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전격 경질됐습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볼튼과 북한과의 `악연'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정권과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악연은 지난 2002년 10월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미-북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볼튼 당시 국무부 차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신뢰를 어겼기 때문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분명히 제거하기 전에는 북한과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볼튼]“we saw no purpose in negotiations until they had visibly and concretely eliminated their uranium enrichment programme."
이듬해인 2003년 볼튼 차관은 북한의 인권 유린 상황을 ‘지옥’에 비유하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독재자’ ‘폭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볼튼을 ‘인간 쓰레기’ ‘흡혈귀’라며 맞받아쳤습니다.
볼튼은 국무부 차관 재직 중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해상 차단의 기본개념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설계했습니다.
또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유엔대사로서 유엔 안보리의 첫 대북 결의인 1718호 채택을 주도했습니다.
2006년 12월 유엔대사 자리에서 물러난 볼튼은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자로서 자신의 강경한 외교안보 성향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이 무렵 신문 기고와 잦은 텔레비전 출연 등을 통해 이란, 북한, 시리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쿠바, 예멘 같은 `불량국가'의 정권교체를 주장했습니다.
이후 2018년 2월 ‘월스트리트저널’ 신문 기고문에서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북 선제타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볼튼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대북 군사 공격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볼튼]” Military action has to be before North Korea able to hit target in United States…”
평소 보수적인 ‘폭스 TV’를 즐겨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볼튼을 눈여겨 본 것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4월 볼튼을 자신의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을 두 달 가량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볼튼은 북한에 대해 ‘리비아식 핵 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리비아식 핵 폐기는 한 마디로 ‘선 핵 폐기, 후 제재 완화’를 말합니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과 생화학 무기 포기를 선언하고 핵 시설을 미국으로 반출해 전량 폐기했습니다. 이 방식을 북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담화를 통해 볼튼이 ‘사이비 우국지사’라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어 최선희 부상은 볼튼과 비슷한 대북 강경 발언을 해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부르며 가세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북한이 ‘공개적인 적대감’을 표출했다며 미-북 정상회담의 취소를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녹취: 트럼프]Based on recent stagement of North Korea I have decided to terminate the summit of June 12..”
그러자 북한이 그 다음날 ‘대화 용의’를 밝히며 갈등은 봉합됐지만 이 일을 계기로 볼튼은 북한 정권에 ‘눈엣가시’가 됐습니다.
관측통들은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2차 정상회담의 결렬을 볼튼 보좌관의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초 미-북 양측은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와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마련한 합의문 초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 초안 대신 ‘선 핵 폐기, 후 보상’에 가까운 전면적인 비핵화를 요구했습니다.
미국 측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통 크게 하라(Go Bigger)’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영변은 물론 비밀 핵 시설과 핵무기, 탄도미사일, 그리고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요구했습니다.
결국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로 끝났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핵화조치와 제제 해제의 수준을 둘러싼 이견으로 합의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Basically they wanted the sanctions lifted in their entirely, and we could't do that. They were willing to denuke a large portion of the areas that we wanted, but we couldn't give up all the sanctions for that."
워싱턴에 돌아온 볼튼 보좌관은 잇따른 언론 인터뷰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4월 하순 들어 트럼프 행정부에서 볼튼 보좌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나왔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대북 제재를 어긴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제재 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백악관의 한 참모가 제재에 반대하자 볼튼 보좌관은 ‘내가 대통령을 더 잘 안다’며 이를 밀어부쳤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22일 인터넷 트위터를 통해 재무부의 추가 대북 제재 철회를 지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튼 보좌관은 북한뿐 아니라 이란 문제를 둘러싸고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5월 이란에서 긴장이 고조되자 볼튼 보좌관은 항공모함과 함께 미군 5천-1만 명을 파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1천 명 수준의 파병에 그쳤습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튼 보좌관의 관계가 삐걱이고 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보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5월28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사석에서 ‘만약 볼튼에게 맡겼으면 우리는 지금 4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미-북 정상 회동은 볼튼 보좌관이 북한 문제에서 배제됐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두 정상은 이날 53분에 걸쳐 미-북 실무 협상, 미사일, 미-한 군사훈련 문제 등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 미국 측에서는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북한 측에서는 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했지만 볼튼 보좌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볼튼 보좌관은 판문점 회동에 배석하지 못하고 몽골을 방문했습니다.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미 해군연구소 국장은 볼튼 보좌관이 판문점 정상회담에 빠지고 몽골을 방문한 것이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는다며, 워싱턴에 볼튼이 힘을 잃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Lot of rumors going around Bolton has been marginalized also, it is no coincident that he was sent to Mongolia”
볼튼 보좌관은 북한 수뇌부가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8월14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포괄적인 합의 즉, 빅 딜을 원하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볼튼 보좌관] “So what we're looking for, what President Trump called the big deal, when he met with Kim Jong on in Hanoi, is to make that strategic decision to give up nuclear weapons,”
그러나 볼튼 보좌관의 시간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볼튼 보좌관 경질을 전격 발표하면서, “나는 그의 많은 제안들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달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튿날인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볼튼 보좌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다루면서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것은 큰 실수이며, 현명치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트럼프]”Model for dealing woth North Korean leader Kim Jung un…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으로 17개월 간 근무해온 볼튼은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볼튼 보좌관의 경질이 미-북 비핵화 협상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