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북한 인권을 다룰 국제특별법정 설치 문제에 유엔 안보리 거부권이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필레이 전 최고대표는 VOA 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목소리 없는 북한 희생자들을 위해 계속 북한 인권 문제를 폭로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북한의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고등법원의 첫 여성 유색인종 검사 출신으로 국제형사재판소 (ICC) 재판관과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필레이 전 최고대표는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국제변호사협회(IBA)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북한 인권 공청회 의장을 맡았습니다. 필레이 전 최고대표를 조은정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를 다루는 국제 모의재판에 의장으로 참여하십니다. 2016년에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모의재판에도 참여하셨는데요. 당시와 어떤 점이 다릅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지난번 재판에서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여부, 수감 이유와 환경 등을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주최측인 국제변호사협회(IBA)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COI) 보고서 내용의 후속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COI 보고서는 북한 구금 시설에서의 인권유린 혐의들을 파악했는데, 매우 폭넓은 주제입니다. 전직 국제형사재판소 판사들이 참석하는 이유는 어떤 구체적인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지 증거들을 듣고 검토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자) 이런 모의 재판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필레이 전 최고대표) 전 세계의 정부와 국가들이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유고슬리비아와 르완다의 경우 유엔 안보리가 독립적인 재판소를 마련했죠. 그러한 유엔의 공식적인 합의체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지금까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의 조사가 있었고,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조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행동이 결여된 상황에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시민 재판소’(people’s tribunal)를 촉구한 것이죠. 비공식적인 재판입니다. 하지만 네 명의 전직 국제형사재판소 판사들이 참석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기자) 필레이 전 최고대표님께서 2013년 1월 특별성명을 통해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촉구한 것을 계기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설립됐습니다. COI 보고서 발표 이후 8년이 지났는데, 북한 인권이 개선됐다고 보십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유감스럽게도 COI 보고서가 권고하는 내용들은 거의 이행되지 않았고 무시됐습니다. 이러한 인권 침해 사례들이 기록되면 무엇보다 북한이 첫 번째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북한은 자국민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지만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상황을 부각하기 위해 압박을 높여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COI 조사 이후 북한 인권 유린이 중단된 것이 아니고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목소리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이 문제에 집중하고 폭로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기자) 유엔 시리아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 발표 이후 독일 등에서는 ‘보편적 사법권’의 원칙에 따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전직 관리들이 기소됐습니다. 북한 사례와 어떻게 다르다고 보십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시리아의 경우 유엔 시리아인권 조사위원회(COI)가 인권 침해 행위들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후속 행동이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에도 같은 진전이 있길 시민사회가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사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이 아닌) 북한에 대해 재판소가 설립되든 일부 국가들이 ‘보편적 사법권’을 행사하든 아니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검사가 조사를 개시하든 말이죠. 로마규정에 따르면 ICC 검사는 조사를 개시할 권한이 있습니다(Proprio Motu). 이 모든 방안들을 탐색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현장 증거 수집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준사법적 조사’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고요.
기자) 전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의 경우와 같이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인도범죄에 대해서도 국제특별법정이 설립될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보시나요?
필레이 전 최고대표) 안보리에 이미 충분한 내용이 제시됐습니다. 마이클 커비 전 COI 위원장도 안보리에서 브리핑을 하고 모든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전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형사재판소들이 설립되기 전에 위원회들과 조사단들이 보고서들을 발표한 것과 일치합니다. 지금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서 특별법정들이 설치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국가들은 이러한 인권 유린과 범죄 행위들과 관련해서는 거부권이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거부권을 만든 목적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 관련 거부권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저도 지지합니다.
기자) 필레이 전 최고대표께서는 지난 2016년 북한의 반인도범죄 책임자들을 겨냥해 맞춤형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미국은 김정은, 김여정 등 최고 지도부에 유럽연합은 국가보위상과 사회안전상 등을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했는데요. 이러한 조치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전 유엔인권 최고대표로서 제재는 특정한 인물들을 겨냥해야 하고 일반 주민들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제재가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그들이 혜택이나 원조를 받을 대안적 경로를 찾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제재는 갈수록 계속해서 강력해져야 합니다. 만일 제재가 효과가 없고 시민사회에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면 특정 인물들에 다시 경고를 주기 위해 제재를 점검해야 합니다.
기자) 필레이 전 최고대표께서는 COI 설치를 도모하는 등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습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유엔 인권최고대표로서 나의 임무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에서 지속되는 끔찍한 상황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서 북한 주민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 사람들을 제네바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들었고, 수많은 인권 협약과 조약이 있는 이 시대에 내가 후속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가장 충격 받은 점은 수감자들이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수감자들이 여전히 인간으로 대우받고, 식량과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갇혀 있으며 굶주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수준의 기아, 소위 ‘하층민’에 대한 차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전쟁 중인 르완다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기자) 한국은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에 2019년부터 3년 연속 불참했습니다. 이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는데요. 어떤 제안을 하겠습니까?
필레이 전 최고대표) 북한의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한국이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은 헌법재판소도 있고 매우 높은 인권 기준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 사태를 한국 내에서는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장소든 자국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한국 정부가 나의 임기 중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설치에 동의한 것을 환영합니다. 그것은 한국 정부의 올바른 행동이었습니다. 이제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북한과 평화 협상을 할 때 인권 문제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고 무역 관계를 유지하는 미봉책의 평화는 안 됩니다. 수백만 명의 인권이 달려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고통은 한국에도 반영됩니다. 국경을 넘어 친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부디 더 인정있게 행동하고 스스로의 높은 기준을 북한에도 적용하길 바랍니다. 국제사회가 한국에 거는 기대는 높습니다.
지금까지 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로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한 반인도범죄 공청회와 북한 당국에 인권 유린 책임을 물리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 내일은 볼프강 숌버그 전 유고,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판사와의 인터뷰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