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일요일(7월 31일)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대테러 작전으로 사살됐습니다. 알자와히리는 2001년 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공격을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이후 알카에다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파장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알자와히리 사망”
8월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의 지시에 따라 미국이 7월 31일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대한 공습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디에 숨어있든 미국민에게 위협이 된다면 미국은 끝까지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지난 2001년 약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주 설계자로 알려진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1주년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사건 전개 과정”
미국 정보 당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에서 미국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부터 이미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주목해왔습니다.
외과의사 출신의 이집트 국적인 알자와히리는 알카에다의 초대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과 함께 9.11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9.11 테러 후 파키스탄 변방을 옮겨 다니며 도피 중인 것은 파악했지만 정확한 은신처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에게 2천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지명 수배했습니다.
지난해 8월 31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한 것을 계기로 미 정보 당국은 알자와히리가 아프간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고 관련 동태를 주시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 주택이 정보 당국에 포착됐습니다.
이 주택은 탈레반 고위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의 보좌관이 소유한 집으로, 정보 당국은 관찰 결과 이 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알자와히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가와 공습 단행”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난 4월 백악관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고, 이후 백악관 당국자들과 알자와히리 제거를 위한 세부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알자와히리가 발코니에 자주 나와 독서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무인기(드론)를 이용한 미사일 공습으로 알자와히리를 사살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5일, 바이든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7월 31일 아침, 실제로 한 남성이 발코니에 나오자 미국은 미사일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이 때 미국은 R9X, 일명 ‘헬파이어 미사일’ 또는 ‘닌자 미사일’로 불리는 미사일을 사용했습니다.
이 미사일은 탄두가 없어서 폭발하는 대신 내장된 칼날 6개가 펼쳐지면서 표적물을 공격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이날 공습으로 알자와히리를 제외한 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의 파장”
알자와히리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은신해 있다 사살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과 탈레반이 지난 2020년 2월 카타르에서 체결한 이른바 ‘도하협정’을 위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전격 체결했습니다.
협상의 골자는 미군이 2021년 5월까지 아프간에서 전면 철수하고, 탈레반은 아프간이 다시 테러의 온상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역사적인 평화협정이라고 홍보했지만, 합법적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배제한 채 무장세력인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력을 완전 철수했는데요.
하지만 현 탈레반 정권이 알자와히리가 카불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은신처를 제공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도하협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알카에다의 어제와 오늘”
알카에다의 시작은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프간에는 소련의 침공에 반발해 이슬람 저항세력, 이른바 무자헤딘(전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층 출신 오사마 빈라덴도 그 중 1명 이었습니다.
빈라덴은 소련이 물러난 후 1988년 ‘알카에다’라는 이름의 무장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이후 알카에다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반미, 반이스라엘 투쟁에 나섰고요. 급기야 2001년 9월 11일, 납치한 항공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9.11 테러 후 국제사회의 공분 속에 알카에다 세력은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특히 2011년 빈라덴이 미국의 특수작전으로 제거된 후 알자와히리가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구심점은 크게 약화됐습니다.
여기에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IS까지 등장하면서 알카에다가 밀린다는 관측도 나왔는데요. 이제 두 번째 수장 알자와히리가 제거되면서 더 와해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생 무장조직들이 많고 테러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 타이완을 방문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입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1940년생, 올해로 82살의 여성 정치인입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35년 간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인 관록의 정치인이자,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연방 하원의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고요. 아직까지는 유일한 여성 연방 하원의장이기도 합니다. 또 50여 년 만에 하원의장 재선에 성공한 정치인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이자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습니다.
7남매 중 막내이자 외동딸이었던 펠로시 의장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고요. 그의 오빠도 훗날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1962년, 워싱턴 D.C.에 있는 가톨릭 계열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했고요. 이듬해 동갑내기 사업가인 폴 펠로시 씨와 결혼했습니다.
남편 펠로시 씨는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로, 그녀는 남편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되고요. 5명의 자녀를 양육하면서 민주당 당원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1987년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는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돼 처음 워싱턴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30여 년간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며 미국 정치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연방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미국의 권력서열 3위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전투적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 2020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반발해 자신이 받은 국정연설 원고를 찢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해 연방 하원의장직에 다시 도전해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목소리가 컸는데요. 하지만 펠로시 의장을 대체할 만큼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찾기 쉽지 않았다는 분석입니다.
올해 초, 펠로시 의장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 하원의원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하원의장직에 다시 출마할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펠로시 의장이 의원직 재도전 발표를 통해 민주당의 결속을 다지고, 당이 승리하면 젊은 지도부에 자리를 넘겨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 사살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 짚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