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한과 제재 논의 가능성에 “충돌 위험 감소 해법” vs “시효 다한 접근법”

정 박 미 국무부 대북고위관리가 5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했다.

미국 고위 관리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과 제재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발적 충돌이나 확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들은 북한의 반복적 합의 위반으로 이미 시효가 다한 접근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간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거나 북한과 제재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가 단시일 내에 이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긴장 완화를 위한 유일한 현실적 접근법이란 평가가 있는가 하면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이미 그 효용을 다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 회담 미국 차석대표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 회담 미국 차석대표는 2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정 박 국무부 대북 고위관리의 발언에 대해 “아주 좋은 진전”이라며 “정확하고 필요한 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궁극적인 비핵화가 여전한 미국의 목표이며 이는 변하지 않았다”며 “북한이 행동 대 행동에 나선다면 제재 완화, 심지어 제재 해제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I think this is a very good development. I think you know, with the senior officer Jung Pak articulated was absolutely correct and necessary. We're saying, I believe eventual denuclearization continues to be the goal. That hasn't changed. (중략) There's flexibility we can talk about sanctions relief, even the possibility of lifting sanctions if North Korea, in an action for action.”

앞서 박 고위관리는 지난 18일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북한과 제재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박 고위관리는 “우리는 대화를 원하며, 오판이나 우발적 확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위험 감소를 포함해 북한과 할 수 있는 많은 가치 있는 논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제재나 신뢰 구축, 인도주의적 협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대화 제의에 전제 조건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북한과 대화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 박 대북 고위관리] “We want dialog and there are lots of valuable discussions that we can have with the DPRK, including on risk reduction, to reduce the risk of miscalculation or inadvertent escalation. But we can also talk about sanctions or confidence building or humanitarian cooperation. So that's what we mean by no preconditions to our dialog offers that there is no precondition and that there is a great deal of things that we need to be talking about with the DPRK.”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북한이 7차 핵실험뿐 아니라 미사일 발사와 핵 분열성 물질 생산 등 모든 도발 행위를 중단하면 제재 완화를 넘어 제재 해제까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기하는 등 절대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북한과 마주 앉아 핵 프로그램 중단과 제재 해제의 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극적으로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 발전을 위해 국제사회에 편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심지어는 핵무기를 가지고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며 “그것은 우리가 막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So if we don't sit down with North Korea to talk about the benefits of halting that programs and the lightning of sanctions and ultimately lifting sanctions and integrating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for economic development purposes, if we don't do that, the possibility of stumbling into conflict, possibly even with nuclear weapons, is there. And that's something we have to prevent.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 국가정보분석관이 27일 VOA 조은정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시드니 사일러 전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 국가정보분석관은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과 제재에 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는 박 고위관리의 발언에 대해 “그것이 항상 우리의 입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일러 전 분석관은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문제에 대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비핵화가 대화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것은 일련의 대화 과정의 결과”라며 “북한의 조속하고 중요한 조치와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포함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로 가는 경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건 항상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항상 그런 대화에 열려 있었고, 백악관과 국무부가 말하려던 것은 일부 잘못된 정보, ‘우리가 비핵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대중에게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사일러 전 분석관] “That has always been our position.
That you know, we are prepared to talk to North Korea anytime, any place, about any issue. We have never insisted that denuclearization is a prerequisite for dialogue.”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이날 VOA에 “박 고위관리는 북한의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제재를 완화한다든가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나타내거나 암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북한과의 회담에 앞서 한국 정부와 어느 정도 조율된 상태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란 설명입니다.

랩슨 전 대사대리는 “박 고위관리가 ‘위험 감소’를 초기 논의 주제로 계속 우선 순위에 둔 것에 놀랐다”며 “이는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잇따라 ‘중간 조치’를 언급한 것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북 정책에 있어서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랩슨 전 대사대리] “I was struck by the continued priority given ‘risk reduction’ as an initial discussion topic, which reflects in my view growing US concerns about the escalatory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바이든 정부가 최근 ‘중간 조치’를 거듭 강조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미국 역시 비핵화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은 비핵화하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정치적으로도 핵 프로그램이 북한 지도자로서 그의 유일한 ‘성공’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핵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미국 정부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과 역내 긴장 완화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중간 단계’를 다시 거론한다는 겁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 폐쇄와 같은 핵 위협 감소 조치를 취할 경우 의류나 석탄 수출을 허용하는 등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중간 조치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유일한 실용적 선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베넷 선임연구원] “These kinds of interim steps are the only pragmatic options for containing the North Korean nuclear weapon threat because the North is not going to totally denuclearize.”

