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베트남 수교 30년’, 베트남-북한 GDP 격차 최대 15배…미 전문가들 “북한, 사유 재산 일부 인정해야”

베트남 하노이의 고층건물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통한 비약적 발전으로 북한과의 경제 격차가 9~15배 이상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사유 재산을 대체로 인정하는 베트남식 내부 개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22일 수교 30주년을 맞아 정상 간 축전을 교환하며 다양한 기념행사를 통해 우의를 과시했습니다.

1992년 수교한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 30년간 교류 확대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한국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두 나라의 교역 규모는 수교 이후 164배, 상호 투자는 145배 늘었습니다.

교역은 지난해 기준 807억 달러, 상호 투자는 25억 달러로 급증한 것입니다.

한국에 베트남은 중국, 미국에 이은 3위 교역국, 한국은 베트남의 4대 교역국이자 최대 해외직접투자국이 됐습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한국에 체류하는 베트남인은 23만여 명으로 외국인 중 24만 명인 중국 다음으로 많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3만여 명과 비교하면 거의 10배 가까이 큰 규모입니다.

지난 10월 하노이에서 한국-베트남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베트남만 놓고 보면 경제와 베트남인들의 생활 수준은 거의 천지개벽을 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은 한국과 수교했던 1992년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139달러로 당시 북한의 4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천 700달러에 달해 1천 달러로 추정되는 북한보다 오히려 4배가 많아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전체 GDP 규모로 봐도 베트남은 지난해 3천 620억 달러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추정한 북한의 실질 GDP 233억 달러와 비교해 15배 격차가 납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세계은행 등이 확인할 수 없다며 수년째 웹사이트에 올리는 400억 달러와 비교해도 9배의 격차가 납니다.

지난해 GDP가 1조 9천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입니다.

1990년 초부터 베트남을 오가며 1994년 첫 개설된 세계은행 베트남 사무소 초대 대표를 지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22일 VOA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당시 많은 서방 국가들이 베트남에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를 시도했다며 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 거주할 때 아내가 책임자로 있던 유엔 국제학교에는 한국인 주재원들의 자녀가 가장 많았다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실용적 접근을 시도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Even though South Korea partly supported the US and sent troops during the Vietnam War, they were able both able to be pragmatic and not put that in their way of building up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relations. So I think it was very significant that South Korea chose to be part of the first wave of countries that wanted to engage in economic relations with this opening up process in Vietnam.”

뱁슨 전 고문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을 부분으로 지원하고 군대도 파병했지만 베트남과 한국은 모두 실용적이었고 그들의 경제적·정치적 관계 구축 과정에 과거를 넣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영주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도 한국 외교부가 수교 30주년을 맞아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담화를 통해 두 나라가 과거의 아픔보다 미래를 함께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오영주 대사]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수교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만을 보고 간다. 지금도 그 기조가 양국 관계에 가장 굳건한 기조가 되고 있습니다. 서로 전쟁을 통해서 여러 아픔이 있었던 것은 알지만 과거 시대적 상황을 베트남 국민들도 잘 이해하고 지금 한국과의 관계, 미래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며 외부 세계와의 다리 역할을 했던 뱁슨 전 고문은 “베트남인들이 항상 한국을 모델 국가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think the Vietnamese always look to South Korea as a model of the country that had been devastated by the Korean War and managed to pull itself out of that and become, probably along with Taiwan, the biggest success story of economic development since the 1950s.”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그 위기에서 벗어나 타이완과 함께 195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의 가장 큰 성공 사례가 됐기 때문에 베트남이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두 나라가 민주주의와 공산국가로 체제가 달랐지만 최소한 경제 영역에서 베트남인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민간 투자를 인정하고 교육 발전 등에 중점을 둔 것이 모두에 유익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매릴랜드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이념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베트남 지도부의 ‘도이머이’ 정신은 자신이 1986년 서울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근무했을 때부터 이미 체감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한국이 1986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당시 서울을 방문한 베트남 정부 대표단은 자신에게 “한국의 발전에 정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y came up to me and said. Wow, we are really impressed with South Korean development. And I said something sure, you know, and then they said, you know, America has really helped South Korea. We want America to do the same for Vietnam. I said, well it's true US has helped South Korea. But what you see here all these modern buildings, it's not American. It's South Korean investment. So what you need to do is learn from South Korea, how to build your country, not from America, learn from South Korea.”

베트남 대표단은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도왔기 때문에 한국이 발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들도 미국으로부터 같은 지원을 받기 원한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브라운 교수는 회고했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이에 대해 베트남 대표단에 미국이 한국을 지원한 것은 맞지만 서울의 수많은 현대식 건물은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들이 투자한 것이며, 베트남 재건을 위한 방법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을 권고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 수뇌부가 과거의 실패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과 공방을 벌이고, 당이 실수와 능력 부족을 인민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뒤 천명했던 도이머이는 베트남의 옛 빈곤과 오늘의 번영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이런 베트남의 경제 발전에는 미국의 기여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 전문가들은 과거 베트남과 전쟁을 치른 적대국이었던 미국은 한국보다 3년 늦은 1995년에 베트남과 공식 수교했지만 이전부터 민간 교류를 막지 않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수교를 발판 삼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가입, 이후 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관세 장벽을 없애고 2006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국 중 하나가 됐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과거 베트남의 개방을 설계하던 담당자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북한의 경제 발전 방안에 관해서도 종종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북한과 나누며 최대한 북한의 발전을 돕기 원하지만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북한 지도부의 변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베트남 지도부는 과거 축출했던 관리들을 다시 복귀시켜 함께 일하며, 매우 실용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y kicked everybody out and then everybody came back and wanted to work with them. The Vietnamese were very pragmatic that way. Let's find out what the best thing to do is and work together to make a better future. They had that attitude, but we don't see that attitude in North Korea.”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혁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의 강력한 경제력을 지적했습니다.

개혁·개방을 하면 북한보다 훨씬 부유한 한국이 북한을 잠식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상당히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 출신으로 워싱턴에서 북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는 리정호 씨도 앞서 VOA에 한국에 대한 평양의 두려움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남한과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지원이 들어오게 되면 (주민들이) 남한 사회를 동경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사실 김정일 때도 남한 상품을 다 차단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차단하고. 절대 김정은은 이런 것(담대한 구상)을 발표해도 김정은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은 비슷한 이유로 중국, 일본, 미국 등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지배하는 상황도 우려한다며, 베트남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배울 점은 개방에 앞서 “내부 개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f it reforms internally, then, for example, property rights if North Koreans can own property, if they can own their house own their farm, then they don't have to be so worried about South Korean business coming in.”

“북한이 내부적으로 개혁해, 예를 들어, 북한인들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자신의 농장을 소유할 수 있다면 한국의 사업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브라운 교수는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지만 대체로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고 자본을 소유하도록 허용해 개인이 이를 훨씬 잘 활용하며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비핵화 등 여러 정치적 문제가 풀려야 하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런 접근이 당장은 최선의 길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