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의구심 해소를 위해 아시아 판 핵기획그룹(NPG)을 창설할 필요가 있다고 윤병세 전 한국 외교장관이 말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아래에서도 가능한 다양한 핵 옵션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윤 전 장관은 또한 오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한일 교류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 정권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라며 미국과 한국이 이달 말 열리는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공동 주최국으로서 이를 잘 활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최근 서울에서 윤 전 장관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한미동맹이 올해 70주년을 맞습니다.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 전 장관) 한미동맹은 2차 대전 후 미국의 동맹 체제 내에서도 가장 성공한 핵심동맹의 하나가 됐습니다.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전의 ‘핵심 축’이라는 표현이 이를 상징합니다. 지난 보수 정부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맹에 합의한 데 추가해 윤석열 정부 들어와 글로벌 동맹에 합의하고 인도태평양 정책도 발표함으로써 동맹의 외연과 내포가 대폭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사실상 전 방위 동맹으로, 내용 면에서는 군사 안보, 외교, 경제와 기술,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 운명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핵심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적 이해의 확장은 복합 대전환 시대의 동맹 현대화 추세와 부합합니다.
기자) 한국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로 국제 위상에 맞게 미국과 포괄적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행정부의 우선순위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윤 전 장관) 지난 정부 동안 종전선언 추진 등 남북관계를 과도하게 중시함에 따라 북핵 문제 접근법에 관해 상호 신뢰가 약화한 적이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북핵 문제 대응 전략에 있어 한미 정부간 여러 수준에서 긴밀하게 조율되고 있어 신뢰 수준이 다시 높아졌다고 봅니다. 빈번한 고위급 간 회동과 전략적 소통이 이를 반영합니다. 다만, 미국의 작년 국가안보 전략보고서에서 보듯이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또 최근 들어서는 대만 위기와 이란 문제 등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상대적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북핵을 실존적 위협으로 느끼는 한국과 다소 온도 차가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수개월 간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여러 가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미국 국빈 방문 등 동맹 70주년을 계기로 북핵 해법 관련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로 한국에서 핵 자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확장억제를 마냥 신뢰하기 힘들다는 여론도 높습니다. 어떤 해법을 선호하십니까?
윤 전 장관) 북핵 해법에 관해서는 이미 한미 정책 코뮤니티에서 다양한 제안이 나와 있고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국내외 연구소의 한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관한 지지도가 일관되게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민이 느끼는 위험 인식과 확장억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요컨대 북한 핵을 억제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핵 보장을 강화하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에서도 가능한 다양한 핵 옵션이 있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 차원에서 핵전력 공동 기획과 실행에 관한 제도적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금년 한미 동맹 70주년이 ‘핵 동맹’ 원년으로 평가될 수 있는 추가적 조치가 나온다면 이정표적인 성과가 될 것이다.
기자) 추가적 조치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미국의 일부 전문가는 미 확장억제 제공에 대한 의구심 해소의 일환으로 ‘나토형 핵기획 그룹’과 비슷한 협의체 신설 등 핵전력 공동 기획, 전술핵 재배치 대비 기반 시설을 한국에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윤 전 장관) 바로 2년 전에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주선으로 미국의 아시아와 유럽 핵심 동맹국 전직 고위인사들 16명이 특별 보고서를 발표해서 이 사안에 대해 건의한 바 있고 저도 1년간 같이 참여했습니다. 그 후 한미 양국에서 꾸준히 반응이 좋았는데 최근에 미국의 전략국제문제 연구소(CSIS)도 유사한 취지의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간 기존의 협의체를 NATO형 핵 기획 그룹(NPG)으로 격상하는 것이 우선적일 수 있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에 추가해서 먼저 언급한 한·미·일·호주·유럽의 전직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이 제안한 아시아판 핵 기획 그룹(NPG) 창설도 좋은 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본·호주는 이미 미국과 양자 협의체가 있어 3자 또는 4자화 하는 것은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나토의 NPG에는 전술핵이 배치되지 않은 다수 회원국이 참여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 북한이 대화를 거부할 뿐 아니라 한국 정부를 향해 거친 비판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할 대안이 있을까요?
