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응한 조치를 구체화하는 가운데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의 참여 수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인도주의 지원,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제한 등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 속에 적극적으로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통령의 날’로 미국의 공휴일인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 사태를 논의했습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자 지배 지역에 대한 독립을 선포하자 이 지역에 대한 제재를 예고하고 추가 조치도 경고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러시아 대응을 위해 유럽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동맹과의 협력도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의 참여 수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주러시아 대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 등을 역임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21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지금이 한국에겐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미국 동맹국들과 연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을 규탄하고 외교적 해결을 촉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버시바우 전 대사] “A lot of the things that the Russians are doing are threats to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Use of cyberattacks use of disinformation. Just challenging principles of sovereignty, and territorial integrity, which are fundamental to the international system”
러시아가 국제사회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사이버 활동과 정보전을 벌이며 국제 체계의 근간인 주권과 영토 보전의 원칙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함께해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한국이 인도주의 지원에 공헌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나아가 유럽 지역 국가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지원도 검토 가능한 분야로 제시했습니다.
서방국가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해 유럽 천연가스 수급에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제질서와 법치주의에 대한 위협이 심각한 지금 한국과 같은 나라는 경제적인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편에 설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버시바우 전 대사] “The moment comes when the threat to the international order, when the threats to the rule of law are so serious that a country like South Korea has to be clear on which side it stands, even if it may means some economic costs…”
유럽 국가들은 현재 가스 수요량의 40%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LNG 물량을 융통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유럽연합(EU) 측도 “우방들로부터 LNG 물량을 확보해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 등을 특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유럽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단순 지원을 넘어 강력한 대러시아 제재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프레드 플레이츠 미국안보센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위해 다른 나라와 협력하길 원한다며 “한국이 이것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플레이츠 전 비서실상] “I'm sure South Korea will support this…There’s going to be trade sanctions. There's gonna be sanctions against Russian officials. There'll be banking sanctions. The maybe sanctions barring Russian officials for traveling.”
미국이 가할 수 있는 제재로는 무역제재, 여행제한 등 러시아 관리에 대한 제재, 금융 제재 등을 거론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가 러시아 대사를 소환해 러시아의 행위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플레이츠 전 비서실장은 그러면서, 특히 분단국가 한국은 역내의 다른 나라들이 이번 사태를 무력으로 국경 변경을 시도하는 선례로 활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재 동참에 부담을 느끼는 한국 등 아시아 동맹들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워싱턴 민간연구소인 미국 진보센터의 토비아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현재 정치 상황 등을 이유로 한국의 적극적인 제재 동참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해리스 선임연구원] “I don't think the expectations are necessarily that South Korea to join sanctions in a serious way…governments both progressive and conservative really look to Russia, as a potential partner in terms of resolving issues with North Korea, viewing Russia as an economic partner…”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러시아를 잠재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이 지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만큼 러시아를 유라시아 경제구상의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설명입니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신북방정책을 추진하며 러시아를 주요 파트너로 인식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특히 대통령 선거와 정부 이양을 앞둔 시기에 과거의 이런 흐름과 어긋나는 ‘대담한 조치’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일본 등과는 러시아 침공 이후 난민 문제, 분쟁 이후 우크라이나 재건 등의 인도주의 분야에서 금융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일본이 우크라이나의 경제와 민주주의 회복 등을 위해 19억 6천만 달러를 지원한 선례가 있다고 해리스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 모두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의 일환으로 러시아 극동지역 공동 개발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면서, 기존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신규투자 발표를 유예하거나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여를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글로벌 아그니츠키법’ 제정과 같이 한국 등이 러시아의 인권 유린이나 부정부패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도 한국 등과의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가능한 범위에서 공식화하고, 특히 반도체를 비롯해 핵심 기술 부품에 대한 수입 제한을 러시아 제재에 적용하기로 결정한다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일본, 타이완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리스 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