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북한 핵 물질 핵심은 고농축 우라늄…영변 플루토늄은 압박용"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

​북한 핵 물질의 핵심은 고농축 우라늄이며 북한이 최근 영변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를 가동한 것은 대미 압박 성격이라고,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밝혔습니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핵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에 핵 물질 생산과 핵무기 제조 중단을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소재 스팀슨센터의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을 박형주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IAE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영변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왜 이 시점에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한 걸까요?

하이노넨) “북한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를 가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며 핵 비축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을 지렛대 삼아 다른 관련국들에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일부 양보할 것을 촉구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자로 가동과 재처리 작업으로는 전략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원자로에서의 플루토늄 생산량은 기껏해야 연간 7~8kg으로 핵무기 1~2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양이기 때문이죠. 북한의 핵 분열 물질 생산의 핵심은 여전히 우라늄 농축입니다.”

기자) 원자로 재가동이 북한 핵 프로그램 측면에서 기술적으로 시사하는 점은 없습니까?

하이노넨) “관련국에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것입니다. 또 북한이 관련 역량을 유지하며 실험용 경수로 완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주고요. 실험용 경수로가 가동되고 재처리 공장도 여기에 맞춰 개량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 수준은 한 단계 상향될 수 있습니다.”

기자) IAEA는 영변 5MW 원자로 재가동 징후로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꼽았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8년 영변 불능화 작업의 일환으로 냉각탑을 폭파했는데요, 냉각탑 없이도 냉각 작업이 가능합니까?

하이노넨) “네 가능합니다. 핵 시설 인근 강이나 바다, 호수 등에서 물을 끌어와 냉각수로 활용하는 원자로가 많습니다. 영변은 인근 구룡강을 활용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설계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의 알 키바르 원자로가 그런 경우입니다. 2007년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았던 이 원자로는 냉각작업을 위해 유프라테스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다만 물을 끌어오는 데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북한은 영변에서 냉각탑을 이용했지만, 폭파한 이후에는 주변 용수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기자) 이번에도 재처리 작업이 이뤄지는 방사화학연구소의 활동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IAEA는 이 시설의 활동기간을 계속해서 ‘5개월’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하이노넨) “5개월 주기는 재처리 공장의 설계 용량과 관련 있습니다. 5MW 원자로에서 나온 전체 50t 분량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대략 5개월이 걸립니다. 이는 영변의 재처리 공장이 건설 중인 실험용 경수로에서 나온 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추가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재처리 공장의 개량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개량 작업은 위성사진을 통해 일부 관측이 가능합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이 지난 2007년 6월 UN 핵 사찰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기자) IAEA가 포착한 원자로 가동 등은 모든 핵 프로그램 개발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데요, IAEA가 어떤 후속 조치를 할 수 있습니까?

하이노넨) “IAEA는 영변 원자로가 가동 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포착한 건데, 이건 IAEA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한 대로 이것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위반한 것입니다. IAEA는 9월 총회에서 북한의 핵 활동을 규탄할 수 있지만 후속 조치는 안보리의 몫입니다. 실제 행동에 나설지는 안보리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기자) IAEA는 2009년 북한에서 추방돼 현재는 인공위성 등 공개 자료를 통해서만 핵 활동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IAEA가 포착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하이노넨) “물론 IAEA가 북한의 (핵) 농축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것은 관련 시설과 현장에 대한 직접 접근 없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성 이미지 등 다른 정보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설 가동과 같은 활동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처리되는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80년대 원자로 설계 방식 등에 대한 정보는 IAEA가 이 원자로의 최대 생산 역량을 추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렇게 해서 5MW 원자로가 가동될 경우 연간 최대 7~8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우라늄은 좀 더 파악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의 경우 스탠포드대학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2010년 해당 시설을 방문해 우라늄 농축 케스케이드 등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이 시설의 우라늄 농축 역량을 대략 추정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 핵무기 원료의 핵심은 여전히 농축 우라늄이라고 하셨는데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 역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하이노넨) “먼저 북한은 2009년 건설한 영변의 우라늄 농축공장(EUP)에서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곳이 북한의 핵 분열 물질 생산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보이는데요, 북한이 여기서 농축 활동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실험용 경수로(ELWR)에 일부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2020년 말까지 약 540kg의 우라늄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물론 평양 인근의 강선 등 영변 이외에 1개 이상의 추가 농축 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시설이 영변의 우라늄 농축공장의 역량을 그대로 복제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영변에서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일부는 원자로 연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외부 시설로 보내 무기급으로 농축하는 것이 더욱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가용한 정보를 토대로 영변 우라늄 농축공장과 다른 농축공장 추정 시설에서 생산되는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은 연간 약 150~160kg로 추정합니다. 농축 우라늄 150~160kg은 통상 6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기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에 제기된 북한의 핵 활동과 관련해 “보고된 활동과 비핵화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룰 수 있도록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협상이 시작된다면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북한에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이노넨)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유엔 안보리의 관련 결의에 따른 의무사항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생산, 그리고 핵무기 제조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동결 방법, 핵무기 폐기를 위한 이정표 등에 합의하는 겁니다. 가장 이상적인 첫 단계는 핵 분열 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동시에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모든 시설을 신고하는 것이죠. 하지만 즉각적인 중단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진행하기 위한 일정에 합의하고 예비신고를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웃트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과 함께 북한 핵 활동과 관련한 IAEA의 최근 보고서 내용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인터뷰에 박형주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