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미국 유사시 한국 역할론’…워싱턴서도 논의 활발

지난 2017년 9월 북한의 화성-12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출격한 미군 B-1B 전략폭격기와 F-35B 스텔스 전투기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작전에서 동맹인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연합위기관리 범위를 ‘미국의 유사시’까지 넓히는 문제가 미-한 군 당국 협의에서 다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워싱턴의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군의 지원 범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데요.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미-한 군 당국 간 최근 논의에서 동맹의 대응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에서 ‘미국의 유사시’로 넓히자는 미국 측 의견이 제시됐다는 보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구속된 한국 군의 지원 범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이미 미-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이후 워싱턴에서도 꾸준히 이뤄져왔습니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3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연합위기관리의 범위를 넓히는 문제는 사전에 “모든 상황에 구속력을 갖는 해답”을 정해놓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As a rule, it's better not to decide in advance a binding answer that must apply for all cases. After all, that's the sort of difficulty we had with the so called strategic flexibility concept.”

위기 상황 속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많아 한국의 참여 여부는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한 뒤에야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소위 ‘전략적 융통성’입니다.

오핸론 연구원은 북한의 ICBM 공격 조짐을 포착한 미국이 B-2 전략폭격기로 북한을 타격하는 시나리오를 예로 들었습니다. 만약 미국이 본토 안전을 앞세워 한국과 상의없이, 혹은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런 작전을 강행해 북한이 괌에 보복 공격을 가한다면 동맹으로서 한국의 참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해 한국 정부의 역할을 배제하고 북한 ICBM 발사대를 파괴하는 것이 주권적 결정이듯이 한국이 미-한 연합 대응에 동참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주권의 영역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I think South Korea would have to make that decision on its own with the full sovereign rights that any country would have. After all the United States would have just made a sovereign decision to protect its own security by destroying the ICBM on the launch pad without agreeing to any role for the Blue House.”

오핸론 연구원은 미-한 동맹이 워낙 굳건하고 양국 군이 매우 긴밀히 연계돼 있어 어떤 군사적 사태에서도 서로 협력할 것이지만, 위기 상황의 세부적 측면을 알기 전에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미리 주장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북한과 제한적 군사 충돌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당연시해선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Nor do I think that South Korea should assume that any kind of a limited engagement with North Korea that it might undertake would immediately guarantee American support”

북한의 한국 공격으로 인한 전면전은 결국 많은 미국인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미국과 한국의 분리된 대응을 상상하긴 어렵지만 실제 상황 속 무수한 변수를 알기 전에는 이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미-한 연합대응 범위의 확대 여부는 실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린 문제로 이분법적인 규칙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 “It really depends on the situation so I do not think there is a black and white rule. We have to look at the Korean Peninsula from a northeast Asia regional perspective. Any conflict on the Peninsula will affect the world order.”

또한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어떤 충돌도 세계 질서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보다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군사 전문가들은 동맹으로서 한국군의 역할 범위가 넓어져야 할 때가 됐다는데 보다 무게를 뒀습니다. 특히 70년 가까이 지속돼온 동맹이 한국의 달라진 국력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이를 “동맹의 자연스러운 성숙”으로 표현하면서, 동맹은 북한의 위협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It should be the natural maturation of the Alliance. The Alliance is relevant beyond just the North Korean threat. You know the mutual defense treaty says that both countries will defend each other against threats in the Pacific area. That is, you know, technically, means it's not confined to the Korean peninsula.”

‘동맹의 성숙’을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국외 분쟁에도 한국군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직접 연결 짓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한미연합사의 대응 범위를 한반도를 넘는 개념으로 읽는 견해입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의미와, 역내와 전 세계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것이 동맹의 진화 방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맥스웰 FDD 선임연구원] “I think it's important to recognize what their mutual defense treaty says, and the situation in the region and the world. And this is how two allies should be evolving their alliance.”

그러면서 이런 방향이 한국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두 나라의 전략적 이해에 비추어 미-한 동맹을 냉정히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한국이 아프가니스탄 등 한반도를 벗어난 지역에서 미국을 지원해야할 조약상의 의무를 지지는 않지만 그동안 한국민과 한국군은 역내를 벗어나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 활동을 지원해왔으며 베트남전이 대표적인 예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두 나라의 군사 지원 의무는 상호방위조약의 틀 안에 매여 있지만, 앞서 역외에서 이뤄진 협력이야말로 동맹을 각인하는 특징이 되기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While we are required by treaty to help one another within the confines of the definition of the current Security Treaty, I hope that the cooperation that we've seen over the years outside the area will remain a hallmark of the Alliance.”

