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애타게 찼던 북한의 여동생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탈북자는 동생이 살아있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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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돼 북한보위부에 의해 관리소로 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신고 받습니다.”
지난 1월 17일, 한국 내 대북인권단체 ‘노 체인’ 정광일 대표의 인터넷 소셜미디어에 오른 게시물 내용입니다. 유엔을 통해 수감자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1일에는 정 대표의 소셜미디어에 북한 여성 김모 씨의 사진이 담긴 동영상이 게시됐습니다.
이 영상에는 “이 분은 현재 북한 16호 화성관리소에 10년째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 온 언니의 소식을 듣고 탈북하여 중국으로 왔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여 북송됐고 보위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현재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10년째 수감되었다”는 내용의 2분이 채 안되는 영상입니다.
이 영상의 출처는 정 대표의 17일자 게시물을 본 미국 내 탈북 여성 조앤 김 씨였습니다.
현재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는 조앤 씨는 10년 전 헤어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동생의 생사를 알고 싶어 노 체인에 동생의 영상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영상에는 김모 씨의 수감 전 사진 8장이 실렸는데요,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생의 생존을 바라는 조앤 씨는 여동생 김 씨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녹취: 조앤 김] "학교에서 피아노 치는데 너무 노래하고 피아노 치는데 너무 감동을 먹어서. 우리 동생이 피아노실에 '금강산에 선녀들이 내린다 하지만',그 노래에요. 우리 아버지가 늘 불러주던 노래였고. 온 집안에 18번 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부른거에요. 슬퍼서. 그래서 당장 키도 크지 노래도 잘하지 하니까, 캐스트 된거에요. 기량와 모든게 다 갖춰졌기 때문에. 정말 잘했어요. 열심히.. 선생님들이 다 칭찬했어요.”
조앤 씨는 10년 전 한국에있는 고모와 조카의 도움으로 중국 내 브로커에게 1천만원의 비용을 약속하고 김 씨의 구출계획을 세웠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가기위해 중국 심양까지 왔었던 조앤 씨는 첫 구출계획부터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여러차례 시도 끝에 결국 동생구출에 실패했습니다.
[녹취:조앤 김] “돈 부쳤어요 하니까 '알았어요'. 하니까, 넘겨 받는데, "어 언니” 하는데 전화가 딱 끊긴 거에요. 받는 순간 무장한 변방대들이 숲속에서 나오더래요. 브로커들이랑 짜고 … 작정을 한 거에요. 이렇게해서 잡혀 넘어갔어요..”
브로커와 보위부가 짜고 돈을 갖고 온 조앤 씨와 김 씨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인데요, 조앤 씨는 자신은 이를 눈치챘고 위기를 면했지만, 동생은 결국 잡혔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도 보위부에서 1년 동안 예심을 기다리던 동생이 폐렴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녹취: 조앤 김] “급성폐렴에 걸렸데요. 병원에 나와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엄마 어떻게든 살려라...그래서 돈을 600만원을 보냈어요. 그게 마지막 전화였어요. 어머니까 그러더라고요. 몇 달 있다가… 2009년도 음력 설에 잡혔으니까, 2010년도 봄에 그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는 거에요. 그냥 실신한 거에요."
동생이 보위부와 수용소에서 겪었을 일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녹취: 조앤 김] "내 동생은 키가 크고 하니까, 맞았을 거에요. 미치는 거죠..깝데기를 벗겨 죽이는 지옥같은 데 잖아요. 북한이라는 곳이. 그런데 끌려가서 내 동생이 끌려가서 받을 그 수모. 거기서 도둑질해서 먹고 살아야 하고. 걔는 한 끼라도 안 먹으면 배고파서 절절메요."
절대로 잡혀서는 안되는 곳이 북한이라고 말하는 조앤 씨도 북송된 경험이 있기에 동생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10년 세월을 그렇게 살았던 조앤 씨는 동생의 생일이 곧 다가오기에 동생을 그리워 하는 동영상을 만들었고 우연히 소셜미디어를 보게 된 겁니다.
이 일은 조앤 씨가 희망의 끈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길이 있다는 걸 이전엔 몰랐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사진과 자세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노 체인을 통해 유엔에 제출해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입니다.
정 대표는 김모 씨가 있었던 수용소가 지난 2009년 사라지면서 수감자들이 모두 16호 화성관리소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여러 통로로 확인했고, 이에 근거해 김모 씨의 행방을 짐작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김 씨의 생사 여부는 확인할 수 없기에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대표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계기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인권 상황 조사: 피해자 가족 증언’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현재 수감돼 있는 피해자들의 사진이 공개된 첫 사례였습니다.
책자에는 10명의 수감자들의 체포 상황과 이유 등이 기록됐는데요, 정 대표는 올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김 씨를 포함한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생사 확인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이달 초 시나 폴슨 유엔 북한인권 서울사무소장을 면담했습니다.
[녹취:정광일 ] ”유엔 인권이사회 정례브리핑을 할 때 북한당국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자들의 생사 여부 확인할 필요가 있을거 같다, 제가 그렇게 주장을 했고요, 이 사람들이 생사 여부… 수용소 없다는 걸 북한이 증명해야 한다고 제가 말했고, 그래서 명단 여러가지 제출했습니다."
피해자 가족 증언집에 이어 최근 노 체인은 ‘고문피해자 증언 조사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뤄진 고문피해자 증언 조사는 탈북 후 중국에서 강제북송 됐거나 탈북에 실패한 후 북한 보위부에 의해 고문 당한 29명의 사례를 모았습니다.
생년월일과 이름, 탈북 시기와 북송된 횟수, 한국 입국 시기, 그리고 고문 내용과 후유증을 적은 피해자들의 나이는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합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체제에 대한 회의감에 한국으로 넘어간 가족을 따라나선 두 사례 외에는 모두 생계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가정주부가 가장 많았고,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대학생과 중학생 신분이었는데요, 연령에 상관없이 보위부 내에서 탈북을 시도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고문과 폭행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 입니다.
1997년 1차 탈북을 시작으로 세 차례 탈북 후 2004년 한국에 입국한 이모 씨는 중국에서 강제북송 당한 후 보위부에서 치아가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맞고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30대 초반 여성은 고문 과정에서 심장질환으로 정신을 잃었었고, 그 후유증으로 2009년 한국에 입국한 후 심장보조기구 사용 장애인 2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 대표는 북한 내에서의 고문은 탈북자들이 탈북 과정에서 잡히거나 중국에서 북송되면 피할 수 없는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실은 조앤 김 씨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습니다.
조앤 씨는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가슴이 아프다며. 만날 때까지 살아 있기만을 바랬습니다.
[녹취: 조앤 김] ”언니가 너무너무 미안하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떻게든지 이를 악물고 살아서 꼭 만나자. 언니가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 많이 사랑해.. 많이 보고 싶다… ”
VOA 뉴스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