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간첩법은 ‘악법 중 악법’…탈북민 구출 활동 봉쇄될 수도”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자료사진)

중국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반간첩법 개정안은 중국 내 탈북민 구출 활동을 아예 봉쇄할 수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탈북 지원단체들과 브로커들이 말했습니다. 대북 정보 유입 활동과 북중 국경 상황 파악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1년 중국에서 탈북민들을 돕다가 당국에 체포돼 8개월간 옥고를 치렀던 한국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이하 반간첩법)을 보면서 “이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탈북민 지원 등 기독교인들의 중국 내 선교 활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중국 정부가 반간첩법 시행을 계기로 관련 활동을 고강도로 압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위축 정도가 아니라 이제 (탈북민 지원과 선교를) 못하게 하려는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면 우리 한국 정부나 다른 곳에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거죠. 제일 무서운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코걸이, 간첩죄는 적용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천 목사는 최근까지 중국 동북 3성에서 현지 브로커 등이 탈북민을 돕다가 체포되면 뇌물을 주고 풀려나거나 벌금형 혹은 1~2년의 형량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러나 간첩죄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1일부터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은 간첩 행위에 대해 기밀 정보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익 저해 등으로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특히 ‘안보’와 ‘국익’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광범위해 중국 당국이 의도할 경우 언제든 간첩죄로 엮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안이 엄중할 경우 무기징역과 사형도 가능하다고 명시해 탈북민 구출에 직접 관여하는 브로커들 사이에선 “중개비가 목숨값이 됐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 브로커 A 씨는 5일 VOA에 이런 분위기를 전하면서 중국 당국이 탈북민 구출을 미중 관계 악화와 직결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로커 A 씨] “이 사람들도 다 목숨값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별의별 다 같다고 엮는 거죠. 이걸 미국이나 어느 기관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조작한단 말입니다. 일단 브로커든 누구든 붙들리기만 하면 그놈들이 끌고 들어가서 때리고 고문하고 하니까.”

실제로 지난 2003년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 체포돼 형법 318조 ‘불법 월경 조직죄’로 거의 5년을 복역한 한국계 미국인 스티브 김 ‘318 파트너스’ 대표는 중국이 미국인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대표는 26일 VOA에 자신이 체포됐을 때 미국이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한 이유로 미중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며 중국 수사관으로부터 자신이 보복 대상이 됐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스티브 김 대표] “수사관이 그러더라고요. 전부 다 추방당하는데 나는 미국에서 그때 대만(타이완)에 무기를 팔았거든요. 그 보복성이었다고. 자기들이 그러더라고요. 당신 정부가 대만에 무기를 팔고 그래서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김 대표는 당시 자신과 같은 감옥에서 복역한 한 싱가포르계 기독교인은 조선족(한국계 중국인)과 대북 인도주의 지원 활동을 하다 간첩 누명을 쓰고 수감됐었다며, 반간첩법 시행으로 많은 선교사가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한국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는 탈북민을 돕는 한국인들과 조력자들이 이런 정치적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한국의 윤석열 정부를 대놓고 무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본보기로 탈북민들을 돕는 한국인들을 간첩 활동 혐의로 체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 목사는 그러면서 본보기 처벌은 북한과 중국이 공유하는 공산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중국에 억류된 채 북송 위기에 처한 2천여 명의 탈북민들은 향후 북한에서 본보기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중국에선 반간첩법으로 탈북민을 돕는 사람들이 본보기 처벌을 당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코로나 끝나고 시작되는 거라서 김정은의 패턴을 보면 이것도 시범 케이스로 몇몇은 반공화국 일들을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라는 시범 케이스 처벌이 있을 것 같고, 거기다 중국도 이런 간첩 혐의로 얘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우리 탈북단체들로서는 북한도 중국도 그렇고 굉장히 무게감이 다르고..”

