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급감 속 해외 파견 인력 탈북 지속…외화벌이 중압감·자유세계 동경 영향

한국의 탈북민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

한국과 미국 등 자유세계에 정착하는 탈북민 수가 대폭 줄어든 가운데 해외 파견 인력의 탈북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코로나와 대북 제재 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체류국 경제가 악화돼 외화벌이에 중압감을 느끼고 유튜브 시청 등으로 자유를 동경하게 된 젊은 층의 탈북이 늘고 있어 주목됩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해오고 있는 한국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는 최근 특별한 이유로 제3국을 다녀왔습니다.

제3국에 파견된 북한 주요 기관 관계자로부터 망명 지원 요청을 받고 구출을 위해 떠난 겁니다.

다행히 이 관계자를 안전한 이웃 나라로 이동시켰고 바로 한국 기관이 개입해 일사천리로 이 관계자는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김 목사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던 탈북민들의 구출 요청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해외 파견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탈북 지원 요청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중국에 있는 탈북민들은 중국의 정책 때문에 아직 움직이지 못합니다. 꾸준히 연락은 오지만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해외 송출 인력인 거죠. 어떻게 보면 그들이 말하는 당성이 떨어지고 균열이 가는 거죠”

한국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 역시 지난 1~2년간 해외 파견 인력, 특히 IT 분야 관계자들의 탈출 지원 요청이 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많이 있죠. 최근엔 000국에서도 있었고. 연락이 계속 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3~5년 장기적으로 길어지니까. 또 대부분 IT 쪽에 일하다 보니 북한 상황을 잘 아니까 연락이 많이 오곤 하죠.”

VOA가 최근 북한 인력이 파견된 5개국 내 북한인 혹은 탈북 지원 단체 등과 소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망명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A국에 체류 중이던 북한 남성 6명이 동시에 한국에 도착했으며, 올해 초에는 B 국에서 장기간 활동하던 중견급 관리가 C국을 경유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또 북한과 멀리 떨어진 D국을 비롯해 지난 여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내 북한 식당 관계자 5명이 한국에 망명했다고 한국 언론들이 정부 관계자들 인용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한국 통일부가 발표한 탈북민 입국 현황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13일 기자들에게 올해 3분기 탈북민 입국 인원은 남성 14명, 여성 9명 등 23명이며, 올해 1~9월까지 총입국자는 남성 17명을 포함해 42명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이들의 경유국과 망명 경위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VOA에 “남성은 대부분 파견 인력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은 지난 2019년까지 70~80% 이상이 여성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남성 40명, 여성 23명으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남녀 비율이 역전됐습니다.

통일부는 이날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한국 입국 규모에 관한 VOA의 질문에 "관련 상황은 해외 탈북민의 신변안전 및 탈북민 입국경로 보호 등을 위해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VOA가 한국 입국을 직접 확인한 3명을 포함해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적어도 15명의 해외 파견 인력이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2019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13일 VOA에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꾸준한 한국 입국 소식을 직접 듣고 있다며 3가지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정치적 문제 연루, 자유에 대한 동경, 그리고 가장 큰 이유로 “코로나 여파 등에 따른 경제적 압박으로 탈출을 결심한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사대리] “돈을 벌어서 북한에 들어가야겠는데 돈을 이제까지 벌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2017, 2018년부터 제재가 전방위적이고 초강경하게 들어왔으니까 이 사람들이 제재 때문에 비즈니스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 거기다가 코로나 위기로 비즈니스도 못 했고 그러다 보니 돈을 벌진 못하고 오히려 까먹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자기가 북한에 들어간다 해도 특별히 돈을 벌어서 들어가야 몇 년을 버티겠는데 돈이 없지 않습니까?”

류 전 대사대리는 외교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양 시민이 해외에 나가기 위해선 상부에 뇌물을 바치고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 빚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모든 체류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당에 다양한 상납금마저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중압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해외 북한식당 지배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북한 해외 파견 인력의 탈북을 돕는 ‘무궁화 구조대’를 만들어 활동 중인 허강일 씨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코로나 기간에 파견 일군들에게 악재가 겹쳤죠. 세계 경제가 안 좋아서 돈 벌기가 힘들고 환경은 더 나빠지는데 북한의 독재자는 그런 것 상관없이 무턱대고 돈 내라고 강요하지, 세 부담을 많이 시키지, 코로나 때문에 집도 못 가지, 서신 거래도 못 하고 돈도 못 부치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과연 이런 게 나라냐…”

허 씨는 최근 자신이 탈북을 지원한 북한 관계자들은 “교과서에서 악독한 지주놈들이 머슴의 것을 수탈하는 것에 대해 계급 투쟁을 해야 한다고 세뇌받았는데, 김정은이 그 짓을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20~30대 청년들의 망명 시도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20~30대의 사고가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북한 정권에 자기 청춘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사고가 크게 자랐더라고요. 다 나와서 인터넷을 보니까. 그걸 보면서 자기가 속고 자랐다는 것을 본인들 스스로가 느끼는 거죠. 어떤 친구들은 북한의 가족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대담하게 내가 이런 독재 국가에 다시 들어가야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고. 중요한 건 이런 독재국가에서 일생을 바칠 수 없다는 사고가 제일 첫 자리에 올라가 있어요.”

실제로 VOA가 올해 해외 파견 중 탈출에 성공한 뒤 접촉한 3명은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K 씨는 유튜브 시청을 하며 생각이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K씨] “내가 여기서 지금 체험하는 것과 원래 북한에서 살아왔던 체험이 모든 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게 맞나? 남한을 보면 정치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적어도 눈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도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말로만 민주주의지, 이건 완전히 억압된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신적 변화가 왔다고 해야 할까? 나도 탈출에 1년 동안 고민했습니다. 생각을 반복 반복 하다가…”

이들 북한 청년 3명 중 2명은 지난 여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해외 파견 관계자들이 보내오는 문자를 읽으면 이들의 사고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천 목사가 VOA에 제공한 문자를 보면 북한 파견 관계자는 “해외에 나와서 6·25 전쟁이 남침으로 발발한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상하게도 (북한의) 그 많은 전쟁 참가자들이 한 번도 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최근 자신들에 대한 사상교양이 부쩍 더 강화됐다며 상부로부터 중국 영화 등 목련 마크가 찍혀 있는 영화마저 다 삭제하고 김일성의 위대성 자료를 정기적으로 열람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제3국 내 한 소식통은 IT 분야 관계자들의 탈북이 늘면서 작업 시 카메라를 반드시 켜도록 하는 등 감시 조치가 강화됐다고 전했습니다.

탈북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조국을 위해 해외에서 열심히 외화벌이하면 정부가 더 많이 배려해야 하는데 김정은 정권은 혜택은 커녕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의 감시 강화에도 불구하고 이런 해외 파견 인력의 탈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