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풍계리 핵실험장 건설과 보수 유지에 인근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대거 동원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미국의 비정부기구가 밝혔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 대사는 안보와 인권 문제가 직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17일 위성 사진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새 보고서에서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과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인 16호 화성(명간) 관리소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위성사진들은 지난해 10월 촬영한 것으로, 철저한 보안 속에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두 시설이 비포장도로로 연결된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5.2km 정도 되는 이 도로가 풍계리 1번 갱도와 16호 수용소 주변을 잇고 있다며 이미 지난 2005년 이후 모든 위성사진에서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관리소 수감자들이 핵실험장 건설과 보수 유지에 강제로 동원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여러 근거들을 제시했습니다.
보고서 공동 작성자로 민간 위성 분석가인 제이콥 보글 씨는 이날 화상으로 진행된 발표 행사에서 “이 도로가 강제 노동을 위해서 16호 관리소에서 핵실험 시설로 수감자(정치범)를 이송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보글 씨] “The first explanation, of course, is that the road may be used to transport prisoners from Camp 16 to the nuclear test facility for forced labor purposes. …The road was laid out and purposely cut into the mountain side and it's capable of carrying vehicle traffic like open back cargo trucks which are commonly seen in North Korea and are often used to transport people.”
보글 씨는 “이 도로는 의도적으로 산을 깎아 만든 도로로, 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종종 사람들을 수송하는 데 사용되는 개방형 화물트럭과 같은 차량이 다닐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북한은 현대적인 채굴 장비가 부족해 수작업과 구식 장비에 의존한다며 풍계리 갱도 건설에는 중장비 외에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 16호 수용소 수감자 규모, 핵실험장 건설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북한 정권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정치범들을 갱도 건설에 배치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북한 정권은 정치범을 뿌리 뽑아야 할 ‘독초’로 취급하기 때문에 정치범을 핵실험장 건설과 유지를 위해 투입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방사능 오염 등 보건과 안전 위험 노출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 “The regime would also not have had any qualms about exposing political prisoners to the serious health and safety risks associated with constructing or maintaining a nuclear testing facility, as it regards political prisoners as “poisonous grass” that must be rooted out.”
북한인권위원회는 두 시설의 연관성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언 등 아직 강력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이런 정황은 “북한 인권과 안보의 강력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화상 행사에 참여한 한국 정부의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역시 핵무기 등 안보 문제와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돼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런 위성사진이 그 중요성을 입증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The utilization of such imagery reveals a spectrum of issues ranging from security threats like nuclear testing to severe human rights violations such as political prison camps.”
“이러한 (위성) 이미지의 활용은 핵실험과 같은 안보 위협부터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 대사는 북한 지도부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15호 요덕관리소를 수년 전 폐쇄하고 이곳의 정치범 수만 명을 16호 관리소로 통합시켰다는 한국 내 비정부기구의 보고가 있으며 규모가 1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등의 과거 위성사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6호 관리소는 면적이 560제곱킬로미터로 북한 함흥시 면적과 비슷합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면적 360제곱킬로미터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로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신화 대사는 16호 관리소 등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국제사회에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를 옛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에 비유해 “숨겨진 홀로코스트”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Remember the Holocaust where the Nazi killed so many people in gas chambers for a short period of time. S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recognized that as a crime against humanity of Holocaust. But this crime of slowly killing many people in North Korea, I think it is also very serious crime against humanity.”
이 대사는 나치는 단기간에 수많은 유대인을 독가스실에서 살해했고 국제사회는 이를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했다며, “그러나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을 서서히 살해하는 이 범죄 역시 매우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주시하도록 위성사진 증거 수집 등의 다양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그러나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는 보고서 권고문을 통해 국제사회가 핵실험장과 16호 수용소를 잇는 도로의 용도를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또 북한 정부를 향해선 두 시설에 대한 국제 사찰을 허용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 등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 이제는 대북 정책에서 인권 우선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