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20일은 유엔이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미국에도 220여 명의 탈북 난민이 정착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는데요, 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정부의 정책과 개선점 등을 짚어봤습니다. 이조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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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책공대를 졸업한 해리 씨는 정보기술(IT) 요원으로 동남아시아에 파견돼 처음으로 북한 밖의 세상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녹취:해리 씨] “북한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해외에서 일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동남아 쪽에 나와가지고 일을 하다가, 일을 하다 보니까 인터넷을 접하게 되고 하니까, 이제 알게되는거죠. 뭐 북한이 왜 못 사는지, 그다음에 미국 제재라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이제 먹고 사는 거잖아요, 해외에 나가게 되면, 그런데 그게 수입이 괜찮더라고요. 근데 이제 그걸 다 뺏겨버리니까, 짜증 나는 거죠.”
북한에 있는 부모와 형제를 뒤로하고 자유와 평등이 존중받는 세상에 살기로 마음 먹은 해리 씨는 22살이 되던 해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04년 의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을 근거로 탈북 난민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녹취:하원 본회의] The senate amendment is agreed. And without objection…
지난 2004년 10월4일. 미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북한인권법안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넘겨졌고, 10월18일에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즉각 발효됐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탈북자들이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해리 씨는 올해로 제정 20년이 된 이 법에 근거해 미국에 정착한 220여 명의 탈북 난민 중 한 명입니다.
2006년 5월 6명이 처음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3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모두 224명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합법적 신분을 부여받은 탈북 난민은 미국에 정착한 지 1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착하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미국에 입국한 대부분의 탈북 난민은 지역 정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 식품구입권 등을 약 8개월 정도 지원받습니다.
지난 2000년 미국에 입국한 해리 씨 역시 첫 정착지였던 서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지역 정부로부터 기초 생활 혜택을 받았고 난민 정착 지원 기관을 통해 영어부터 일자리 교육까지 초기 정착 과정을 지원받았습니다.
해리씨는 현재 텍사스주 댈러스에서IT 기술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미국 정착 15년째를 맞은 해리 씨는 미국 생활에 대해 “자유세계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국내 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탔을 때 처음 느껴 본 이동의 자유라는 것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녹취:해리 씨] “‘아 자유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물론 처음에 와서는, 뭐 이동의 자유, 뭐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살았었는데, 살다 보니까 자유가 어떤 것인지 느끼는 데 시간이 조금 조금씩 걸리면서 더 알게 되고 더 알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지금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해리 씨처럼 미국의 정착한 탈북 난민의 수는 다른 나라 출신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탈북민 규모가 3만 명을 넘는 한국과도 크게 대조됩니다.
미 국무부 난민 입국 현황 자료를 보면 미국에 입국한 탈북민 숫자가 가장 많았던 2008년에는 38명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한 자리 혹은 두 자릿수를 웃돌다 2019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상반기에는 단 2명, 2021년 11월에는 4명이 각각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이후 지난 약 3년간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공식 집계된 탈북 난민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국경 감시 강화 조치 외에도 미국 입국 절차가 완료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 등을 주된 이유로 지적합니다.
제3국 수용소에서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하는데 평균 2년 이상이 걸려 탈북민 다수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한국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미 정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오는 모든 난민에 대해 신원조회 등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탈북민에 대한 난민 입국 절차를 간소화 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난민 문제는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주제”라며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오는 경제적 난민보다는 탈북민들에 대해 훨씬 더 동정심을 갖는 경향은 있지만 이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녹취:킹 전 특사] “Refugees are a very sensitive topic in the United States politically, and while people tend to be much more sympathetic towards North Koreans than they do towards economic refugees who come to the United States from other countries…it's still a sensitive issue and we take huge numbers of refugees every year and doing something to increase those numbers is not something that is politically viable in the United States… The United States has very specific requirements on refugees and the assistance that the US has provided is largely by private groups, rather than by the US government. In South Korea, the government has programs that are specifically tailored for North Koreans. So it's more difficult in the United States.”
