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푸에토리코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푸에르토리코 지사가 1주일새 두 번이나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리카르도 로세요 전 지사가 주민들의 반대 시위에 밀려 물러난 뒤, 후임자의 자격을 놓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기 때문인데요. 결국, 대법원 결정에 따라 완다 바스케스 전 법무장관이 7일 새 지사로 취임했습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는 최근 몇 년 새 경제 위기와 허리케인 마리아로 인한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령이란 무엇인가?”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인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입니다. 미국령은 미국 영토이긴 하지만 정식 주는 아닌 지역을 말합니다.

미국령은 미국 법으로 보호받지만, 거의 독립적인 일종의 자치령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미국령이 모두 16개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5곳에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미국령에는 푸에르토리코를 포함해 괌, 북마리아나제도, 사모아제도, 그리고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있습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역사”

푸에르토리코는 1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스페인 땅이었습니다.

1492년 스페인 선단을 이끌고 중미 대륙에 당도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듬해 두 번째 탐험에서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해 이곳을 스페인 영토로 선포했습니다. 이후 1508년에 처음으로 푸에르토리코에 주거지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 영토가 됩니다. 당시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진 뒤 자국 영토였던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긴 것입니다.

푸에르토리코를 자국 영토로 편입한 미국은 1917년 법을 만들어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도록 했습니다.

1940년대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현지 정부 책임자를 직접 뽑게 됨으로써 부분적으로 자치권을 획득했습니다.

이어 1952년에 푸에르토리코는 정식으로 미국 자치령이 됐습니다.

푸에르토리코의 면적은 약 9천k㎡에 달하고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33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종교는 가톨릭교도가 대부분이고, 말은 스페인어와 영어를 쓰며 돈은 미국 달러를 씁니다.

푸에르토리코 문화는 원주민과 스페인, 그리고 아프리카 문화가 혼합된 특징을 보입니다. 이곳의 주 수입원은 관광산업입니다.

“푸에르토리코의 독특한 지위”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정식 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하게 독립한 지역도 아닙니다.

국적 부여는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면 모두 미국 시민권을 받고 외국에 갈 땐 미국 여권을 씁니다.

[녹취:오바마 대통령 푸에르토리코 방문 VOA 뉴스]

지난 2011년 당시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해 유세했습니다. 하지만,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정작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의 참정권은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제한됩니다.

푸에르토리코는 주민이 직접 뽑은 대표를 연방 하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푸에르토리코 대표는 연방 하원에서 투표권이 없습니다. 또 정식 주가 아니기 때문에 연방 상원의원도 없습니다.

“푸에르토리코를 덮친 경제난과 허리케인”

푸에르토리코는 최근 몇 년 새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2017년 5월 당시 리카르도 로세요 푸에르토리코 주지사는 미국 연방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려 1천200억 달러에 달하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푸에르토리코는 2006년부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었습니다. 실업률은 12.4%까지 치솟았고, 한때 500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미국 본토로 건너가는 사람이 늘면서 33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녹취: 허리케인 마리아 관련 VOA 뉴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9월 초강력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덮쳐 천문학적인 피해와 약 3천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주 편입을 요구하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의 목소리”

경제난과 허리케인으로 푸에르토리코의 어려움이 가중된 가운데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해 달라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로세요 전 주지사는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푸에르토리코를 정식 주로 편입 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녹취: 리카르도 로세요 푸에르토리코 전 지사]

로세요 전 주지사는 또 한 미국 방송과의 회견에서 허리케인 대응에서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면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정식 주가 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연방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17년 6월에 치러진 주민투표에서도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주 편입을 압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당시 주민투표는 푸에르토리코의 미래 지위를 묻는 다섯 번째 투표였습니다.

2017년 1월 주민투표 시행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리카르도 로세요 전 주지사는 그해 5월 미국 방문길에 미 연방 의회에 주민투표 결과가 주 편입으로 나오면 이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연방의회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지난 2012년에도 푸에르토리코에서 주로 편입되자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왔지만,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투표 과정이 불투명하고 무효표가 50만 표 넘게 나왔다는 등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의 정식 주 편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허리케인 마리아 대응과 관련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이런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 승리를 이끈 다음날인 7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 속 인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최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 승리를 이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지난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선출 의석 과반수를 차지해 승리를 거뒀습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모두 71석을 얻어 선출 의석 124석 과반수인 63석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연립여당은 헌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의석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1954년 9월 21일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본 명문 세이케이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1982년 외무대신이던 아버지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99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마구치 1구에서 중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은 그는 2006년 9월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처음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베 1기 내각은 각종 비리 사건과 참의원 선거 참패로 1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를 2012년 재기에 성공해 다시 일본 총리가 됐습니다. 한편 아베 2기 내각은 1차 내각 때와는 달리 선명한 정책 방향으로 일본인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장수하게 된 이유는 경제가 첫 손에 꼽힙니다. 일본 경기는 근래 최고 활황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을 장기침체를 뜻하는 ‘잃어버린 20년’에 머물던 일본경제가, 2012년 아베 총리 2차 집권 뒤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통해 활력을 되찾았다고 분석합니다.

장기 집권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 평화헌법을 개정해 해외 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일본을 이른바 ‘정상 국가’로 회복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선 의석 유지에 실패하면서 아베 정부 개헌 시도에 일정한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임기인 2021년 9월 안에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최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