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유엔 북한 통계 허점 많아…북한 비협조· 유엔 수동적 자세가 문제”

지난 2016년 9월 유엔 직원이 북한 홍수 피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 RCO/Mia Paukovic.

유엔의 북한 관련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협조와 유엔의 수동적 자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 개발 및 지원 단체 ‘개발 이니셔티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인도주의 위기에 빠져 외부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유엔 인도주의 기구들의 자료를 토대로 했다고 밝혔는데,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이 수치가 유엔이 코로나 팬데믹 직전에 발표한 ‘2020 북한 필요와 우선순위 계획’ 보고서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The number of 10 million people in need of assistance comes from the UN 2020 report called ‘DPRK Needs and Priorities Plan. I'm sure you have that document. And at that time, it said 10 million people are in need. It was just before the pandemic.”

소바쥬 전 소장은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악화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식량 상황을 이 보고서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4년 전 상황을 분석한 유엔 보고서를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2021년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위한 자발적 국가검토보고서(VNR)의 통계에 대한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곳곳에 납득하기 힘든 통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홍제환 북한연구실장과 최규빈 부연구위원은 당시 분석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2015~2019년 사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5.1%, 1인당 실질 GDP는 4.6% 증가했다고 밝혔는데, 유엔의 고강도 제재로 북한의 교역 규모가 대폭 감소한 상황을 감안하면 괴리가 크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오히려 같은 기간 북한의 경제 규모가 3.6% 감소하고 1인당 실질소득은 5.4% 감소했다는 한국은행의 추계가 더 현실적으로 판단된다며, 국가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허점이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일각에선 여러 유엔 기구가 이러한 북한의 통계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잘못된 행태를 두둔하는 게 문제란 지적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의료지원 단체 관계자는 VOA에 WHO가 지난 4월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의 보건 정책을 찬양하는 글을 보면서 “황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아흐메드 잠시드 모하메드 WHO 평양사무소장이 북한의 악화한 보건 상황이나 코로나 백신 거부 문제는 지적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예방접종 캠페인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며 “이는 처참한 북한의 의료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아흐메드 잠시드 모하메드 소장은 WHO 홈페이지에 북한의 후속 예방접종 캠페인은 “효과적인 정책”이라며 “국가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리더십과 거버넌스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말했었습니다.

[잠시드 소장] “This catch-up immunization campaign is another testimony for DPR Korea’s long history of strong leadership and governance of the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me; with effective policies in place,”

국제사회에서는 통계 작성에 대한 북한의 비협조와 일부 유엔 기구들의 이러한 수동적 자세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힐렐 노이어 유엔 워치 대표.

유엔 활동을 감시하는 스위스의 비정부기구인 ‘UN 워치’는 28일 VOA에 유엔이 북한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단체의 힐렐 노이어 대표는 “김정은 정권이 유엔에 보고하는 통계나 기타 정보는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전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노이어 대표] “Any statistics or other information that Kim Jong Un's regime reports to the UN will be self-serving propaganda, and has zero value. The UN needs to recognize that. The regime will manage to evade scrutiny for its failed state, and its gross human rights abuses, and instead its misinformation will be echoed by the UN system and serve as propaganda for Kim Jong Un”

이어 “북한 정권은 실패한 국가와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감시를 회피할 수 있고, 대신 잘못된 정보가 유엔 시스템에 반영돼 김정은을 위한 선전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렘코 브뢰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교수.

과거 해외 북한 파견 북한 노동자와 북한 주민들의 삶에 관한 보고서 작성을 위해 유엔과 자주 접촉했던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렘코 브뢰커 교수는 유엔의 북한 내부 통계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교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통계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브뤼커 교수] “I think the most crucial problem with regard to UN statistical data on domestic NK matters is that we do not have any reliable and verifiable statistics to compare them to. Accurate statistics are not available and certainly not accessible…. As far as I know, UN agencies are also not given the opportunity to enjoy the kind of access it would need to build accurate statistics and I do subscribe to the adagio that a little bit of knowledge is dangerous.

