고 오신 분이 있는데 지금 구십 몇 살 입니다. 그분이 얼마 전에 양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주 전에 찾아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많이 약해 휠체어에 타고 다니시는데 아직도 아이 세 명 중에 한 명만 살아있는 게 확인되면 북한에 가겠다는 겁니다. 휠체어 타고.”

이 총장은 한국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기쁘게 지켜봤다면서도 미국의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좌절감이 밀려온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총장] “저는 참 기쁘게 봤습니다. 우리 한국이나 미국의 이산가족이 모두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하루라도 한 사람이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이 시점에서 (만나야 합니다). 일평생 우리에게 한이 맺힌 겁니다.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저희한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면서도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000년 이후 21번째이지만,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은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상봉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일부 가족이 중국 내 중개인 혹은 북한을 자주 오가거나 북한 정부와 친분이 있는 단체들을 통해 비공식적인 교류를 해왔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좌절감이 적지 않다는 게 이산가족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강원도 원산에 어머니와 세 동생을 두고 떠났던 김경수 전 아칸소주립대 교수도 20일 VOA에 그동안 많은 희망을 품었지만, 이제는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경수 전 교수] “지금은 제가 지쳤어요. 옛날에는 한국에 비행기 타고 가서 거기에 등록을 하러 가고 그만큼 내 가족을 일생을 찾았는데 지금은 우리 나이가 한두 살인가요? 옛날에는 미래에 희망이라도 갖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85세가 넘었는데 내 동생들이……”

김 전 교수는 과거 한국의 대한적십자사와 베이징의 북한대사관까지 찾아가 김충일이라는 북한 영사와 면담까지 하는 등 어머니와 세 동생들(김의숙, 김은수, 김희수)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교수 등 미국 내 이산가족은 지난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으로 마지막 희망까지 걸었지만, 합의에 이산가족이 없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의 민명기 회장은 20일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보도를 보면서 미국 내 이산가족의 현실을 보니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민명기 회장] “저희들은 미국 시민권자들인데, 지금 이산가족 상봉을 한 번도 못 하고 나이들도 많이 들고 여러 가지로 참..한 번이라도 가족 상봉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지요”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서 시도했지만, 허사였고 이번에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다시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차희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 정부 모두에 섭섭함을 토로했습니다.

과거 재미이산가족상봉위원회 위원들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관계자들과 두 차례, 국무부 관리들과 여러 차례 면담한 결과 모두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 지지했는데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이 의제가 빠졌다는 겁니다.

이 사무총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산가족 사안을 한국에 위임했고 한국 정부가 남북 협상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미 이산가족을 포함하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정부 관계자에게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가 늘 미국 내 이산가족 사안을 미-북 협상 의제로 고집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총장] “북한은 언제나 재미 이산가족을 미국 정부와 단독 북미 간의 이슈로 언제나 주장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것을 적용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상황입니다. 정치적 이슈 때문에 우리 이산가족 문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 차원입니다.”

미국 내 이산가족은 미국 시민의 문제이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이산가족 사안은 미 의회에서도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과거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 결의안을 상정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던 마크 커크 전 상원의원,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 하원의원 등 여러 의원이 의회를 떠나면서 이를 전면에서 적극 추진하는 의원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미국 내 이산가족들은 그러나 상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 정부나 의회보다 인도적 사안을 정치적 의제로 고집하는 북한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경수 전 교수는 북한 정부가 이산가족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경수 전 교수] “사람 만나겠다는데 못 만나게 하는 게 바로 인권을 침해하는 겁니다. 또 우리가 지금 만나는 것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을 볼 때) 인권을 무시하고 하는 거죠. 물론 만나게 해주면 더 좋겠지만, 만난다는 게 일시적인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그런 상봉보다 정말 우리를 케어해서 만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북한 당국자들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조건 없이 인도적 차원에서 상봉의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총장] “북한에서 정책 결정권을 가진 분들도 부모님이 있고 형제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 노년입니다. 80~90대입니다. 정치적 문제를 빼고 인도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점을 참작하셔서 자신들이 가족을 잃은 이런 경우에 처한다면 어떨까? 좀 동정을 해 주십사 합니다. 이제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저희에게도 상봉의 기회를 열어주시고 한국 이산가족도 더 많이 상봉하게 해 주시고 영구적으로 가족이 연락을 취하고 만날 기회를 북한 정부가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기회를 열어주십사 하고 저희가 부탁드립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