북한과의 협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 대사는 이날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협상한다는 미국의 기존 정책 목표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면서 “회유와 희망에 의한 억제는 전혀 억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리스 전 대사] “I believe our heretofore U.S. policy goal of negotiating away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programme has reached its useful end. We must up our combined game. Deterrence by appeasement and hope is not deterrence at all.”

해리스 전 대사는 또 “근본적으로 김정은은 오랫동안 제재 완화, 핵무기 프로그램 유지, 미한동맹 분열, 한반도 지배라는 네 가지를 원해왔다”며 “그가 이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입장을 완화했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 1월엔 한국과의 평화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한국을 ‘주적’이라고 부름으로써 김씨 정권이 견지해 왔던 기본 교리를 포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리스 전 대사] “Now, to the broader issue of efficacy of talks, fundamentally, I believe KJU has long wanted 4 things: sanctions relief, keep his nuclear weapons programme, split the U.S.-ROK Alliance, and dominate the peninsula. I see no reason to believe he has softened his position on any of these.”

해리스 전 대사는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실험과 북러 간 무기 거래 등을 지적하며 북한이 조만간 핵 야망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분명한 것은 북한의 궤적은 평화를 향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희망만으로는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희생하면서까지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며 “대화와 군사적 준비는 반드시 병행해야 하고,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리스 전 대사] “The quest for dialogue with the North must never be made at the expense of our ability to respond to threats from the North. Dialogue and military readiness must go hand-in-hand. Idealism must be rooted in realism.”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박 고위관리의 발언 등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북한의 비핵화는 여전히 미국 정책의 명목상의 목표지만, 새로운 접근법은 그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에 대한 위험을 ‘관리’하고, 오판 가능성을 줄이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 범위를 제한하거나 ‘동결’하고, 실제 비핵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조치를 취하는 합의를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As she and other U.S. officials have stated,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will remain the nominal goal of U.S. policy, but the emerging new approach effectively acknowledges that achieving that goal is probably impossible. Accordingly, the U.S. will be prepared to negotiate agreements with North Korea that ‘manage’ the risk posed DPRK's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arsenals, reduce the possibility of miscalculation, limit or ‘freeze’ the scope of Pyongyang's nuclear arsenal, and take other measures to deal with Pyongyang's nuclear challenge short of actual denuclearization.”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북한이 위험 감소나 군비 통제 회담에 응한다면 북한은 과거 실제 비핵화 대가로만 미국이 제공하려던 수준의 인센티브나 제재 대폭 완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한국과 인근에 주둔하는 미군과 전술∙전략 자산의 철수 등 미한동맹이 제기하는 ‘위협’의 제거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는 과거 미북 대화에서 북한 고위급 관리들이 직접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그러나 과거 북핵 관련 모든 미북 협상은 북한의 기만과 허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 보유국이 되겠다는 결의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핵 보유국으로 남겠다는 북한의 결의에 변화가 있었는지, 수십 년간 속임수를 써온 북한이 왜 갑자기 선의로 행동할 의향이 있는지, 북한이 핵 사찰을 수용할 준비가 돼있는지 묻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되기 전 수 년간 이런 조치에 강력히 반대한 북한이 본격적인 핵 보유국이 된 지금 왜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반문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Over the years, before it became a de facto nuclear weapons power, the DPRK vigorously opposed such steps. Why would Pyongyang accept them now that it has become a full-fledged nuclear state?”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사진 = Brandeis University.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김정은이 미 대선 전에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에 즉각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북러 관계가 더 긴밀해졌고,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 재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나 바이든 행정부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동결에서 시작해서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비슷한 접근법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김정은은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 다음 완전한 신고와 비핵화로 이어지는 그런 합의에는 관심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Well, the US, under both Trump and Biden are seeking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that can start with a freeze, as a first step, and then proceed to complete denuclearization. So I think both the Trump administration and the Biden administration were pursuing a similar overall approach to the nuclear issue. And I don't think Kim Jong-un is interested in such an agreement that would freeze the program and then lead to complete declaration and denuclearization.”

이어 “문제는 북한이 제재 완화와 안전 보장, 그리고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그런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지난 30년간 미국은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 왔고, 가장 최근엔 싱가포르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까지 있었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핵 프로그램 동결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북한은 제재 완화 대가로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동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북 간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진단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