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북한 군사력 과시 이면엔 암울한 경제 지표…지원 신중해야”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심야열병식에 화성-17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북한 정권이 최근 여러 형태의 도발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심각한 경제난은 숨기는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미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경제난이 심화하면 군사력 증강은 물론 체제 유지에도 타격을 주는 만큼 이런 취약성을 공략하고 대북 지원에 신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에 사는 북한 출신 에스더 씨(가명)는 9일 VOA에 최근 북한 내 가족과 통화한 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밀무역으로 살아가던 가족 등 많은 연선 지역 주민들이 국경 봉쇄로 3년 가까이 발이 묶이면서 생활이 심각하게 피폐해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에스더 씨] “생필품도 엄청 비싸졌고, 장마당에 쌀과 강냉이는 그래도 있다는데, 돈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살 수 없어 굶주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해요.”

북한 내부와 수시로 통화하는 한국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도 치솟은 물가 때문에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안 그래도 북중 교역이 끊어지면서 생필품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주요 생필품 가격이 세 배 정도 올랐다고 합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북한 경제 전문가들과 대북 소식통들의 분석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북한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5년간 연평균 2.4% 축소됐고 대외무역은 “1955년 이후 최저라는 초유의 수준으로 급감해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다량의 미사일과 포 사격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이런 경제적 치부는 숨기는 이중적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는 군사력을 위해 경제력을 보유해야 하는 등 균형을 추구하지만 김정은은 그런 접근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Historically, most countries have to have a balance. They've got to have economic power to have military power. Kim has chosen not to follow that approach. He's encouraged people to sacrifice more and produce more and it's just not happening.”

또 김 위원장은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생산을 독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런 실책 때문에 김정은은 군사력을 과시해 주민들의 시선과 국제사회의 이목을 끈 뒤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아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발상은 미국과 한국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순진한(awfully naïve)”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경제전문가인 메릴랜드주립대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난과 물가상승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과 불만족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큰 문제에 봉착하면 그것을 숨기고 다른 문제를 꺼낸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f they're confronting a big problem, they try to hide it and point to a different problem. So if he's worried about food situation, he doesn't want to talk about food situation. He wants to talk about South Korea, trouble with U.S., exercises something like that. He wants to deflect attention. Domestic attention. So he doesn't want people to think about food or how bad their economy is.”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이 식량 상황에 관해 걱정하면 식량 상황을 주민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대신 한국, 미국과의 갈등, 연합군사훈련 등에 관해 말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은은 주민들이 식량이나 경제가 얼마나 나쁜지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관심을 돌리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북한의 도발 등 군사력 과시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북한의 경제적 취약점을 간파하며 포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서울대학교의 김병연 국가미래전략연구원장은 최근 동아시아연구원(AEI) 강연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북한의 도발보다 새 장 속에 갇힌 김정은과 북한의 구조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병연 원장] “핵·경제 병진은 국가 노선 같지만 김정은의 생존 코드입니다. 핵을 쥐고 경제를 동시에 쥐면 나는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핵을 쥐면 외부세계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고 경제를 쥐면 내부의 불만이 없으니까 둘 다 쥐고 계속 가겠다는 것이죠. 제 생각은 핵·경제 병진 노선, 김정은의 생존 코드를 핵·경제 상충구조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핵을 쥐면 경제를 포기해야 하고 경제를 얻으려면 핵을 놔야 하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실패했나? 아닙니다.”

김 원장은 북한이 강점은 드러내면서 2017년부터 해마다 거의 1조 원, 미화로 7억 4천만 달러를 잃고 있는 경제 약점은 숨기고 있다며 이런 경제 취약점을 활용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어 “경제를 이긴 독재자는 없다”면서 김정은의 불꽃놀이만 보고 과잉 대응하기보단 경제 취약점을 활용해 김정은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운 교수도 이런 점에 주목하면서 외부 세계가 옛 공산 유럽과 달리 구호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지원하는 접근을 이제 삼가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특히 옛 동독을 비롯해 공산 동유럽은 정보 유입 등 외부의 노력으로 국민이 자국 정부가 얼마나 악한지 깨닫고 조국을 떠나면서 체제 붕괴로 이어졌지만 북한은 완전히 반대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But in North Korea, it's quite the opposite. Nobody comes and goes, almost nobody. And the foreign countries all kind of protect North Korea because they're afraid of it. So we give them aid. South Korea gives them aid. It's crazy. We've given them billions of dollars in aid to protect the regime.”

브라운 교수는 아무도 북한을 오가지 않고 외국 국가들은 북한이 두려워 모든 종류의 보호를 하며 북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경제가 심각하게 악화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의 문을 걸어 잠그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거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례 없는 경제난 때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을 수용했지만 김정은은 문을 걸어 잠그고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Kim Jong Un has just gone the opposite direction. He closed up like a clam. And it was a completely different way of dealing with these kinds of challenges and his father adopted back then. So the question is why is he doing it this way? And what does he really think is going to accomplish by doing it this way?”

전문가들은 위성과 탄소 배출량 측정 등으로 북한의 경제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미한일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이 자국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소규모의 재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해 왔기 때문에 근근이 버틸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북한 김일성대에서 경제학 고위 과정을 마친 한 엘리트 출신 탈북민은 10일 VOA에 “북한 경제는 군수, 당, 내각 경제 3가지로 돌아간다”면서 군수와 당은 내각이 절대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올가을 곡물 작황이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아직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019년 탈북해 한국에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도 VOA에 김정은이 오직 핵과 미사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북한 경제에 미칠 파급은 제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사대리] “경제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먹고살아 갈 정도만 되면 김정은에겐 오케이거든요. 나머지는 자기 정권과 체제 유지를 위한 국방공업에 올인하게 돼 있고 여기에서도 가장 선택할 수 있는 게 핵과 미사일이라고 봅니다. 적은 돈을 갖고 여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때문에 북한의 전 경제 상황을 역전시킬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중국이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쌀과 원유, 비료를 해마다 어느 정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류 전 대사대리는 그러나 최근 김정은에 대한 엘리트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사대리] “특수 부문에 자꾸 올인하게 되면 그만큼 인민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인민이 생활이 계속 어려워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무래도 김정은과 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고 민심이 이반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체제 유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봅니다.”

랜드연구소의 베넷 선임연구원도 이런 우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외부 정보 유입을 더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엘리트들도 심각한 경제 상황에서 군사력만 내세우며 위험을 무릅쓰는 김정은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향후 김정은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