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관련해 엇갈린 평가를 했습니다.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핵물질·핵무기 생산 동결을 시사한 것은 진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뉴욕타임스(NYT)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북한이 바라는 결론이 좀 더 명확해졌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즉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지만,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도 똑같이 제거하는 것을 바란다며, 서로 어긋나는 비핵화 개념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북한의 핵심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며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을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서로 이질적이고, 모순된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화해를 뜻하는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지만, 매우 거친 가시들이 달렸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북한 지도자는 연합군사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제재 완화, 종전선언 등 자신들의 긴 요구사항을 다시 강조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신고와 같은 새로운 비핵화 조치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또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북한을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놓으면서, 미국의 문간에는 추가 조치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올려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는 비핵화 성공을 원하면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하되, 거래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P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북한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면 미국과 거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은 어느 시점에 핵무기 생산이나 확대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지만, 이것은 비핵화와 거리가 먼 신호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빅터 차 석좌는 또 외교의 지속을 위해 정상회담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며, 합의에 도달한다면 좋지만 결렬되면 더는 갈 곳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 신년사가 확실히 협상 재개의 시작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한 제재 완화 요구에서 알 수 있듯이 진입 비용이 더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반입 중단을 요구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용의를 밝히는 한편 대북제재 지속 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미국과의 협상 장벽을 더 높여 놓은 것이라는 겁니다.
한편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은 WSJ에, 북한 지도자가 이런 연설을 한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미 정부가 북한의 진의가 무엇인지 자세히 분석할 것이라며, 이것이 진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도 신문에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이 핵물질 생산 동결과 핵무기·핵물질의 타국 판매 금지에 동의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에 못 미치며 탄도미사일 문제는 외면했지만, 이런 조치들이 성실하게 이행된다면 비핵화 목표를 향한 중요한 과도적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