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자 미 장관 중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 외교, 안보 정책의 핵심 역할을 맡은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3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가족들이 밝혔습니다.
체코 출신 유대계인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민주당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밑에서 일했고,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엔 외교 안보 분야의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클린턴 정부 1기 시절인 1993년에서 1997년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고, 2기 시절인 1997년에서 2001년까지 제 64대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국의 첫 여성 국무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직설적인 화법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미국의 유럽 중시 정책을 펼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과 동맹 강화에 주력했습니다. 또 발칸 반도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핵무기 확산 억제를 추구하며 전 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북한 비핵화와 미북 관계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7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백남순 당시 북한 외무상과 회동해 미북 고위급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2000년 10월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함께 조 차수를 회담하고 ‘미북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했습니다.
미북 공동코뮤니케는 한반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서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내용과 함께 미 국무장관 방북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 양측이 서로 상대에 대해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합의했으며, 북한은 미사일 협상이 계속 되는 동안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 직후인 10월 23일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당시 미국 각료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두 차례 만나 미-북 정상회담 문제와 함께 핵과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미국에 돌아온 뒤 미국 국내적으로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방북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한편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18년 저서 ‘파시즘’에서 “북한의 존재는 권력이 너무나 소수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집중됐을 때 발생하는 비극의 추가적인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김일성을 북한에서 ‘신과 다름없는 존재’로 규정하면서 “신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북한의 파시즘은 가족 사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2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미한 연합군사훈련 전면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의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북 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는 “준비된 외교를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