이어 어느 한 쪽 동맹의 핵심적 국가 이익에 위협을 가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동맹의 다른 일원이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계속 보기를 희망한다며, 위기 대응에서 각각의 역할을 보다 광범위하게 규정했습니다.

미 군사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가 아닌 북한이 미국의 민간 혹은 군 자산을 공격하는 경우 한국의 자동 개입은 논쟁의 여지없이 자명하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대가 북한일 때는 한국이 먼저 공격받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인 참전 의무를 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 주립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을 어디서 어떤 형태로 공격하든 ‘한국전’이 아니라고 할 시나리오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 주립대 교수] “If North Korea attacks the United States with ballistic missiles, for example, like the Hwasong-14 or Hwasong-15, and one or more of them have nuclear warheads, let's say, they hit Anchorage, Alaska and kill 200,000 people. Why would that not mean a complete war with South Korea as well as the United States how in the world would it not mean that?”

가령 북한이 화성 14호나 15호 미사일로 알래스카를 공격해 수많은 미국민이 사망할 경우 이는 곧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의 전면전이기도 하다는 지적입니다.

벡톨 교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마찬가지로 동맹의 한 축에 대한 공격은 다른 한 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 경우 한미연합사령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 주립대 교수] “Because the mutual defense tree reads an attack on one as an attack on both just like NATO. So why would CFC not be the same way?”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은 북한이 미국 영토를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앞서 중동 지역에서 그렇게 했듯이 미국을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동맹으로서 정상적인 행동이라는 겁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 I think we should stipulate that a scenario of initiation of a DPRK attack on US territory is highly unlikely. In such a case, however, I would think it logical that ROK lends assistance, just as they have done in other conflicts the US has been involved in, such as in the Middle East. This is normal for allies.”

해군 소장 출신인 미 해군분석센터의 마이크 맥데빗 선임연구원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개입 범위를 일본에 대한 북한의 공격 상황까지 확대하면서, 북한이 일본과 주일미군 기지, 미국 영토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할 때 한미연합사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 맥데빗 미 해군분석센터 선임연구원] “It is hard to image CFC sitting on its hands doing nothing while North Korea launched missiles against Japan, US bases in Japan, or US territory.”

한미상호방위조약 2조는 두 나라의 무력 억지 범위를 ‘태평양 지역에서의 모든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한국에서 캘리포니아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협”으로 넓게 해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브루스 베넷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 “Well, the Pacific area by that I think that includes everything from Korea to California.”

전직 미군 당국자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따라서 북한이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때 미-한 연합군이 한반도를 넘어 역량을 제공하지 않는 상황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실제 그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미-한 동맹의 종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벨 전 사령관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가정임을 전제로, 북한이 괌이나 하와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지원에 나서지 않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며, 그럴 경우 이는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 지속 여부를 재고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I would be stunned and shocked, if that were to happen. And of course, that would be grounds for the United States to reconsider the viability of the Alliance.”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군사 작전 동참을 강요할 수 없다고 밝힌 오핸론 연구원도 백악관과 청와대가 엇갈린 결정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어느 한쪽의 결정을 다른 한 쪽이 완전히 지지하지 않을 경우 두 동맹국은 상대방의 반응에 더 이상 매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If one of them makes a decision or takes an action that the other does not fully support then they may wind up you know diverging a bit and they should not necessarily be completely locked into each other's response.”

베넷 연구원은 더 나아가 한국이 북한 위협에 대한 미국과의 공동 대응을 거부할 경우 미국은 이를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조약을 무효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베넷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 if South Korea said this is inappropriate we don't really have a role here, I think the United States might say the same thing with regard to South Korean security. I mean if South Korea violates the agreement, the United States could well choose to withdraw.”

한편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북한의 미 본토 타격이 현실화될 경우 보복 대응은 한국의 개입 없이 미국 주도로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녹취: 로렌스 코브 전 국방부 차관보] “The United States would respond with nuclear weapons so I don't think it's a question of, you know, what South Korea can do.”

로렌스 코브 전 국방부 차관보는 북한이 미 서부를 공격할 경우 미국은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며, 한국이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브 전 차관보는 한국에 대한 재래식 무기 공격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에는 물론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겠지만, 미국이 본토 피해에 대한 핵 보복 작전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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