윤 전 장관) 그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제시한 취지의 하나이기도 하죠. 길게는 지난 30년간, 짧게는 지난 2년간 북한의 정책과 행동이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여러 가지 형태로 북한 카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미사일 발사를 수십 번 했어도 중.러의 반대로 결의는커녕 의장 성명하나 제대로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이 핵무장의 비용(코스트)을 감당할 수 없게끔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지속하고 중국과 러시아에도 부채가 된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핵잠수함 건조 지원, 한국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모의 연습,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아시아판 핵기획 그룹 창설 등이 그중 몇 가지 대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 문제와 현안 등에 관해 어떤 협력을 도모할 수 있을까요?
윤 전 장관) 그간 한일 관계는 수년간의 과거사 문제 갈등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과 인도태평양 협력에 있어 가장 취약한 고리였습니다. 이제 국제질서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고 한국과 일본은 북한,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 3중, 4중 파고에 직면한 상태에서 한미일 협력을 더 이상 늦출 수 없고 이를 위해서도 한일 관계 개선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문제 해법을 발표한 데 이어 16일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가적인 진전이 이뤄지면 그간의 악순환의 구도가 선순환으로 바뀌면서 정상 간 셔틀 외교와 전략 대화 활성화, 경제 현안 해소와 협력 증대, 군사안보 협력 확대, 문화 교류 증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물론 북한 문제는 최우선 순위의 전략적 협력 의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작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3국이 북한 문제는 물론 경제·기술·지역·글로벌 차원의 다양한 도전과 복합 위기에 포괄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것이 한일 간 협력에도 좋은 준거 기준이 될 것입니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정확히 알리고 북한 주민들과도 실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재동참 등 과거 조치 회귀 외에 참신한 접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인권 문제 환기와 개선을 위해 어떤 구체적 노력과 조치가 더 필요할까요?
윤 전 장관) 북한 인권문제는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대북 전략 측면에서도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고 특히 북한 인권 문제 관련 국제사회 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과거 보수 정부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치와 연대 노력을 펼칠 것으로 예상합니다. 3월 말 민주주의 정상회의 공동 개최국으로서 역할도 잘 활용할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대외적 역할 못지않게 국내에서의 북한 인권 관련 핵심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정상화 내지 복원되어야 하는데 국내 정치 구조상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 제약입니다.
기자) 국가안보 차원의 다양한 국력 수단(DIME, 외교, 정보, 군사, 경제) 가운데 Diplomacy, Military, Economy는 모두 막혔거나 뚜렷한 활용 가능성이 적은 만큼 ‘정보’ 유입을 적극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북한 정권이 실질적으로 아파하고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대북전단금지법 등을 통해 통로가 막혔고,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노력을 ‘심리전’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 대북 확성기방송, 전단으로 제한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윤 전 장관) 북한에 대한 정보 유입 증대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냉전 기간 중 서독이 동독에 대해서, 또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서 서유럽이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 원칙을 갖고 꾸준히 일관되게 시행함으로써 독일 통일과 유럽의 확장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2020년 12월 통과된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국제 인권 규범은 물론이고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어 많은 논란을 야기했었습니다. 심지어 미국 하원의 초당적 랜토스 인권위원회에서 청문회까지 개최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현 정부가 이미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검토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부는 인권단체와 달리 복합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제약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핵심 요소로서 평화나 안보의 하부 개념이 아니라 같이 가야 합니다. 또한 국내적인 노력과 함께 미국, EU 등의 국제사회 인권공동체와 소통과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기자) 끝으로 한미동맹,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윤 전 장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현 국제질서가 역사적 변곡점, 지각변동 수준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동맹 70년 이후의 국제질서 전개를 내다보면서 지속 가능한 한미동맹이 되도록 시대 변화에 부응하면서 계속 현대화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동맹을 당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간다”는 중동 아프리카 금언이 있는데 한미 동맹은 이제 대전환기의 긴 여정에서 한미연합사 구호처럼 함께 가야 합니다.
미한 동맹 70주년을 맞아 윤병세 전 한국 외교부 장관과 함께 동맹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북한 문제 해법 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