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가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최근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북한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국제적 흐름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29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와 관련해 특징적인 일 중 하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 정상의 참석이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미-한-일 3자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먼저 발언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한-일 3각 협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등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This is an opportunity to further coordinate our trilateral efforts specifically with regard to the DPRK.”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제정세의 불안정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은 국제질서가 31년만에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우선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2010년에 만들어진 ‘전략개념’을 12년만에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그동안 나토는 러시아를 ‘잠재적 전략적 파트너’(potential strategic partner)로 규정해 왔는데 이를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most significant and direct threat)으로 바꿨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봉쇄 조치도 나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에 미 육군 5군단 사령부를 영구 배치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루마니아에는 추가적으로 3천명 규모의 미군 순환배치 여단과 2천명 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발트 3국 즉,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대한 미군 순환 배치도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영국에는 미군 F-35 스텔스기 2개 대대를 추가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 중립국들도 나토 가입을 공식화 하고 있습니다.
나토는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 “베이징의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이 서방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이 되고 있다”며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s)으로 규정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호주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이번 정상회의에 참여시킨 것도 중국 견제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국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유명환 전 장관은 국제정세가 새로운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명환 전 장관] ”옛날에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었는데 지금은 민주주의와 독재이고,푸틴과 시진핑이라는 전체주의 성향의 지도자로 인해 우리가 그런 상황을 원한 게 아니라도 끌려간 거죠.”
당연히 중국은 이같은 구도에 반발합니다. 중국 외교부는 30일 나토의 새로운 전략개념에 대해 “엄중하게 우려하며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로써 1991년 소련 붕괴로 시작된 다극체제와 평화시대는 31년만에 막을 내리고 러시아-중국 진영과 미국-나토 진영이 갈등하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된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사는 이렇게 국제정세가 바뀜에 따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될지 여부입니다.
전문가들은 미-중 패권경쟁이 고조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가 벌써 냉전 구도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과 일본을 순방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켰습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도 개최했습니다.
또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지지하고 미국-한국-일본 관계를 강화시켰습니다.
동북아에서 중국-북한-러시아 대 미국-한국-일본 대결 구도가 강화되면서 북한 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11월 북한이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미국과 중국,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 2397호를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북한이 수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은 5월 26일 유엔 안보리에서 이를 규탄하는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이 결의안은 부결됐습니다.
동북아 질서가 중국-북한-러시아 대 미국-한국-일본 대결 구도로 돌아가면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 문재인 정부는 2018년과 2019년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중국의 측면 지원을 받아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을 중재하고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북한 핵 문제에 양면성이 있다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렇게 중국 견제에 동조하면 북-중 결속만 강화된다는 겁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북한 문제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국가는 중국 정도거든요. 결국 이 흐름은 민주 진영의 결속력이 강화되는 반면에 북-중-러의 결속이 더 강화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거든요. 진영 논리가 강화되는 것은 북 핵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볼 순 없죠.”
미-중 갈등이 고조된다고 해서 북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봉쇄‘와 경쟁’만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13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을 룩셈부르크에서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 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 이후 미국과 중국 수뇌부는 조만간 소통을 갖고 북한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을 오래 관찰해온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미-중이 북한 문제에 협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을 봉쇄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을 도울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We are containing China, why China help us to North Korea?”
유명환 전 장관도 중국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핵 개발을 방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유명환 전 장관] ”북한의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해서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되는데, 비토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인테그리티(진실성)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한반도를 둘러싼 큰 그림이 바뀌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한반도가 어떤 변화와 선택에 직면하게 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