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이 냉각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북협상 원칙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협상에 관여한 정부 고위 인사들이 연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는 건데요, 대체로 일치하는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가장 전면에 등장한 미 정부 인사는 존 볼튼 백악관 보좌관입니다.
3일 잇따라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빅딜'을 김정은 위원장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합의를 못 이뤘다"고 지적했습니다.
[볼튼 보좌관] "Extensive discussions between the president and Kim Jong Un and- and the issue really was whether North Korea was prepared to accept what the president called 'the big deal', which is denuclearize entirely under a definition the president handed to Kim Jong Un and have the potential for an enormous economic future or try and do something less than that which was unacceptable to us."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고 거대한 경제적 미래를 보장받을 것"을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보다 모자란 것"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 볼튼 보좌관의 설명입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해제', 즉 '선 비핵화, 후 보상'이 미국 정부의 협상 원칙이라는 이야깁니다.
이런 입장은 며칠 뒤, 미-북 실무협상을 이끌었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재확인하며 좀 더 분명해졌습니다.
하노이 회담 전만 해도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가능성을 시사했던 비건 대표는 11일 회담 이후 첫 공개 연설에선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녹취:비건 대표] “We are not going to do denuclearization incrementally. The President has been clear on that, and that is a position around which the US government has complete unity."
그러면서 "이런 입장에 미국 정부는 완전히 단결돼 있다"며 미국은 "완전한 해법(total solution)"을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접근법이 다소 달라 보였던 볼튼 보좌관과 비건 대표가 일치된 메시지를 전한 겁니다.
대북 협상 사령탑인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도 18일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한 더 밝은 미래는 검증된 비핵화 뒤에 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폼페오 장관] "President Trump’s commitment, the commitment he made for a brighter future for the North Korean people, is very, very real, but it must follow - it has to follow the verified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검증된 비핵화'를 이행해야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다만 폼페오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시간(timing)과 순서배열(sequencing),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이 이슈였다"고 언급해 해석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개념에 대해서도 거듭 설명했습니다.
"영변 핵시설 등 모든 핵연료 주기와 주요 부품과 핵분열 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며,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영구히 동결하는 것"이 미 정부가 최근 재확인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개념입니다.
핵무기 외에 탄도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요구는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볼튼 보좌관이 강조했던 것으로 당시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회담이 좌초될 상황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폼페오 장관과 비건 대표 등을 통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WMD를 포함한 비핵화를 김 위원장에게 요구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또 이런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것이라는 방침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폼페오 장관] "We have the most powerful sanctions on North Korea any administration has ever put in place, while also having the most successful diplomatic engagement that has ever taken place. Those twin efforts - the economic sanctions and our efforts to negotiate, to achieve a diplomatic resolution of this - I hope will lead to a really good outcome.
폼페오 장관은 18일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가장 강력한 제재"와 "가장 성공적인 외교적 관여"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인 '최대 압박과 관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겁니다.
특히 볼튼 보좌관은 '협상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 나온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 제재가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만큼 지렛대는 북한이 아닌 미국에 있다"며 제재의 효과를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또 "중국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유엔 제재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 북한을 더 압박하는 것"이라고 볼튼 보좌관은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직후 추가 대북 제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볼튼 보좌관은 그러나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존 제재를 유지하고 새로운 제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추가 제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볼튼 보좌관] “If they're not prepared to come with real acceptance of complete denuclearization. We're certainly going to keep the sanctions, the existing sanctions in place, tightening enforcement and look at other sanctions.”
이런 가운데 지난주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을 만난 비건 대표는 이번주엔 영국, 프랑스, 독일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대북 제제 이행을 위한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협상이 재개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제재에 좀더 비중을 두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북한은 "제재와 대화는 병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선희 부상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제재를 완화하지 않는 한 "북한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를 유지하겠다는 의향을 밝히고 있지만, 핵심 쟁점인 비핵화와 제재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협상 재개 여부와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