단체 관계자들은 또 김정은 정권이 기독교 선교사들을 간첩 혐의로 장기간 억류하고 있듯이 시진핑 정권도 이런 간첩죄를 적용해 ‘기독교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한 선교단체 관계자는 26일 VOA에 중국 내 탈북민 긴급 구출을 위해 한국에서 단체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중국을 방문해 지원했다며, 그러나 반간첩법 시행을 계기로 계획을 모두 잠정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성은 목사는 “반간첩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결국 탈북민 구출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커지면서 코로나로 오른 구출 비용이 더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제일 걱정되는 것은 탈북 비용이 어떤 단체는 2천만 원이다, 3천만 원이다 하는데, 반간첩죄가 적용되고 이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보나마나 중국에 있는 브로커들이 손을 자꾸 떼려할 거고. 인신매매와 간첩 혐의로 들어가는 것은 사안이 다르니까요. 올 사람은 많아지고 그 일을 할 사람은 없어지면 당연한 게 비용 문제잖아요.”

탈북 단체들에 따르면 중국 동북 3성에서 동남아 지역까지 이동하는 중개 비용은 코로나 이전에는 미화 2천 달러 안팎이었지만 이후 1만 5천 달러 안팎으로 대여섯 배가 올랐습니다.

탈북민을 가장 많이 구출한 중국계 브로커 중 한 명으로 알려진 B 씨는 26일 VOA에 구출 비용은 한 때 18만 위안, 미화 2만 5천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9천 달러 정도를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녹취: B 씨] “그렇지 않아도 우리 올해에만 20명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꽤 엄해요. 하기 엄청 바빠요. 그거(반간첩법) 때문에 붙들리면 적어도 몇 년 7년 이상 판결이란 말입니다.”

B 씨는 코로나 상황이 다소 개선돼 올 상반기 탈북민들을 구출할 수 있었지만 반간첩법 시행으로 동료 대부분이 일을 꺼리고 있어 암담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탈북민 출신 한국 국회 국민의힘 소속 지성호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 반간첩법은 탈북민을 말살하는 초 악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 의원은 이 법의 모호성 등을 지적하며 “중국은 탈북민을 인권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 문제로 취급하고 있어 탈북민 관련 활동을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반간첩법은 탈북 지원단체뿐 아니라 북한에 외부 정보를 보내거나 북중 국경 지역 동향을 파악해 외부에 전하는 인권단체, 언론인들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하는 정광일 ‘노체인’ 한국 지부장은 VOA에 북중 국경에서 정보를 북한으로 보낼 때 장소 등을 증거로 촬영해 후원자들에게 보낸다면서 이제는 접근 자체가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광일 대표] “중국 현지 조력자들이 그럽니다. 제발 위험한 일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요. 형량이 그만큼 높이니까. 완전 차원이 다르죠. 그래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 북중 국경을 수십 번 오가며 접경 지역 북한 주민들의 생활 등을 촬영해 사진집 여러 권을 냈던 한국 동아대 강동완 교수는 반간첩법 시행으로 이런 시도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지금 이 법이 시행되고 나선 정말 간첩법에 저촉될 수밖에 없는 행위이고 중국 당국이 많게는 무기징역에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중 간의 관계를 봤을 때 우리 정부가 외교 마찰까지 빚어 가면서 자국민을 보호할 것 같지 않고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의 입장을 봐 줄 것 같지 않고 지금 상황에선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라고 봐야겠죠.”

강 교수 등 대북 소식통들은 또 한국에서 중국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북중 접경 지역을 다룬 영상을 게재한 유튜버들, 학자, 언론인들도 향후 중국에 입국 뒤 간첩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경을 장기간 봉쇄 중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만 중국의 반간첩법을 달가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반간첩법 관련 여러 우려와 관련해 지난달 정례 브리핑을 통해 “모든 국가는 국내 입법을 통해 국가 안전을 수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통용되는 관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국은 법치주의를 전면 추진하고 법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VOA에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국제 시민사회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같은 행동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I think it is time to consider international civil society action, perhaps boycotts against Chinese products. Unlike North Korea, China has a very high degree of exposure to international markets. So I think it is high time we consider that. American corporations must wake up. American civil society must wake up. US governmen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European Union must understand what's going on in China right now and must take swift action.”

북한과 달리 중국은 국제 시장에 대한 노출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미국 기업들, 미국 시민사회가 깨어나야 하고, 미국 정부, 한국 정부, 유럽연합은 지금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