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제 전투기 귀순’ 노금석 전 북한 공군 대위 별세…향년 90세

노금석 씨가 지난 2015년 3월 VOA와 인터뷰했다.

한국전쟁 직후 소련제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던 노금석 전 북한 공군 대위가 최근 별세했습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했던 고인은 미국에 정착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VOA에서 방송하며 북한에 바깥세상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박형주 기자가 고인의 삶을 되돌아봤습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두 달 뒤인 1953년 9월, 소련제 미그-15 전투기를 몰고 탈북했던 노금석 전 북한 공군 대위(상위)가 지난 연말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지난달 26일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자택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노금석 대위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1월 10일 북한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습니다.

1949년 8월 북한 해군군관학교에 입학해 이듬해 10월 만주에서 비행 훈련을 받은 뒤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노금석 대위는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 포스트' 신문 기자가 2015년 출간한 ‘위대한 수령과 전투기 조종사’라는 책에서 당시 19세 최연소 전투기 조종사로 소련제 미그-15 전투기로 100회 이상 출격했다고 회고했습니다.

1953년 9월 21일 노금석 씨가 북한을 탈출할 때 몰고 온 소련제 미그15 전투기. (노금석 제공)

그러나 정작 전투기 조종사가 된 데에는 북한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노금석 대위는 지난해 9월 VOA와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녹취: 노금석 대위] "해방 후에 소련군이 이북에 오고 미국군이 남한에 오고. 소련이라는 나라가 나쁜 걸 한국 사람들은 다 알았어요. 공산주의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건 알았거든요. 그래서 전부가 이남으로 도망가려고 했어요. 해군 군관학교에서 공군에 갔거든요. 그래서 조종사가 됐어요. 그때 속으로 내가 비행기를 타면 도망가기 쉽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1953년 9월 21일 오전, 운명의 순간을 맞습니다.

훈련 비행을 핑계로 평양 순안비행장을 이륙한 뒤 남쪽으로 기수를 돌린 겁니다.

[녹취: 노금석 대위] "국경을 넘어오니까 북한에서 라디오로 말을 해요. '네가 어디 있으냐'고. 그걸 암호로 말하거든요. 내 번호가 '87'이고, 어디 있느냐가 '편지'거든요. '87 편지' 그게 날 보고 '노금석이 어디 있는가?' 들었지만 미국 비행기가 떠서 나를 쏠까봐 더 걱정돼서 대답 안 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사선을 넘는 18분 간의 비행 끝에 김포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1953년 9월 21일 소련제 미그15 전투기를 몰고 북한을 탈출해 김포 비행장에 도착한 노금석 씨. (노금석 제공)

이듬해 노금석 대위는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때마침 당시 미국 정부가 소련제 미그-15기를 가지고 귀순하는 조종사에게 제공하는 포상금 10만 달러를 받아 대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VOA를 청취했다는 노금석 대위는 VOA에서 '자유의 일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북한에 바깥세상 얘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델라웨어주립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듀폰과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방산업체에서 일했고 2000년 퇴직 전까지 데이토나비치에 있는 대학에서 17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6년 동료 교수 로저 오스터홈 씨와 공동으로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은 'A MIG-15 To Freedom'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38선을 넘은 전투기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미 공군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고인은 생전 VOA와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독재 정치로 갈수록 후퇴하는 북한과 민주주의 국가로 번창하는 한국을 보면서 곧 통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노금석 대위] "그 때 이남은 자꾸 발전되고 이북은 더 나빠지니까 말이에요. 통일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통일이 안 되니까 아주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나지요."

노금석 대위는 1960년 한국계 클라라 로 씨와 결혼해 2남 1녀의 자녀를 뒀습니다.

1986년 노금석 씨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장남 에드문드, 장녀 보니, 노금석, 아내 클라라, 차남 레이몬드 씨. 장남 에드문드 씨는 아버지를 따라 항공 엔지니어가 됐고, 장녀 보니 씨는 앨라배마 주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노금석 제공)

성공한 사회인, 행복한 가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지만 생전에 고향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녹취: 노금석 대위] "이북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난 자꾸 늙어가니까 말이요. 통일 빨리 되면 한번 가보고 싶은데 너무 늙으면 어떡해요."

70년 전,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었던 노금석 대위는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인 '케네스 로(Kenneth H. Rowe)'라는 이름으로 90년 간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