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탈북민들 “북한 수해는 당국이 자초한 ‘인재’”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 일대 홍수 피해 현장을 시찰했다고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출처: 조선중앙통신)

미국 내 탈북민들은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은 큰 피해가 없다는 점을 거론하며 북한의 이번 수해가 당국이 자초한 인재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대북 지원 제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신의주 출신으로 미국 서부에 사는 김두현 씨는 홍수 피해로 물에 잠긴 신의주시 영상을 보면서 지난 1995년 겪었던 대홍수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두현 씨] “그때 당시에도 신의주와 단둥이 거의 바다처럼 보였었어요. 다 잠겨서. 저희가 떠내려가는 집이며 떠내려 가는 소, 돼지, 진짜 동뚝에 서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물이 찰랑찰랑할 때까지 지켜보다가 전부 다 대피하고 그랬던 기억이 아직도 있고.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걸 겪었던 사람으로서 지금 이 상황을 보면 저는 굉장히 지금 불안해요.”

북한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1995년 북한 대홍수는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반세기 세계 최악의 10대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심각했었습니다.

김 씨는 1995년, 2010년, 2016년에도 신의주 등 평안북도가 침수와 산사태로 큰 피해를 계속 겪었지만 주민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즉각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며 반겼습니다.

[녹취: 김두현 씨] “당연히 잘한 거죠. 당연히 우리가 그런 메시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야 맞는 것이죠. 북한 정부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상관없이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수해 복구 지원을 남한 정부가 하려는 의지가 있고 이것을 북한 정부에 제안했다라는 그 메시지를 북한 주민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소집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이번 수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대한적십자사는 1일 “북한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견지에서 북한의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 밝혔습니다.

북한은 2일 현재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김마태 씨는 같은 민족이 아니더라도 이웃 나라에 지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다양한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은 보편적인 국제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지원 제의를 한 것은 같은 혈육으로서 잘한 일이지만 북한 지도부가 이를 받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김마태 씨] “북한 당국 입장에선 안 받는 게 낫죠 차라리. 망신당하니까요. 하지만 북한 주민들한테는 안 받는 게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도 많이 죽었지만 재산과 직업적으로나 피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나라는 보험도 없습니다. 우리 여기 미국에선 집 보험이 있고 의료 보험도 다 있지만 그 나라에는 보험이 없어요.”

탈북민들은 수해를 겪는 북한 이재민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도 북한 당국에는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신의주 맞은편인 중국 단둥은 큰 피해를 겪지 않은 것을 보면 이번 홍수 피해는 북한 당국이 자초한 인재라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 단둥은 압록강변을 따라 수십 개의 방지문을 보강해 2.5m 높이의 방벽을 세우는 등 대책을 계속 강화했지만 북한은 같은 피해를 여러 번 겪고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터프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조성우 씨는 북한 지도부가 가장 기초적인 경제 원리조차 따르지 않은 채 국가 자원을 엉뚱한 곳에 전용한 결과 재해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우 씨] “어느 나라나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할 때 먼저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하고 도로나 공장을 짓고 또 그와 관련해서 치수 사업이라든가 다리 건설, 항만, 공항을 건설하고 그리고 물관리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북한의 정책 방향을 보면 그런 것들은 다 뒷전에 있고 먼저 지도자가 자기의 정치적인 치적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그런 방향으로 항상 나가고 있기 때문이고요.”

조 씨는 지도자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북한에선 늘 어긋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의 지원 제의를 수용하지 않고 있고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조차 미온적인 이유는 모두 지도자의 위상과 결부시키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녹취: 조성우 씨] “수해 지원을 받아서 국민들이 빨리 안정되는 것보다는 그런 수해 지원을 통해서 올 수 있는 민심의 동요 같은 것을 더 걱정했다고 볼 수가 있고요. 그래서 국민의 생활 안정보다는 지도자 자신의 정치적인 체면 같은 것을 먼저 내세우는 그런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가 있죠. 그리고 한국의 수해 지원 물자가 들어오면 북한 국민이 한국의 경제 수준을 바로 알잖아요. 거기서 오는 동요 같은 것을 두려워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수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요.”

김마태 씨도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이나 마식령 스키장,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 관광 시설, 겉만 번지르르한 아파트 건설보다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기반시설에 집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탈북민들은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기존의 정책을 바꿔 주민 우선순위의 자원 배분을 할 가능성에 대해선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부 탈북민은 한국 정부가 수해 지원을 하는 게 주민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북부에 사는 글로리아 씨입니다.

[녹취: 글로리아 씨] “도와주면 안 돼요. 저도 형제들이 아직 그쪽에 있잖아요. 마음이 굉장히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도와준다고 하면 국가 차원에서 돕지 말고 민간 차원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글로리아 씨는 과거 북한에서 여러 재해를 겪었을 때 “북한 당국은 물론 한국이나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모두 정부 입맛에 맞게 전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두현 씨 등 여러 탈북민들은 최대한 투명성을 전제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체면을 구기더라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먼저 챙기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