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사태에 "코로나로 극심한 고독 가능성"…간첩 의심도

2일 한국 경기도 파주 접경에서 군인들이 철책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새해 첫날, 남북 군사분계선을 통해 월북한 탈북 청년은 코로나 시기에 한국에 망명한 뒤 사회와 거의 단절된 채 극심한 외로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로나 상황에 맞는 정부의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 월북자가 간첩일 가능성도 있어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 당국은 3일 동부전선을 통해 월북한 남성이 2020년 11월 같은 곳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탈북 남성 A 씨라고 밝혔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알려진 A 씨는 지난해 7월 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출소한 뒤 서울 북부 노원구에 정착해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A 씨와 접촉했던 일부 탈북민 지원단체 관계자는 이 청년이 코로나 여파 속에 망명해 당국의 정상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친구도 사귀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 청년들의 한국 사회 통합 활동 등을 지원하는 단체 ‘비욘드더바운더리’(Beyond The Boundary)의 이영석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이영석 국장] “이 친구가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아요. 정말 심할 정도로.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굉장히 없었어요. 그러니까 또래 친구들도 못 만나고 대학을 갈지 취업을 할지 고민하다가 당장 먹고살 게 없으니까 일단 취업을 선택했는데,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다시 위(북한)로 갔다고 들었을 때 아 정말 죽도록 외로웠구나.”

이 국장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입국한 탈북민은 하나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지역 하나센터와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캠프에 참여해 적응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이런 활동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새로 입국한 탈북민들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는 설명입니다.

이 국장은 중국과 러시아 등 3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통해 넘어온 A 씨는 적응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석 국장] “해보고 싶은 게 많잖아요. 북한에서 TV나 영화 통해 봤던 것들이 있으니까. 술 먹고 춤추는 데도 가 보고 싶다고 그러고. 스키장이나 오픈카 타 보고 싶다고 하고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아직 20대 후반이면 혈기 왕성한 나이이니까 연애도 해 보고 싶고 다 해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하나도 못 했던 것 같아요. 하나원 동기생도 거의 없었고, 하나센터나 복지관도 코로나 때문에 거의 문을 열지 못했고 이 친구가 하나센터도 거의 안 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주변에 아무도 없지 않았을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북한 지도부의 국경 봉쇄,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이동 제한과 국경 경비 강화로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 수는 급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해 3분기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48명, 이 가운데 남성은 29명으로 대폭 줄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나원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VOA에, 월북자 A 씨가 하나원에 있던 지난해 4월~7월에 탈북 남성이 머무는 강원도 화천의 제2하나원은 “탈북민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며 직전 기수들의 경우 1~2명에 그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4년 아버지와 함께 서해상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뒤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한설송 씨는 3일 VOA에, 자신은 아버지와 함께 왔는데도 낯선 세상에서 굉장히 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 한국 대학생들조차 온라인 수업이 익숙하지 않아 많이 힘들어했다며,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월북자 A 씨는 장벽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설송 씨] “코로나라는 게 없을 때도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저는 특히 아버지와 같이 와서도 힘들었는데 그 친구는 아예 혈혈단신으로 넘어와서 누구도 못 만나고 있다 보니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 씨는 “자유가 없는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외로움과 고독이 지독한 인권 침해보다 더 무서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국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용선 의원은 앞서 통일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내 탈북민 30명이 월북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체 한국 입국 탈북민 3만 3천 800여 명의 0.1%가 안 되는 수준이지만, 많은 한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3일 탈북민 관리의 허점과 정착 지원에 문제가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부산하나센터장을 지낸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A 씨의 월북 정황에 의구심이 많이 든다며, 일반 탈북민 상황과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 교수는 3일 VOA에 A씨의 월북은 “과거 비무장지대를 능란하게 오가던 북한 남성을 그린 영화 ‘풍산개’를 떠오르게 한다”며, 이 사안은 “탈북민 정착 문제보다 간첩 등 안보의 허점 차원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최전방 지역에 가서 이중 철책을 넘고 DMZ를 통과한다는 것은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들잖아요. 북한에서 특수 훈련을 받지 않고서 일반인이 그렇게 했다? 너무 길을 잘 알잖아요. 이런 얘기하면 색깔론으로 몰 수 있지만, 사회 생활한 지 6개월 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휴전선으로 해서 자기가 온 길로 돌아갔다… 그것은 여기에서 살아가는 많은 탈북민들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코로나 방역 수칙상 불법 침입자는 사살해야 하지만, 북한군 3명이 A를 접촉해 데려갔다는 한국군 당국의 설명을 보면 납득하기 힘든 점이 많다는 설명입니다.

강 교수는 적지 않은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나와 정착하면서 외로움과 혼란 등 어려움을 겪지만 6개월 만에 좌절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월북 사태는 탈북민 정착 문제와는 별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당국은 그러나 간첩 가능성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민과 북한 사회를 오랫동안 연구한 한국 이화여자대학교의 김석향 교수는 월북자가 간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월북 원인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수의 예외자가 있으며, 월북 원인을 경제적 어려움, 고독, 우울증 등 몇 가지 틀 안에 넣어 일방적으로 찾는 해법, 탈북민을 “잘 관리해야 한다” 표현 자체 역시 통제로 느껴져 탈북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양쪽 끝의 2.5%씩을 자른 나머지 95% 정도의 사람들(탈북민)은 약간의 불만과 약간의 행복과 약간의 성취감을 갖고 우리가 일상을 살듯 그렇게 살아요. 1년 전보다 조금 낫게 가진 것을 조금씩 쌓아가면서 사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주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이 북한으로 갔다거나 이런 게 뉴스에 뜨면 갑자기 주위 탈북민들을 돌아보며 ‘야 너희 나라로 가’, ‘너 같은 사람들이 문제야’ 뭐 이런 얘기를 한다든가 이것이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이번 월북 사태와 별개로 한국 통일부와 하나센터, 경찰이 실무팀을 구성해 민간단체들과 코로나 상황에 맞는 실질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탈북민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영석 국장은 특히 모임 인원을 제한하는 정부의 방역 수칙 때문에 개별적으로 탈북 청년들을 만나느라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정부 당국도 현장 위주의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영석 국장] "알바도 거의 다 잘려 알바 자리가 없어 힘들어하고, 단체로 멘붕이 오고, 또 북한 정권이 통제를 강화해서 가족에게 돈 보내는 것도 못 보내니까 집단 불안 증세도 보이고 이런 상황에서 획일적으로 방역시스템에 따라 안 한다가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탈북민들의) 불안 지수가 높아질 것 같으면 좀 더 자율적으로 또는 현장에 맞게 실무자들이 밖으로 뛰어다니면 되는데 하나센터도 문 닫아라, 상담사도 ‘줌’으로 예약하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어서 좀 뛰어다녔으면 좋겠어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