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 회의에서 한국과 북한 대표가 거센 공방을 벌였습니다. 한국이 북한의 인권 유린 문제를 지적했는데, 양측이 반박에 재반박권까지 사용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상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는 1일 열린 제3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김 차석대사는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제3국에 있던 상당수 북한 주민이 본인의 의사와 강제송환금지 원칙에 반해 강제 송환됐다”며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실태를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녹취: 김 차석대사] “We are extremely concerned about the potential grave human rights violations and abuses as well as retaliatory action, including torture and the imposition of the death penalty, that repatriated North Korean individuals face right now in the DPRK.”
그러면서 “우리는 송환된 북한 주민들이 현재 북한에서 고문과 사형 집행을 포함한 보복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학대를 당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 대표단은 제3국에 구금돼 있거나 강제 송환 위험에 처한 탈북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 차석대사] “At the same time, my delegation stresses that DPRK escapees in third countries who are detained, or at risk of forced repatriation, should be allowed to move to safe places. Relevant governments need to cooperate with international actors, such as UN humanitarian agencies, particularly UNHCR on the ground, and civil societies of transit countries and destination countries, in line with the non-refoulement principle.”
이어 “관련국 정부는 강제송환금지 원칙에 따라 유엔의 인도주의 기구, 특히 현장에 있는 유엔난민기구를 비롯해 (탈북민들의) 경유 및 목적지 국가의 민간 단체와 같은 국제사회 활동가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북한 인권 단체 등은 중국 정부가 지난달 수백 명의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 데 이어 추가로 자국 내 억류 중인 탈북민들을 강제 북송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같은 한국의 지적에 김남혁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3등 서기관은 반박권을 사용해 대응했습니다.
김 서기관은 한국을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 아닌 ‘남한(South Korea)’으로 부르며 최근 불거진 탈북민에 대한 북송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특히 “그러한 거짓 주장은 우리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며 “우리의 ‘인민 우선’ 정책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내재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김남혁 서기관] “As such, those false claims are nothing but the political trick aimed at tarnishing the image of our state. Explicitly speaking in the DPRK, we are the people first policy is embedded in all sectors of social life. Such mentioned human rights issues that exist, nor can ever exist. South Korea has no right of talking about others because South Korea is the worst human rights waste land and colonial territory in the world, rampant with fascist dictatorship, corruption, and all kinds of crimes. In South Korea, human dignity and rights are trampled upon and majority people are unable to enjoy their social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rights under the notorious security law.”
또한 “한국은 ‘파시스트 독재’와 부패, 온갖 범죄가 만연한 세계 최악의 인권 쓰레기 지역이자 식민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며 “한국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짓밟히고 대다수의 사람이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아래에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지적에 한국도 재반박권을 요청했습니다.
송혜령 한국대표부 공사참사관은 북한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면서도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는 대신 주민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송 공사참사관] “We urge the DPRK to improve the human rights situation of its people, instead of concentrating on its nuclear weapons and missile development. In particular, we are concerned that the DRPK government is funding its illicit nuclear weapons and missile programs through the human rights violations such as forced labor.”
이어 “우리는 북한 정권이 강제 노동과 같은 인권 침해를 통해 불법적인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도 우려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남혁 서기관은 또다시 반박권을 사용해 “한국의 비난은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자국의 인권 유린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의 캠페인이자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송혜령 공사참사관도 다시 발언권을 요청해 북한이 핵개발 대신 자국민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것과 강제 송환된 탈북민들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한국의 이 같은 반박 발언으로 끝을 맺을 것으로 예상됐던 양측의 공방은 회의가 다음 주제로 넘어가면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송혜령 공사참사관은 한국의 발언 차례가 되자 “유엔 인권이사회가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북한을 포함해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는 곳에 대한 감시와 문서화, 조사 등을 통해 더 나은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또다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남혁 서기관은 또다시 반박권을 행사하며 이 같은 한국의 발언은 근거가 없고, 북한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정치적 도발이라고 맞섰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며 “유엔 인권이사회가 그러한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유엔 회의장에선 한국과 북한 대표가 서로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펼치는 한국의 태도 변화는 77차 유엔총회가 공식 개회한 지난해 8월부터 두드러졌습니다.
한국은 2020년과 2021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반박권’을 활용하지 않거나, 반박권을 행사하더라도 ‘이곳은 그 문제를 논의할 장소가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설전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작년 9월부턴 반박권을 적극 활용해 북한의 주장에 대응하고, 북한이 또다시 반박권을 행사하면 다시 맞받아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