정확한 통계를 구할 수도 없고 접근하기도 확실히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브뢰커 교수는 자신이 아는 한 “유엔 기관들도 정확한 통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접근 권한을 누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결정하기 위해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통계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탈북민 심층 인터뷰 등 질적 증거(qualitative evidence)에 의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미 메릴랜드 대학 교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 메릴랜드 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다른 유엔 기구들에 기본적인 자료를 공급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UNDP는 20년 동안 해마다 1천만 달러를 지출하면서 북한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통계 자료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And they've been working at that for 20 years, you know, spending $10 million a year and frankly, I've come up with virtually nothing. So you got to ask, what are they doing in Pyongyang? They should be producing North Korean GDP data, gross domestic product, what we call national income and product data.”

브라운 교수는 UNDP가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산출했어야 했다면서 유엔 기구들은 곡물 생산량 추정과 지원 사업은 잘했지만 시장 조사 등에 관해선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국경이 다시 열리면 곡물 생산량보다 곡물의 시장 가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대다수 북한 주민이 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특정 농장에서 감자 등 곡물을 얼마나 더 생산했는지를 파악하는 것보다 장마당에서 곡물 가격이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를 아는 것이 북한의 식량 상황을 파악하는 데 훨씬 더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브라운 교수는 과거 이 문제를 유엔 기구들에 자주 제기했지만 유엔 관계자들은 북한 당국이 곡물 가격은 ‘국가 기밀’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비정부 기구들도 파악하는 식량 가격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면서 파악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수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VOA는 세계식량기구(WFP)와 유니세프 등 유엔의 대북 인도주의 기구들에 북한 관련 통계의 허점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28일 현재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북한에서 정확한 통계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최빈곤국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 have never worked in an environment so devoid of data and I've never seen a government so poor in using data for their own management of their country. I must say shocking. The poorest country in Africa has better data collection.”

소바쥬 전 소장은 이렇게 데이터가 없는 환경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며, 국가 경영에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 그토록 열악한 정부도 본 적이 없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각 부처와 단위가 통계를 서로 공유하지 않으며 관리들은 정확한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이런 이유로 유엔 기구들은 위성사진 등을 통해 식량 재배와 보건 분야에 국한해 북한이 제공한 정보를 교차 확인한다면서, 그러나 거시적 차원에서는 통계에 큰 격차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엔 통계처(UNSD)의 경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관련 북한의 보고서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그러면서 북한이 통계 역량을 강화하도록 국제사회가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 think we will not improve data collection in North Korea unless we start working and helping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o develop capacity in that field. Unfortunately, the donors today refuse to help any kind of development capacity building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m not saying missiles and nuclear power. I'm saying a decent group of people who can produce data that is internationally controlled, and you train them in that task technique,”

“북한 정부가 이 분야에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돕고 노력하지 않으면 북한에서 데이터 수집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현재 유엔 공여국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이유로 인도적 지원 외에 어떤 종류의 개발 역량을 강화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계의 중요성과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도록 북한의 인력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통계가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은 역설적이란 주장입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총재 고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총재 고문은 북한이 2021년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위한 자발적 국가검토보고서(VNR)를 통해 여러 통계를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며 북한도 데이터 개선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그러나 “제재 국면에서 북한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n the sanctions environment, they just don't trust anybody to help them to do anything. They want to have a relationship that they have trust enough and to be able to be willing to open up, share what they know try to learn from others, and do better. “

북한 당국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며, 기꺼이 마음을 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더 잘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유엔 워치의 노이어 대표는 그러나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독재 정권 중 하나”라면서 “유엔은 원칙적으로 그들이 상대하는 북한 정권을 면밀히 조사하고 노골적인 거짓말을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노이어 대표] “The UN should ideally scrutinize the regimes they are dealing with, and filter out blatant lies. If they are unwilling or unable to do so, then they should clearly provide readers with a kind of "truth in advertising" — a clear disclaimer indicating that the information has no UN authority, and is merely a copy-paste of what North Korea provided.”

노이어 대표는 “유엔이 그렇게 할 의향이 없거나 할 수 없다면 독자들에게 일종의 '광고 속 진실', 즉 해당 정보가 유엔의 권한이 없으며 북한이 제공한 내용을 복사하여 붙여 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명확한 면책 조항을 분명히 제공해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한국과 베트남이 국제사회와 정확한 통계 공유를 통해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북한도 이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