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실은 문재인 전임 정부 시절 벌어진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국내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을 강제북송한 사건이라며 철저한 조사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판문점을 통한 북송 당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7일 입장문을 내고 2019년 11월 이뤄진 북한 어민 강제북송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망명 의사의 진정성이 없고,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도망치다 한국 해군에 잡힌 데다 한국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범이라는 점 등을 꼽았습니다.
특히 이들 어민들이 “탈북민이나 망명자가 아닌 동료 16명을 살해한 엽기적 살인마”라고 강조하면서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추방하도록 규정돼 있고 한국 측이 먼저 북한 측에 송환을 타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영범 한국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열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 사안의 본질은 대한민국이 받아들여서 국내법대로 처리했어야 할 탈북 어민을 북한 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 홍보수석은 그러면서 전 정권 인사들에게 진상 조사 협조를 촉구하며 현 정부의 진실 규명 의지를 거듭 확인했습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쟁점은 흉악범 여부가아니라 한국 헌법상 국민인 북한 주민이 한국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았는지, 한국 정부가 주권국가로서 이들에 대한 형벌권을 제대로 행사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봉영식 전문연구위원] “대한민국 헌법 3조를 보면 이 선원들은 흉악범일 가능성이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 절차에 따라서 처벌을 받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로서의 기본 임무를 행사하지 않은 거에요. 이 사람들이 살인범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지켰는가 아니면 위반했는가가 쟁점입니다.”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추방하도록 규정돼 있다는 정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 사례들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미 항공기 납치와 마약 거래, 테러, 집단살해 등 국제형사범죄자와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 23명의 망명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비보호’ 탈북민으로 분류해 지원을 끊었지만 한국 국민으로 인정한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비보호 탈북민 규정 자체가 북송을 해도 된다는 규정은 아닌 거죠. 그것은 탈북민에 대한 처우에 관계된 거지, 북송 여부의 판단 기준은 아닌 겁니다.”
봉영식 전문연구위원은 또 고문금지협약과 난민 관련 국제조약에 가입한 한국이 강제송환을 금지하는 국제법상 원칙인 ‘농르플르망’ 원칙을 어겼는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농르플르망 원칙은 망명자 난민에 대한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나라에 피해 당사자를 강제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입니다.
탈북민들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체포된 뒤 강제북송을 당해 북한에서 혹독한 고문과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어민 북송은 이 원칙을 어긴 행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우리가 이미 사실로 확인된 것 중에 가장 핵심은 3일만에 그 모든 조사를 마치고 이들을 북한에 보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국제법과 국내법, 기존에 해왔던 대북 모든 규범을 다 어긴 겁니다.”
이들 어민들이 망명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최영범 홍보수석은 “망명 의사가 없었다는 건 궤변”이라며 “어민들이 자필로 쓴 망명의향서는 왜 무시했는가”라고 따졌습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어민들이 한국 측의 합동신문 과정에서 망명의향서를 제출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포된 후 동해항으로 오는 과정에서 망명 의사를 밝히지 않아 진정성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통일부에서 지난 12일 공개한 판문점에서의 북송 당시 사진을 통해 자발적 의사가 아닌 강제북송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망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전임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과 모순된다고 말했습니다.
강 교수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중국에 탈북민들의 강제북송을 하지 말라고 요구해 온 점에 비춰 이 사건은 반드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지금 우리가 중국을 향해서 계속 강조하고 요구하는 게 강제북송시키지 말라는 거잖아요. 그런 요청이 굉장히 무의미해지게 된 거에요. 왜냐하면 제 나라 제 땅에서 제 국민을 이렇게 강제북송시키면서 중국이 어떻게 너희가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할 수 있냐고 얘기하면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거죠.”
한편 한국 통일부는 이들 탈북 어민들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약 4분 분량의 영상을 18일 공개했습니다.
이 영상엔 어민들이 경찰특공대 호송 아래 판문점 내 한국 측 자유의집에 도착한 뒤 대기실로 이동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으로 가기 직전까지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특히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갈 당시 어민 1명이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아 자해를 시도하려는 듯 시멘트 바닥 쪽으로 몸을 숙이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호송하던 한국 측 경찰특공대원들이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고 결국 이 어민은 호송인력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듯 군사분계선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영상은 탈북 어민 북송 당시 현장에 있던 통일부 직원이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부는 이 영상의 존재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법적 검토를 거쳐 이날 공개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북송된 어민들은 지난 2019년 11월2일 어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을 남하하다 한국 해군에 나포됐습니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망명 의사를 밝혔지만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뒤 도주하는 등 망명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당시 정부 판단 하에 그해 11월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됐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