따라서 미국이 매년 엄청난 수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 난민 숫자를 늘리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또 탈북 난민에 대해 미국이 제공하는 지원은 주로 “미국 정부보다는 민간 단체에 의해 이뤄지는 반면 한국은 정부가 탈북민을 위해 특별히 맞춤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미국으로의 난민 입국은 “더 어려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탈북 난민들에게 일시불로 거액의 정착금을 제공하는 한국 정부와는 달리 미국 정부는 탈북 난민 등 난민들에게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난민들이 이른 시일 안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데 지원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언어 문제 때문에 초기 미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 난민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탈북민들이 언어나 재정 지원 등에서 훨씬 상황이 나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정말 큰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스칼라튜 사무총장] “You have to be really, really, really committed to come to the USA, not go to South Korea…I think we could do better in terms of providing information to, North Korean refugees seeking asylum in the USA…we should really work with U.S government agencies to, to produce that kind of information.”
따라서 미국 망명을 원하는 탈북자들에게 초기 정착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난민 지원 단체가 미 정부 기관과 협력해서 관련 정보를 생산하고 제공해야 한다고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강조했습니다.
제3국에 정착한 뒤 미국으로 재정착을 원하는 탈북 난민을 위한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평양 엘리트층 출신 탈북자로 미국에 정착한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입니다.
[녹취:이현승 씨] “다른 국가들은 뭐 몇십만 명씩 오고 이렇게 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없잖아요, 몇 명이. 그러니까 이제, 이 커뮤니티를 키우고, 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더 알 수 있도록 하려면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북한 주민들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추가적인 법령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제3국에 정착을 했더라도 다시 미국 망명을 선호하는 분들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 난민들을 받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난민의 날을 맞은 가운데 탈북 난민에 대한 미국의 핵심 정책인 북한인권법 연장이 의회 내부 정치 문제로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은 미국 내 탈북민 사회에 아쉬움을 남깁니다.
한시법인 북한인권법은 지난 2022년 9월 30일을 기해 만료됐고, 연장을 위해서는 의회의 재승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재 의회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과 공화당이 근소한 차이로 양분돼 일부 사안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면서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은 물론 다른 많은 초당적 안건에 대해서도 처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 연장 지연이 탈북 난민의 미국 입국을 막는 것은 아니지만 조속한 의회 내 의결은 도움이 절실한 탈북민에게 시의적절한 도움을 주는 데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담당 소위원장인 영 김 의원은 지난달 외교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의 조속한 의회 통과를 동료 의원들에게 촉구하면서 탈북 난민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김 의원] “This bill reauthorizes and makes improvements to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 which authorized humanitarian support for North Korean refugees…Kim Jong Un's terror campaign against his own people is only growing more intense... Failing to reauthorize this landmark human rights legislation sends a very wrong message."
김 의원은 “이 법안은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을 재승인하고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북한인권법은 특히 “탈북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승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국민에 대한 김정은의 테러 캠페인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의회가) 이 역사적인 법안을 재승인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킹 전 특사는 “북한인권법은 미 정부 관리들이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행동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많은 중요한 권한을 부여한다”며 “이런 조항이 있는 것은 매우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킹 전 특사]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provides a lot of important authorities for the US government officials to act and to take steps that will help N Koreans and it's very useful and very important to have those provisions in place…It's unfortunate because there's not really major differences in Congress.”
그러면서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에 대한 의회 내 별다른 이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유엔은 2000년 12월 총회에서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 난민의 날’을 제정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는 ‘유엔난민협약’ 50주년을 맞은 2001년부터 매년 6월 20일을 난민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엔 난민기구(UNHCR)가 세계 난민의 날을 앞둔 지난 13일 공개한 ‘2024년 세계 난민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박해와 분쟁 및 폭력, 인권 침해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약 1억1천730만 명이 강제 실향민이 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중 난민은 약 4천340만 명입니다.
북한 출신은 239명이 전 세계에서 난민 자격으로 살고 있고 96명이 난민 지위를 받기 위해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VOA 뉴스 이조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