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유소년 축구 선수들이 29일 한국 춘천에서 개막된 국제대회에서 첫 경기를 했습니다. 남북한 당국은 스포츠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남북 선수들은 경기 외에는 서로 대화조차 하기 힘들 정도여서 실질적인 교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내년 북한 원산에서 열릴 다음 대회에 미국 유소년 팀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녹취: 경기장의 신나는 음악 소리]
단풍이 노랗고 붉게 물든 산자락 아래 경기장에 한반도기들이 나부낍니다.
머리를 신병처럼 짧게 깎은 흰색 유니폼을 입은 북한 유소년 축구 선수들이 푸른색 상의를 입은 한국 선수들과 경기장에 등장하자 관중의 환호성이 울립니다.
[녹취: 경기장 아나운서]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
이곳은 호반의 도시로 불리는 강원도 춘천시의 송암레포츠타운 주경기장.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개막전에서 한국의 강원도 선발팀과 북한 4·25 체육단이 남북 간 첫 경기를 했습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남북 간 첫 스포츠 교류여서 그런지 공중파 방송이 생중계하는 등 관심을 끌었습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이날 외신기자회견에서 대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최문순 지사] “아리 스포츠컵은 말 그대로 아리가 아리랑의 앞글자를 딴 겁니다. 한민족의 교류를 확대해 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대회가 되겠습니다. 남쪽에서는 남북스포츠교류협회라는 사단법인이 주최하고 북쪽에서는 4·25 체육단이라고 하는 우리로 말하면 국군체육부대가 되겠습니다.”
만 15살 이하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2014년 시작돼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3회 대회가 취소된 것을 제외하면 해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꾸준히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4회 대회에 이어 두 달 만에 다시 한국에서 5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남북한 각각 두 팀과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6개국 8팀이 참가했습니다.
북한은 4·25 체육단과 여명체육단, 별도로 소녀들로 구성된 여성 축구단을 포함해 모두 84여 명의 대표단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날 경기는 북한이 3대 1로 완승을 했지만, 1만 5천여 관중은 경기 결과보다 남북한 교류에 더 큰 의미를 뒀습니다.
[녹취: 춘천 시민들] “남북교류와 화해 협력 무드에 우리 춘천이 좋은 방향으로 가는데 우리 춘천이 시작했다는 데 아주 기쁩니다.” “요즘 남북교류가 잘 이뤄지는 분위기에 이런 경기가 이뤄지고 학생 관람객들도 많이 와서 분위기가 잘 조성된 것 같고 이런 행사가 많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날 여러 학교에서 동원된 학생들도 북한 선수들을 보며 신기해하면서도 친근감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주문진 중학교 학생들] “옛날에는 북한 생각하면 조금 무섭고 그랬는데 저희 눈앞에 직접 보이니까 그렇게 안 무서운 것 같아요.” “신기해요. 약간 남북 사이가 돈독해졌으니까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게 아닐까 통일에 한 발짝 앞서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갈 수 있다는 게 좋죠.”
경기를 마친 북한 선수들은 VOA의 질문에 수줍어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인상과 음식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북측 수문장 조천룡 선수입니다.
[조천룡 골키퍼] “(한국에 와서) 기쁩니다. 직접 와 보니까 가까운데 앞으로 통일돼서 계속 와봤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친구들과 농담도 하고 그럴 기회도 있었나요?) 남한 친구들과 숙소가 다르니까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자: 다음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네 좋겠습니다. (기자: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나요?) 글쎄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저 축구에 대한 얘기하고 싶습니다. (기자: 사는 얘기도?) 네 그렇습니다 (기자: 한국이나 춘천에 대한 인상은요?) 인상에 남습니다.”
이날 골을 넣은 리일송 선수는 한국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일송] “와 보니까 별로 멀지도 않습니다. 자주 앞으로 오고가면서 경기도 자주 하고 서로 정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남한 선수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나요?) 평양 (4회 대회 때)에 있을 때 남한 10번 주장과 얘기 좀 나눴습니다. 축구에 관해서요.”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축구 경기는 했지만, 사실상 함께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습니다.
강원도 대표팀의 중간 수비수인 김가온 선수는 VOA에 대화할 시간이 없어 무척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가온 선수] “얼굴만 봤어요. (기자: 전혀 대화할 시간이 없었군요?) 네, 오늘 경기장 돌며 처음 해봤어요. (기자: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하고 싶었나요?) 평소에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고,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북측 선수들이 제게 물어보면 잘 대답해 주고 싶습니다. (기자: 그런 기회가 그런데 없어서?) 참 아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국가 간 유소년 축구대회가 열리면 방문 선수들은 주최국 도시의 가정에 묵으며 문화를 체험하거나 관광, 현지 학교 등을 방문해 서로 자유롭게 교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북한 유소년 선수들은 자유 시간이 없었고 식사 시간에도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끼리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강원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VOA에 “남북한 당국 모두 매우 조심스러워해 실질적인 교류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도교육청은 춘천에 있는 문화 콘텐츠 인재 양성학교인 애니고등학교 방문을 북한선수단에 제의했지만, 북측은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사실상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북한 측 문웅 선수단장과 간부들 역시 이날 축구만 관람한 채 기자회견 없이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스포츠 교류가 늘 상징적 행사에 그치고 실질적인 선수들 간 교류로 발전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남북 스포츠의 역할과 전망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도 여러 스포츠 전문가들은 체육 교류가 정치적 물꼬만 트고 토사구팽당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 행사를 주최한 남북체육교류협회 김경성 이사장은 VOA에 남북한 체육 교류가 정치적 상황에 영향받지 않도록 조약이 필수적이라며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경성 이사장]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가 대화를 시작했고, 이런 스포츠가 정상 간 만남과 큰 협약을 맺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가장 기초적인 스포츠 교류에 대해서 어떤 정치적 상황에서도 스포츠 교류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그 한 문구를 (남북합의에) 못 넣는 것이죠.”
이날 경기장을 찾은 고등학생 김지혜 양도 선수들 사이에 자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없다면 “보여주기식” 행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지혜 양] “함께 밥 먹고 대화하고 그럴 시간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아쉽고 뭔가 보여주기식 같아요.”
이날 본부석 1층에서 경기를 관람한 20여 명의 북한 측 여자 축구선수들도 전반전이 끝난 뒤 연예인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자리를 떠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모두 단발로 짧게 자른 북한 소녀들은 공연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인솔자가 나가자고 하자 아쉬운 듯 일어났고 일부 선수는 경기장을 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VOA의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속 가능한 스포츠 교류 방안을 묻는 VOA 질문에 남북문제는 궁극적으로 국제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미국 유소년 축구단 초청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문순 지사] “내년 5월에 열리는 원산 대회에는 미국의 참가를 요청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결국은 북미 간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미국의 참가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이번 대회는 A조와 B조로 나눠 치르고 결승전은 다음 달 2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