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서해를 연결하는 대운하 건설 추진 계획을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왜 운하를 건설하려는 것인지, 또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운하 건설 계획을 언급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의 관련 보도입니다.
[녹취: 중방] “나라의 동서해를 연결하는 대운하 건설을 비롯한 전망적인 경제사업들에 대한 과학적인 타산과 정확한 추진계획을 세우며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국가적인 힘을 넣어 반드시 성공을 안아와야 합니다.”
북한 동해와 서해를 가로지르는 대운하 계획은 원래 김일성 주석의 구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입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전쟁이 끝난 다음에 전후 복구작업을 하면서 1952년부터 운하 건설을 지시합니다. 그래서 운하 건설 시작점이 남포갑문이에요.”
탈북민들에 따르면 김 주석은 김일성대학에 운하 건설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일성대학은 검토 끝에 서해 남포와 동해 함흥 근처를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1981년부터 남포갑문 공사를 시작해 1986년 완성했습니다.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북한은 남포, 미림, 봉화, 성천, 순천 등 5개 갑문을 완성했습니다. 또 남포와 평양 그리고 덕천을 연결하는 운하가 생겼습니다.
남포갑문 건설에는 40억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공사 과정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이 마련한 계획에 따르면 동서대운하는 남포에서 시작돼 대동강 상류로 올라가 낭림산맥을 통과해 함경남도 금야강을 연결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문제는 낭림산맥이었습니다. 대동강 상류를 지나면 강줄기가 끊어지고 험준한 낭림산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운하를 완성하려면 낭림산맥을 관통하는 수로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결국 1980년대 들어 북한 경제가 쇠퇴하면서 동서해 연결 대운하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0년 김대중 당시 한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 가는 해상 통로를 열기 위해 한국과 대한해협 통과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 선박이 제주도 인근 한국 영해에 접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가 북한에 사전 신고를 요구하고, 또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 선박의 대한해협 통과는 무산됐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치적 목적에서 대운하 계획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타당성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남포갑문의 경우 40억 달러의 비용과 엄청난 인력과 자재 그리고 중장비가 투입돼 5년만에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동서대운하는 100억 달러 이상, 그리고 수십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유일한 가용자원은 인력뿐이며 필요한 자금과 자재, 중장비가 모두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동부와 서부의 물자 수송을 원활히 하려면 운하 보다 철도와 도로를 개보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북한에는 이미 동서를 연결하는 평원선과 평양과 라진을 연설하는 평라선 철로가 부설돼 있습니다.
또 1978년에 완공된 평양-원산 고속도로도 있습니다.
다만 지난 수십년간 철도와 도로 시설 정비와 보수가 안돼 심각하게 노후화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운하를 파는 것보다 기존 철도와 도로를 보수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Railroad existed fix it,highway between Pyongyang and Won-san…”
또 다른 장애물은 낭림산맥에 수로를 만드는 겁니다. 북한은 아직 운하 노선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거 노선을 기준으로 할 때 대동강 상류 요덕군부터 함경남도 금야강 사이에는 강이 없고 해발 500-1000m 산이 즐비합니다.
그러니까 운하를 만들려면 높은 산 수십km를 관통하는 수로를 뚫고 계단식 갑문이나 리프트(Lift)를 설치해야 하지만 북한의 부족한 기술력과 장비로는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평양을 오래 관찰해온 동용승 사무총장은 북한 수뇌부가 정치적 이유로 ‘대운하 계획’을 추진하려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은 내세울만한 국가적 토목사업이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없다는 겁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김일성 시대에는 남포갑문과 건설사업이 있었고, 김정일 시대에는 발전소 건설같은 큼지막한 사업이 있었다고 한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아파트 건설 외에는 없어요.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형사업을 밑에다 주문을 하니, 대운하를 하자고 한 것 아닌가…”
탈북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토목사업으로 인해 애꿎은 주민들만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안남도 평성에서 농업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뭔가 자기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보여주기 위해 그러는 것 같은데, 운하를 파면 자기가 파는 것도 아니고, 젊은 아이들이 들어가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 고생시키고 죽게 하고, 진짜 피땀으로 하는 건데, 아파트는 그렇다 쳐도 운하는 문제가 다르거든요.”
전문가들은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업적을 위해 전시성 토목사업을 벌여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에 주민들에게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 준다며 강원도 마식령에 스키장을 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군인들이 돌격대로 투입돼 2014년에 스키장을 완성했습니다.
스키장이 문을 열고 처음 1-2년간 평양의 돈 많은 젊은이들이 스키장을 찾았지만 이후 이용자가 없이 2017년부터는 사실상 방치돼 있는 실정입니다.
평양종합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0년 3월 갑자기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지시했고, 이에 북한 당국은 청년돌격대를 투입해 병원을 건설했습니다.
1년 뒤 20층 높이의 입원병동을 비롯한 골조공사는 완성됐습니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의료장비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고, 평양종합병원은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북한이 대운하 건설을 추진할 것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대운하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운하 계획에 대한 ‘과학적인 타산과 정확한 추진 계획’을 언급한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대운하 계획이 검토 또는 계획 단계에서 수정 또는 무산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용승 사무총장은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사실상 발표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그 정도 얘기하면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체제의 특성상 그 정도 얘기하면 하지 않을까 보여집니다.”
북한 수뇌부가 실제로 동서대운하 건설을 추진할지, 또 이로 인해 얼마나 큰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