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을 맞아 연 열병식은 군사 보다는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고, 미국의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전략무기 과시나 김정은 위원장의 엄포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관여 여지를 남겨 놨다는 분석 외에 특별한 대외 메시지는 없는 것으로 본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 73주년을 맞아 민간조직과 비정규군 중심으로 열병식을 연 것은 주로 ‘국내용’ 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9일 VOA에 “북한 정부가 현재 국내적 도전에 집중하고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소위 북한이 주장하는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으로부터의 위협’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think the most important message is that the N Korean government is focused on dealing with domestic challenges and in particular that includes the results of the pandemic, which is affecting N Korea’s economy...”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북한이 집중하는 국내 현안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이로 인한 경제난을 꼽았습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중심 역할을 한 노농적위군은 북한 인구 4분의1이 참여하는 민간 군사조직으로 노동자와 농민, 사무원 등이 속해 있습니다.
열병식에서는 각지 대형 기업소종대와 주황색 방역복을 입은 방역부대의 행진도 있었습니다.
“향후 관여 여지 남겨 놔”...“시간끌기 중”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가 등장하지 않았고, 일부 재래식 무기뿐이었습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CNA 적성국 분석국장은 미-한 군사훈련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도발을 예상했지만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미사일) 실험에 대한 대용으로도
활용하지 않았다”며 미사일과 신무기를 선보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It also sends that signal to the outside world that ‘we’re not trying to rub our strategic capabilities in your face right now, which of course is keeping the escalation factor down at a low level so that they can potentially have avenues open for engagement in the future if it presents itself.”
고스 국장은 북한이 전략무기를 과시하지 않은 것은 “도발 요인을 낮은 수준에 두는 것이고, 향후 관여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강수를 두거나 긴장을 고조시켰을 경우와 비교해 지금 같은 상황이 대화로 돌아오기가 더 좋은 위치”라고 말했습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이번 열병식을 통한 대외 메시지는 확실치 않다”며 “다만 북한 지도부가 앞서 미-한 연합훈련에 대한 보복을 공언했고 이것이 아직 안 이뤄진 데 대해 사람들은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I’m not sure there was much of a message to the outside world, though people are going to focus on the fact that the N Korean leadership promised retaliation for the joint exercises and that has not yet materialized.”
스나이더 국장은 “따라서 (보복과 관련해) 앞으로 북한의 행동을 주시해야 하겠지만, 이번 열병식은 국내에 집중된 행사”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북한은 미-한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철 당 부장의 담화를 통해 ‘안보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이번 열병식은 북한 주민을 향해 “내부로 집중한 것”이라며, 대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연구원] “I think this was an inwardly focused and was not sending an external message. Although some will interpret it as, because it didn’t demonstrate any strategic weapons, that this is somehow a sign that they are toning down their rhetoric and hostility. That is not the case.”
맥스웰 연구원은 “일각에서는 전략무기가 등장하지 않은 데 대해 북한 정권이 적대감을 낮추는 신호라고 분석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북한의 모든 행동이 외부 세계나 미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 출신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뚜렷한 대외 메시지를 내지 않은 것과 관련해 현재 시간벌기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테리 연구원] “They must be buying their time because there’s a lot going on domestically that they’re prioritizing. Foreign policy-wise they see what’s happening with Afghanistan. I thought that they were not going to really have a low-level provocation because nobody’s going to pay attention in this climate when there’s no bandwidth in the Biden administration because everybody’s focused on a real crisis.”
테리 연구원은 북한도 국내 현안이 산적하고 바이든 정부도 아프가니스탄 사태라는 ‘진정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아무 주목도 받을 수 없는 저강도 도발에도 나서지 않고 한동안 시간끌기만 할 것이라는 겁니다.
CIA 출신인 수 김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 김 연구원] “Of course. We just don’t know when and how. But as long as the Kim regime possesses and continues to place coercive value on its weapons program, we should continue to expect N Korean provocations. The timing is probably trickier now, with the ongoing pandemic and the U.S. is still dealing with the aftermath of the withdrawal from Afghanistan.”
김 연구원은 “김 씨 정권이 무기 프로그램에 가치를 두고 유지하는 한 북한의 도발을 계속 예상해야 한다”며 “다만 현재 팬데믹과 미국이 아프간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도발) 시점이 더 까다로워졌다”고 말했습니다.
“강압적 충성맹세 행사”... “정권 안정 과시 목적”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가 국내용이라며 그 목적은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정권 안정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열병식은 “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충성을 강제적이며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The N Koreans have not been deterred by Covid from continuing to conduct these parades… It’s also true that the parades may be seen as outweighing the risk associated with Covid because of the opportunity to strengthen and the expression of political loyalty at the public level.”
스나이더 국장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열병식을 중단하지 않았다”며 “열병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정치적 충성도를 표현하고 강화할 수 있다면 코로나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수 김 연구원은 이번 열병식이 잠잠한 것은 팬데믹과 경제난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 입장에서 열병식을 취소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 김 연구원] “Skipping the parade may have elicited apprehensions and made the N Korean population more insecure about their future under Kim’s leadership. This may erode Kim’s power and authority. And from an external perspective, Kim probably does not want the outside world to make assumptions about his inability to rule effectively.”
열병식을 건너뛰면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집권 하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더욱 불안해 했을 수 있고, 이는 김정은의 권력을 권위를 약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김 연구원은 “김정은은 외부 세계가 자신의 통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열병식을 강행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김정은이 체중을 감량하고 외모가 훨씬 나아보였다”며 “스스로를 더 잘 돌보고 있는 듯 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더 건강해진 것은 북한이 현재 안정적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