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년 반 동안 영국 프로축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약 130회 무단 방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2개 팀의 경기는 방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는 지난달 13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인 리버풀과 본머스의 경기를 녹화 중계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방영된 이날 중계 화면의 좌측 상단에는 조선중앙TV의 로고가 달렸고, 오른편에는 ‘2023~2024 잉글랜드 최상급 축구련맹전 중에서’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또 조선중앙TV 로고 바로 옆에는 본머스와 리버풀의 이름이 선명하게 한글로 띄워져 있습니다.
세계 4대 축구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중계료가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일반적으로 경기당 1천만 영국 파운드, 미화 약 1천238만 달러가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이 이날 방영한 경기의 중계료가 산술적으론 1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날 중계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무단 방영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프리미어리그 측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고 중계료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리미어리그 관계자는 2일 VOA에 프리미어리그와 북한은 이번 시즌 중계권(media rights)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현재 한국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갖고 있는 한국 방송사 ‘스포티비’도 북한에 대한 중계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전하면서, 북한이 무단으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중계 방송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VOA가 2022년 4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관련 사례를 집계한 결과 북한은 129회에 걸쳐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무단 방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에 56회, 2023년엔 10월 13일을 기준으로 73회에 달했습니다.
주로 전체 경기 실황을 녹화 중계하는 방식이었지만 때때로 2개의 경기를 1개 경기 분량으로 편집하거나 득점 장면을 따로 모아 방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북한이 유독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 선수가 소속된 팀의 경기는 중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 국적의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에서 뛰고 있으며 황희찬 선수는 울버햄튼에 소속돼 있습니다.
하지만 하위권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팀의 경기가 최소 1번 이상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지만 토트넘과 울버햄튼의 경기는 방영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프리미어리그에선 20개 팀이 경쟁하지만 북한의 TV 화면에는 18개 팀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토트넘은 지난 2021~2022 시즌에 4위를 달성하고, 올해는 무패를 기록하며 1위에 올라 있는 강팀입니다.
북한이 중계한 경기에 등장한 팀이 주로 1~6위에 몰려있는 점을 감안하면 토트넘의 경기가 제외된 건 의도적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특히 토트넘 소속의 손흥민 선수는 2021~2022 시즌 동안 23골을 넣어 전체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올해 시즌도 8골로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 황희찬 선수 역시 6골을 넣어 이번 시즌 득점 순위 공동 4위를 기록 중입니다.
비록 무단 중계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한국 선수들의 ‘골 잔치’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다른 나라의 축구 경기를 무단으로 중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앞서 VOA는 북한이 지난 7월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경기를 녹화 중계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 방송의 중계권을 갖고 있는 FIFA는 VOA에 “해당 토너먼트(2023 여자 월드컵)에 대한 북한 내 어떠한 권리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당시 중계방송이 무단 방영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FIFA는 저작권 침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여긴다”며 “저작권 침해에 대한 증거가 있다면 FIFA는 잠재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북한은 당시에도 미국과 한국, 일본 등 주요 국가를 고의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VOA가 확보한 해당 중계방송에서 사회자는 월드컵 출전국을 소개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을 각각 ‘그 외 1개 팀’으로만 지칭했습니다.
[녹취: 해설자] “5조에는 웨트남(베트남) 팀, 네덜란드 팀, 뽀르투갈(포르투갈) 팀 외 1개 팀이 속해 있습니다… 8조에 도이칠란드(독일) 팀과 모르코(모로코) 팀, 꼴롬비아(콜롬비아) 팀 외에 1개 팀이 속해 있습니다.
한편 프리미어리그 관계자는 북한의 무단 중계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 사례 등이 담긴 문건을 VOA에 건넸습니다.
여기에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무단으로 중계한 웹사이트 운영자 스티븐 킹 등이 영국 법원으로부터 7년 이상의 징역형과 100만 파운드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실이 명시됐습니다.
또한 싱가포르와 태국 등지에서텔레비전 불법 중계 장치를 판매한 개인 등이 각국의 사법 당국으로부터 처벌받은 내용도 소개돼 있습니다.
그만큼 영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저작권침해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VOA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북한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무단 방영과 관련한 내용을 문의한 상태로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