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는 대북 전략을 ‘비핵화’에서 ‘군축협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핵화 목표는 유지하되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위협 감축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인데, 아직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박승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은 25일 VOA에 현행 대북 정책과 관련해 “지금 가장 우선 순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역량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특별보좌관] “For now, the highest priority should be limiting 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and especially reducing the risks of nuclear conflict resulting from accident, misperception, or miscalculation. That will require engagement and reaching agreements on a series of limited steps, including confidence-building measures, that could help stabilize the situation and reduce the likelihood of armed conflict. It is possible to pursue these limited steps while maintain the ultimate goal of complete denuclearization.”
특히 사고, 오해, 오판 등으로 핵 갈등이 일어날 위험을 감소시키는 게 1순위라는 것입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이를 위해 관여와 일련의 제한적 조치들에 관한 합의 도달이 필요하다며, 여기엔 상황을 안정시키고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낮춰줄 신뢰 구축 조치들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제한적 단계들을 추구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아인혼 전 특보처럼 북한과 당장 ‘비핵화’보다 ‘군축’을 논의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앞서 핵 정책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연구소 비확산센터장은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실질적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해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군축 협상을 하자”며 논의에 불을 댕겼습니다.
하지만 아인혼 전 특보는 북한이 애초에 국제 의무를 위반하고 핵 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특별보좌관] “North Korea developed nuclear weapons by violating its international obligation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annot “accept” the DPRK as a legitimate nuclear weapon state, which would both raise serious issues for North Korea’s neighbors and harm the international nonproliferation regime. But even if complete denuclearization remains the declared goal, it doesn’t mean denuclearization should be the focus of any near-term engagement with the DPRK.”
이는 북한 주변국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해를 미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을 합법적 핵 보유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인혼 전 특보는 선을 그었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공식 목표로 남더라도 북한과의 단기적 관여에서 비핵화가 초점이 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끈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특사 역시 북한 핵 보유국 인정 여부에는 “명백히 반대한다”면서, 지금까지 미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외에 핵 보유 지위를 공식 인정한 나라는 인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갈루치 전 대북특사] “Among the four countries that possess nuclear weapons that are not among the original five, only one of them did the United States extend that privilege. And that was India. Pakistan, Israel and North Korea remain, they're outside US law as in terms of the possibility of the United States exporting nuclear equipment to that country.”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은 미국 법에 따라 핵 관련 장비를 수출할 가능성이 없는 나라들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미국이 북한과 ‘군축’ 대화를 못할 이유는 없다고 갈루치 전 특사는 강조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갈루치 전 대북특사] “North Korea giving up its nuclear weapons would occur over a period of time, there could be a freeze, there could be a build down, there could be other methods of reducing the risk that's attached to nuclear weapons that are well known to arms controllers.”
북한의 핵 포기는 일정 기간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무기 동결, 폐기 등 군축 전문가들이 자세히 알고 있는 핵 무기 위협 감소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북한 핵에 대한 군축과 동결 논의를 지지한다면서도 이는 궁극적 비핵화로 가는 중간단계여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 “We can look at arms control and a freeze but we have to be clear that that's really an intermediary step on the path to eventual denuclearization.”
다만 지금 북핵 문제가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군축 논의를 해볼 수 있다고 여 석좌는 말했습니다.
[녹취: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 “US government needs to make space. It need some flexibility and tacitly acknowledge that North Korea is a nuclear state. And the way of doing that is to talk about arms control without actually saying that, yes, North Korea, you're a nuclear state.”
미국 정부는 대북 협상에서 공간과 유연성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암묵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고 실제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군축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여 석좌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과 군축 협상을 시작하자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비록 암묵적이라 해도 미국이 북핵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은 지난 반세기 넘게 세계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를 주도해 온 미국의 위상을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북한 핵 보유 인정은 NPT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 “It would be a classic case of a cheater getting rewarded by holding out against international pressure. The effect on South Korea, Japan, and even Taiwan is hard to predict but they would likely not believe the nonproliferation system provides much security or value. Countries like Iran could be further motivated to defy the IAEA, the verification agency of the NPT, or even to seek nuclear weapons.”
부정행위자가 국제 압력을 버텨서 결국 보상을 받아내는 고전적 사례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이것이 한국, 일본, 타이완 등에 미칠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비확산 체제가 안전이나 가치를 제공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또 이란 등이 NPT의 검증 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무시하고, 심지어 핵무기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더구나 군축 회담을 시작한다 해도 북한의 투명성, 진실성 문제로 난관이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 “North Korea would be expected to reveal less and resist any meaningful arms control constraints. Like Pakistan, they could argue that transparency of nuclear weapons, nuclear weapons production sites, or nuclear weapons storage sites would invite attacks by their enemies. Only now, that argument would likely be accepted as legitimate, as it is with Pakistan.”
북한은 자국 핵 무기에 관해 밝히는 것을 꺼리면서 의미있는 군축 제약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핵 무기, 핵 무기 제조시설, 핵 무기 보유고 등에 관한 투명성은 적들의 공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다 결국 지금 파키스탄의 경우처럼 이는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올브라이트 소장은 덧붙였습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과거 국제사회가 북한의 ‘군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이는 새로운 접근법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Nor is the “new” arms control approach all that new. The “limit and freeze” approach did not work when North Korea signed the Nonproliferation Treaty (1985),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safeguards (1992), the inter-Korean nuclear agreement (1992), and the Agreed Framework (1994). North Korea violated each of those agreements, then failed to abide by its commitment in subsequent denuclearization accords.”
북한은 1985년 북한 NPT 가입 당시의 ‘제한과 동결’ 접근법, 1992년 IAEA 안전장치 도입, 1992년 남북 핵 합의, 1994년 제네바합의 등을 모두 위반했으며 향후 이어진 비핵화 합의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고 클링너 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박승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