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탈북민들 “북한 주민들, 새해에 희망 잃지 말고 변화 주도하길”

북한 주민들이 마스크를 끼고 평양 시내를 걷고 있다.

미국에 사는 탈북민들이 새해를 맞아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미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한 것에 감사하다며 열심히 일하면 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북한에도 세워지길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탈북민은 김정은 독재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 기대도 하기 힘들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9년 두 자녀를 데리고 북한을 탈출한 뒤 2021년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탈북 여성 야엘 씨는 새해 인사에 앞서 북한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고 말했습니다.

보름에 한 번 나오는 수돗물, 하루에 1~2시간도 쓸 수 없는 전기, 밥보다 감자에 더 익숙한 식사, 아무리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삶을 살다가 미국에서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는 자신을 보며 “이상하게 목이 멘다”는 것입니다.

[녹취: 야엘 씨] “우리 북한에선 그런 진흙물을 먹고 살았거든요. 더러운 물을. 그런데 그 물도 계속 나오지도 않고. 근데 여기는 그 깨끗한 물이 계속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생수를 사다 마시는데, 그뿐 아니라 더운물까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야, 북한에서 살 땐 난 사람이 아니었구나. 여기는 모든 게 생명을 중시하고요. 이곳은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고 북한은 어느 한 개인을 위해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 같은 건 죽든 살든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단 말이에요.”

야엘 씨는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내던 시골의 언니에게 힘내라는 형식적인 인사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야엘 씨] “언니! 지금 북한이 그렇게 힘든데 언니는 어떻게나 살고 있는지. 나는 여기 와서 언젠가는 언니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어. 또 언니가 언젠가는 여기와서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언니네 가족, 또 북한 사람들 생각하며 살고 있어. 그런데 여기는 모든 것이 다 새로워. 우리가 살던 북한은 악몽이라고 해야 하는지. 내 사십 평생이 악몽에 헤매다가 천국에 올라온 기분이야. 고저 조금만 일하면 잘 살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고 앞날도 보여.”

야엘 씨는 할 수만 있다면 동네 사람들을 다 미국으로 데려오고 싶다면서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도 되어서 “부지런히 제 육신을 놀려 배불리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평양 시내에 고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탈출한 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방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갈렙 씨는 북한에서 가족, 친구들과 보냈던 새해 명절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렙 씨] “지금 저는 미국에 있는 ‘코리안 벨 가든’이라고 이 지역의 한인들이 만들어 놓은 예쁜 정원을 걷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지만 항상 이렇게 고국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짙어지는 것 같아요. 멀리 살지만 항상 고향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 힘든 상황보다 희망이 없을 때 더 절망적이고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희망을 품고 열심히 목표를 세워 살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탈출한 뒤 미국에서 갈렙 씨와 결혼해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대학 공부도 병행 중인 그레이스 씨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도 자신이 소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씨] “저희 아버지 어머니들, 오빠 언니들, 동생들, 친구들. 소망을 갖고 살기 힘들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겠지만 목숨을 잘 간수해서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면 좋은 날이 꼭 오리란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분들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지금은 앞이 안 보이고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급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고 누군가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 준비해야겠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자기란 생각도 하면서 희망을 품고 2023년을 잘 살기를 응원합니다.”

미국에 탈북 난민 1호로 입국한 뒤 지금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한 가정의 아내이자 두 자녀의 어머니로 사는 데보라 씨는 최근 “김정은이 쏘는 많은 미사일과 노예처럼 사는 주민들의 모습이 교차해 화가 나고 씁쓸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씨] “씁쓸하죠. 근데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불안정하면 계속 정권을 방어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듯이 미사일을 쏘고 하겠어요? 그럴수록 자기 함정을 파는 것 같아요.”

데보라 씨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북한 주민들에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씨] “희망을 잃지 마시고 꼭 빛을 보리라. 저희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으면 그래도 살아갈 희망이 생기잖아요.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중에는 큰 변화가 생겨 그 땅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2009년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인 김두현 씨는 북한의 사정을 잘 알기에 주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대책이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녹취: 김두현 씨] “북한의 친구들과 거의 매일 통화하는 입장에서 너무 사정을 잘 아니까 정말 대책이 없잖아요. 북한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대책이나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김정은은 더 악독하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어서 북한 정권에 일말의 기대를 갖기 힘듭니다. 또 그로 인해서 북한 사람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 주민들의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분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북한에서 지방 간부를 지낸 뒤 가족을 모두 미국에 정착시킨 아브라함 씨도 “독재 세습 정권이 7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 부끄러워 새해 인사조차 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아브라함 씨] “북한 동포 여러분!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5천 년 유구한 역사에 어떻게 그런 독재자를 만나서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이 지구 행성에 북한 같은 나라는 없어요. 새해를 맞이하지만 너무 가슴 아픕니다. 나의 부모 형제를 생각할 때마다 빨리 북한에서도 그 독재자가 없어지고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미국 내 탈북민들은 또 북한 주민들이 새해에는 외부 정보를 더 많이 접해 정권의 거짓 선전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두현 씨는 쌀과 의약품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아는 정보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며 새해에는 북한 주민들이 정보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두현 씨]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여행을 가도 정부에 보고를 안 해도 되고. 왜 가는지, 언제, 누구와 가는지 그냥 내가 가고 싶을 때. 또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해 산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아,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이 굉장히 이상하구나.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자유가 아니네 이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통해서? 외부 정보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그래서 북한 주민이든 노동당 간부든 다 김정은 정권의 피해자예요. 그들이 자기들의 권리, 정상적인 삶에 대해 깨우치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