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국 내 한인 미술작가들이 한반도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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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김영은 작가 ‘총과 꽃’ 영상 오디오]
얼핏 들으면 고음의 피아노 소리나 새 소리 같기도 한 이 고음역의 음향은 한국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에 사용하는 ‘자유의 소리 방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본래 국방부가 송출하는 방송과는 전혀 다릅니다.
[녹취: 한국 국방부 대북방송 ‘자유의 소리 방송’녹취]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보내드리는 자유의 소리 방송입니다.”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또렷하고 낭랑한 여자 아나운서의 안내를 시작으로 대중가요와 경제, 스포츠, 정치 뉴스가 들려야 하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한인 미술작가가 작품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김영은 작가 ‘총과 꽃’ 영상 오디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소리와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한 작품을 선보이는 김영은 작가의 ‘총과 꽃: 조각된 두 사랑 노래(Gun and flower : Sculpted two love songs)’
제법 큰 네 개의 하얀색 확성기를 수직으로 설치한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의 소리 방송’에 흘렀던 같은 노래가 작가에 의해 전혀 다른 소리로 재 탄생했습니다.
김 작가는 VOA에 한국 정부의 대북방송을 작품의 매체로 삼은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녹취: 김영은 작가] ”보시는 분들이 직접적인 정치적 메세지라고 보실 수도 있는데 저는 스피커라는 장비 때문이 아닌가 싶고, 사실 작업 자체는 어떤 정치적 메세지를 그대로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서 스피커 벽을 쌓고 송출했던 확성기 방송의 작동 방식과 그 기저에 흐르는 기이한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확성기 방송의 작동 방식과 기저에 흐르는 기이한 감각”에 대해 김 작가는 형상화한 소리가 촉각으로 경험된다고 설명합니다.
형상화 작업을 거쳐 소리를 자르고 다시 편집했을 때 고음역의 소리가 나오는데 이 소리는 간지러움과 따가움 등 피부로 느껴지는 듯 하다는 겁니다.
김 작가는 대북방송 확성기의 소리, 즉 불안과 위협의 도구로 사용되는 소리를 재해석하는 작업 자체와 결과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녹취: 김영은 작가] “해석은 감상하시는 분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건 그냥 그 대상을 좀 다른 방식으로 상기시키는 것, 그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방송에 대한 내용이 될 수도 있고 그 도구 자체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대북 확성기 방송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그런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 미술관에서 전시 활동을 벌여온 김 작가는 지난 2015년부터 사회, 정치 문제와 소리를 연결하기 시작했고 뉴스와 논문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해 이를 소리, 영상, 설치 미술 방식으로 작품화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총과 꽃’은 분단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한 김 작가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은 정치적으로만 해석되는 사건들에 감각적 인식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작가의 작품은 8월 21일부터 10월 6일까지 미 서부 캘리포니아 헐리우드의 헬렌 제이 갤러리의 ‘공포의 선율을 흥얼거리며’ 전시회에 설치됐습니다.
헬렌 제이 갤러리는 아시아 미술과 디자인 전시를 중점으로 아시아 문화와 디아스포라를 수용할 목적으로 지난해 개관했습니다.
헬렌 제이 갤러리는 ‘공포의 선율을 흥얼거리며’의 배경과 취지에 대해 “한반도와 전쟁, 그리고 삶 속의 공포를 주제로 한국전쟁과 현대사회를 비평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며, “군사적 긴장과 전쟁에 대한 집단적 무의식적 공포는 한국의 대중매체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게시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특별히 한인 청년작가와 큐레이터의 공동 작업이란 점에서 미 주류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 작가들을 통해 한반도 이슈가 투영됐다는 겁니다.
전시회를 기획 진행한 이정헌 큐레이터입니다.
[녹취: 이정헌 큐레이터] “저희 세대는 아무래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는 경험했지만,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 청년들에 의해
이런 주제의 전시는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젊은 작가들이 이런 작업을 할 줄은 몰랐다고 놀란 분들이 많더라고요.”
6개월 준비 기간을 거친 이번 전시에는 김영은, 임재환, 송수민 3명의 한국인 작가와 미국인 카일 타타 작가 등 네 작가의 작품 15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정헌 큐레이터에 따르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송수민 작가는 일상에서 보는 다양한 사진을 수집, 보관 후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릿해진 형상을 재해석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하얀 자국’과 ‘물불물불’ 이란 이름의 작품에서 송 작가는 공원의 분수, 군사훈련 속 미사일 연기 등 상반되는 형상을 모았는데, 전쟁 후 한국사회에 평화와 불안이 공존하는 불편한 현실을 작품화 했습니다.
미국과 핀란드 등지에서 전시활동을 해온 행동주의 작가인 임재환 작가는 어린 시절인 2004년 방문한 ‘금강산’의 기억으로 제작한 ‘금강산’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회화와 비디오를 통해 금강산을 재현했는데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인 비닐에 수묵화를 그렸습니다. 임재환 작가는 VOA에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녹취: 임재환 작가]”아무래도 오래 전 시간이기도 하고 2008년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금강산을 방문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잖아요. 그런 현재 상황, 점점 희미해져가는 저의 기억을 반영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비닐에 작업하는 게 완전하게 보존이 잘 되는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저의 기억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 작가의 ‘금강’은 폭 270센티미터에 높이 200센티미터인 대형 작품입니다. 임 작가는 금강산은 자연의 일부라며, 자연의 웅장함을 표현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임재환 작가] “웅장함을 최대한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에 위치해 있던 그냥 산,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거든요. 한국인이 아닌, 분단 역사나 금강산 방문 역사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됀 것 같아요.”
임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은 9개의 작은 그림이 한 작품인데, 금강산의 한 장면과 북한의 만화 ‘금강산 8선녀’가 등장합니다.
행동주의 예술가인 임 작가는 탈북민의 정착과 세계 시민권 지지를 목적으로 `북한 사람들'(Humans of North Korea)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북한 인권 개선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술과 인권 활동이 모두 행동주의 미술 범주에 속한다는 임 작가는 탈북민 요리사를 등장시키는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정치 상황에 제약받지 않고 북한 주민과 북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희망합니다.
작가들은 전시회의 주제 어구, 즉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문구인 ‘공포의 선율’, ‘흥얼거림’이라는 주제인 이번 전시회를 통해 미국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녹취: 임재환 작가] “이 작품을 많이 구매하고 싶다고 표현하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아니면 이 그림에 대해서 궁금하셔서 말씀을 드려보면 북한 인권에 대해서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아닌 분들도 있거든요. 그냥 이곳이 어디에 있든 상관 없이 그냥 자연으로 봐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이탈주민 분들을 정치화해서 등한시하거나 무시를 하거나 차별을 하는들 되게 많이 봤거든요. 그 사람들을 사람들로 보아달라고 말을 하듯이 자연도 자연으로 보아 달라..”
“달콤한 사랑 노래들이 확성기 방송이라는 음향무기를 통해 총알이 되기도 하는 상황”을 작품에 담았다는 김영은 작가입니다.
[녹취: 김영은 작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잘
람객들이 이 작업을 보고서 어떤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이런 종류의 긴장감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상기해 주셨으면..”.
VOA 뉴스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